어찌되었든 살아가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물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은둔 속에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라기 보다는 삶으로부터의 초월을 지향하는 것이다. 먹고 살려면 만나야 하고, 관계의 그물을 짜기 위해 두툼한 수첩을 준비해야 한다. 인터넷에는 살아가기 위해 부벼대는 이 관계의 몸부림이 즐비하다. 물리적 의미에서의 육체를 점점 잃어가는 이들은 또 다른 육체 속으로 기생하여 그 숙주들의 방 안에서 섹스를 하고, 울부짖으며, 사유를 한다. 공허와 무의미로 다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기기들을 부여잡고 파워-스위치를 끌 줄을 모르며, 손과 눈을 뗄 줄을 모른다. 너저분함으로부터의 초월에 실패한 나, 아주 많이 화가 나 있던 나 역시 결국은 그 빛 속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기괴하게도, 관계로부터 고통 받지 않기 위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불나방처럼 다시금 관계속으로!

졸라(Emile Zola)를 위시하여 자연주의 작가들에 대한 위스망스(Joris-Carl Huysmans)의 비판은 그들이 병든반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물질주의적 중언부언으로 인해 그들의 세계는 제자리 걸음, 더 정확히는 "고정된 원 위에서 맷돌을 돌려대느라 숨을 몰아쉬며" 퇴락의 반복을 초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물질의 지대를 넘어서는 순수 잠재성의 지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위스망스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서문을 20년 후에 새로 쓰면서 병든반복을 넘어서는 영원회귀의 섬광이 될 만한 통찰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적는다.
"실상 자신이 쓴 문장들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실망스럽고 괴로운 일도 없다. 문장들은 이를테면 침전물이 생기면서 맑아지고 책 깊숙히 찌꺼기들을 가라앉힌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책이란 나이를 먹으면서 맛이 좋아지는 포도주 같지는 않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일단 맑아진 후, 각각의 장들은 김빠진 술처럼 맛을 잃어버리고 그 향기는 시들고 마는 것이다."(조리스-카를 위스망스, <거꾸로>(문학과지성사, 1993), p. 9. >
퇴락의 반복이 초래하는 권태와 공허 뒤에는 또 다른 심오한 반복이 있다.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가 말했듯이, 동일한 반복의 두 계열이 있는 것이다: 과거로 가는 반복, 그리고 미래를 향한 신념과 확신의 반복. 우리의 목적은 글과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표식 같은것에 불과하다. 심오함은 글과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 영원회귀가 일어나는 다른 지대 속에 있다. 물론 추억을 더듬듯이 과거를 향해 그 표식으로 되돌아 오지만, 표식 아래에 쌓여있는 침전물의 부정적 결과인 권태와 공허는 다른 반복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된다. 이전의 표식이 따분할 만큼 우리는 커져있고, 증식하고 있으며, 달라졌기 때문이다(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부조리의 힘"이란 다름 아닌 "역설을 가능케하는 시간"일 것이다) 결국 새로운 글을 써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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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나'를 욕망하는 통로인 듯 합니다..아는 이는 이들을 보고 발화자가 아니라 발자화라고 하더군요.
네...끊임없이 '나'를 욕망하는 통로라. . .
그런데 "발자화"가 무슨 말인가요?
사람이 말을 내뱉는게 아니라 말이 사람을 내뱉는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 .
트위터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 . . 묘한 쾌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쾌감인지는 분석해봐야겠지만 말이죠. . .
날씨 정말 좋네요.^^
여고생들을 데리고 시립미술관 앞뜰에서 재잘거림을 듣는데 어찌나 싱그러운 향내가 나던지...몸은 피로한데 오월의 여운이 가득 남네요.
신록과 햇살이 비춰주는 여학생들의 맑은 피부와 웃음소리,재잘거림의 어울림.당시에는 당사자들은 지들의 모습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요.
친구 불러 술한잔 하려했더니 산꼭대기에 있다기에 마침 발바닥도 불이나던차 일찍 들어와 양말 부터 벗어 놓고 쉬다가 ^^
그냥 인사 남겨요.(오늘은 자게판에 포스팅도 하나 했습니다. 비는 시간에 일자리에서 쓰는 컴으로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날이 정말 좋아요.
베리베리 나이스입니다.
네. . 요즘 상쾌한 날씨 정말 좋습니다.
모든 것에 적절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적절한 말이 없을 정도로요...^^
요즘에 학생들에게 낭만주의 시를 가르치고 있는데요(오늘이 수업이었죠), . . 낭만주의 문학에는 우울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창밖의 날씨와는 전혀 맞지 않아 수업분위기가 산만하죠. . .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죽음이니 운명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귀에 들어겠나 싶어,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합니다.
게시판에 글 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군요. . .음. . .
점점 애물이 되어가는 게시판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중입니다. . . . . . .
게시판...글올리는 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데...그게 일하는 시간의 개방된 공간의 번잡한 일터이거든요.
여러모로 제가 애물단지를 만든 듯 싶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아주 간략하게 내용물을 확 줄이신 다음 정말 훈님의 게시판으로 사용하시는 거요.
아니면 자꾸 진드기?^^가 붙어서 지금도 성가시긴 하시겠지만 기왕 있는 거 저만 자주 올리지 않으면 서서히 글 올리실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그게 사실 좋은 모습이잖아요?늘 제가 바라던 것이 그것인데...전 일터에서 아주 가끔만 올리겠습니다.
아니면 트윗도 하시니까 이참에 아주 치워버리시는 방법도 있구요. 그래도
여기와서 뭐라 투덜대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
-그리고 위의 이제하 선생님 글 댓글에 붙기엔 부적당하단 생각이 들어서 삭제하였습니다.제가 좀 이렇게 덜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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