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한마디 하겠다. KBS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에,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가 있다. 지역을 돌면서 일반인들을 출연시켜 그들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고, 즐기고, 상을 타게 하는 일종의 노래 경연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다른 경연 프로와는 다른 점이 하나가 있다. 심사위원이 노래를 듣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땡!"하고 종을 쳐서 노래를 중지 시키는 것이다. 그 종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웃는다. 참가자는 창피해 하면서 쥐구멍에 숨기라도 하듯이 무대 밖으로 재빠르게 내려간다. 쥐구멍으로 숨어드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쾌감 같은 것을 느끼며 한바탕 웃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얼마 전에 북한에서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방송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북한 방송과 합작하여 북한 사람들의 노래 경연을 연 것이다. 세계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는 그들을, 누군가의 소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화면으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궁금했겠는가? 그들은 어떻게 노래를 부를지 어떤 몸동작을 취할지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어리둥절해가며 종소리에 반응하는 광대 같은 모습이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날 방송에는 실망스럽게도 이 프로그램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땡!"하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그 경연에서는 폭소도 나오지 않았고, 1등상이나 2등상 역시 가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사람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무덤덤하게 쳐다보고, 그들의 몸동작과 발성법, 그리고 그들이 애창하는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랑 타령 일색의 가요가 아니라 그들만의 독특하고도 새로운 감성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빠진 것 같았다. 우리 식으로 한 마디로 말해 좀 시시했던 것이다.

왜 종소리를 치지 않았을까? 또 왜 순위를 뽑지 않았을까? 한참이나 지나서 그 프로그램 사회자인 송해씨는 귀국을 하였고, 어느 아침 방송 토크쇼에 나와 그 뒷얘기를 우리에게 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 방송 관계자가 그 "땡!"소리를 거부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설명하길, 왜 노래 부르러 나온 사람을 무안을 줍니까? 왜 누군가를 뽑아서 즐거움을 몰아줍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 갑자기 나는 저들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인간임을 깨달았다. 송해씨는 그 뒷얘기를 전해주긴 했지만,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바를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그 "땡!"하는 종소리를 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몰래카메라는 또 어떤가? 자유진영(?)에서 방송하는 텔레비젼을 하루만 보고 있으면, 그들이 무엇에 즐거워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한 동안 많은 문화단체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중단하라는 구호가 있어 왔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고, 어떤 사고방식 속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가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따져보지 않는다. 그 병폐야 은하수의 무리를 이루는 별들만큼이나 많지만, 우선 그것은 인간들의 관계를 물질적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물질적 관계란 물건이든 뭐든 교환이 가능한 관계를 의미한다. 이 사회는 교환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보면서 모든 것들을 판단한다. 가치나 등급을 정하고, 그것을 다른 어떤 가치들과 바꿀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사물과 사람을 대면한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교환이란 옛날 사람들이 하던 식의 물물 교환이 아니다. 상인들의 교환이란 이윤을 내는 교환을 의미한다. 즉 교환되는 것들의 가치가 동등한 것이어서는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인들에게 있어 본전치기란 손해보다도 더 실망스럽고, 그들을 맥 빠지게 하는 것이다. 잉여가치. 이것이 등가적인 교환의 표면 아래에서 감돌고 있는 교환의 심층적인 의미이다. 노동자들의 노동과 임금의 교환이 동등한 가치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파업이나 노조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또 만일에 그러한 등가의 물물교환이 일어났다면 자본주의적 이윤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자본의 재생산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의 교환체계가 달라지지 않는 한에서는 파업이란 점근선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교환을 함으로써 가치들을 비교한다. 이것이 또한 "물질적 관계를 갖는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가치들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특정 형태의 물건들처럼 그것들을 측정해야만 한다. 우선 물건들을 측정하려면 자(尺) 라든가 저울과 같은 척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물건의 공간적 성질을 한정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척도로 잴 수 없는 경우에는 사물끼리 줄을 세운다.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가? 혹은 나쁜가?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 가벼운가? 어느 것이 더 큰가? 작은가? 어느 것이 더 예쁜가? 못생겼는가? 어느 것이 더 잘하는가? 못하는가? . . . 한이 없다. 이 교환행위 속에서는 사람들조차도 어떤 물건들처럼 비교되고, 측정될 수 있는 가치들로 환원되어야 한다. 우리는 "몸값"이라는 말을 비롯해 몸의 척도를 나타내는 용어들을 아무 느낌 없이 쓰고 있다. 더 비싼 몸이 있고, 싼 값의 몸이 있다. 이는 근수가 더 나가고 안 나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 가치란 "이것은 좋다 혹은 저것은 나쁘다"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어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구별에까지 나아가곤 한다. 그것이 인격이든 부(富)이든 외모이든 간에 우리가 발명한 기준들은 무수하게 많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일류라든가 이류라든가 삼류 등을 구별하고, 심지어는 스스로 일류나 이류 혹은 삼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보면 감정들조차도 비교의 대상이 된다. 누가 더 슬픈가? 덜 슬픈가? 누가 더 기쁜가? 덜 기쁜가? 누가 더 행복한가? 덜 행복한가? 가령, 우리는 사랑과 우정을 비교하거나, 친구들 간의 행복을 비교한다. 무엇이 더 기쁜가? 아닌가? 혹은 무엇이 더 큰가? 적은가? 사랑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분자적 상태와 배열이 있고, 또 우정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분자적 상태와 배열이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영수의 행복과 철수의 행복 각각을 이루는 특이한 분자적 상태와 배열이 있는 법이다. 그 상태와 배열들은 서로 본성적으로 다른 행복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둘을 비교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무엇이 "더 . . . 한가?" 혹은 무엇이 "덜 . . . 한가?"를 따져보고, 궁극적으로 이 두 상태들을 일반화하고 단일화 한다. 그래서 사랑이 우정보다 더 강하고 우정이 덜 강하다든가, 영수가 철수보다 행복하고 철수는 영수보다 불행하다든가 하는 식의 차별적 발상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 "엄마하고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학교라는 곳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싹틔우는 비닐하우스이다. 서로 무관할 뿐만 아니라 본성적으로 다른, 남의 집 귀한 아이들을 교실에 몰아넣고, 누가 더? 누가 덜? 의 이데올로기를 그 뿌리에서부터 심어준다. 이렇게 천박하고 무지한 사유체계 덕분에 아이들은 물건이 되어가면서, 그 비교로부터 샘솟는 슬픔을 몸속으로 내면화하고, 인상을 구겨가면서 인생을 망쳐간다.

물질적인 관계 속에서 비교되는 것들은 모두가 부정적인 것(the negative)이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물을 비교하려면 반드시 그것과 유사하거나 동류(同類)의 것이라고 판단된 다른 사물과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짝을 맺어야 하고, 따라서 그 사물의 본질과 가치는 짝을 맺는 다른 사물의 본질과 가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비교란 사물을 상대적 존재로 추려냄으로써, 그것의 가치와 본질을 특정 영역으로 가두는 행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존재에 부여된 의미 외에 다른 어떤 자격을 가질 수 없도록 한다. 비교란 존재의 상대적 규정이고, 규정이란 바로 존재의 부정이다. 가령, 코끼리와 손톱깍기를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의미한 짓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 본성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견주어 논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코끼리와 기린은 비교한다. 그들은 동물이라는 공통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이라고 하는 하나의 일반관념이 만들어지고, 서로 다른 존재인 코끼리와 기린은 동물의 일반성 아래에 집결된다. 무관할 뿐만 아니라 본성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능력과 취향과는 상관없이 교실에 모여 동일한 학습을 받듯이, 하나의 단일하고도 동질적인 존재로 뒤섞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코끼리는 기린이라는 척도를 통해 가치를 갖고, 기린 역시 코끼리라는 척도를 통해 가치를 갖는다. 우리의 영수와 철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이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감정 상태가 행복이라는 단일한 용어 아래 뒤섞이면, 마치 완벽하게 비교 가능한 것처럼 둔갑해 버린다. 이런 식으로 영수와 철수는 단일한 용어 속에 뒤섞여 인간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부여받고, 나아가 누가 더 행복한가? 라는 질문 속에 던져져서,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복을 결정짓는 조건들, 가령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외모라든가, 글쓰는 능력이라든가, 말하는 능력이라든가, . . . 하는 공통성의 조건들을 가질 것을 강요당한다. 그리하여 그 공통적 조건을 더 충족시켜 주는사람이 결정되면, 그들 중 하나가 보다 우월한 존재 혹은 열등한 존재로 나누어진다. 그것은 시력이 정상인 사람과 장님 중에 누가 더 시력이 좋은가? 하고 질문하는 것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어떤 것을 결여하고 있으며, 또 어떤 것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는 사물들을 특정 기준에 의해 재배열하고, 그럼으로써 사물 각각의 고유함을 박탈한다. 존재들의 그 고유함이 사라짐으로써 모든 다양성 역시 부정된다. 또한 차이가 사라짐으로써 사물들은 지루한 존재(the indifferent)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본성적이고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을 마음대로 뒤섞어서 비교하고, 동일화하고, 하나를 다른 하나에 귀속시키고, 부정하고, 일반관념을 만들어댄다. 이것이 바로 옛날부터 서양인들이 잘 해왔던 철학적 이분법이다. 그러한 이분법이란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구분하고 갈라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서 진짜를 선택하고, "누가 더 ~ 한가" 혹은 "누가 덜 ~ 한가"를 차별하여, 나머지는 그 진짜에 귀속시켜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상사성(similarity)과 유사성(likeness)이라고 하는 두 가지 형태의 닮음 관계로 설명할 수가 있다. 간단히 풀어 설명하자면, 상사성이란 두 친구의 생김새가 서로 비슷해 보일 때를 뜻하고, 유사성은 아이가 어머니를 닮은 경우를 뜻한다. 그래서 상사성은 서로 닮은 관계를 갖는 두 존재가 어느 누구에도 귀속되지 않고 우연히 친화성에 의해 관계를 맺는 경우이고, 유사성이란 하나가 다른 하나의 모델이 되어 그 닮은 관계가 종속적인 형태로 나누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에는 "너희 둘이 닮았구나!"라고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너 엄마 닮았구나!"라고 한다. 유사성의 경우엔 모델과 복사물의 관계가 성립되어 모델은 진짜가 되고 복사물은 가짜가 된다. 지금까지 위에서 설명해 왔던 "비교에 의한 사물의 부정"이란 바로 이 유사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둘 중에 더 ~한 것을 선별하여 골라내고, 그 나머지는 선별된 참된 모델에 따라 재 정의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들의 본성적인 차이가 아니라 동질적인 차이, 즉 모델을 기준으로 하여 정도상의 차이를 구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분법의 진짜 문제는 사물들을 구분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뒤섞어서(즉, 동질적인 부류로 만들어서) 그 고유의 존재를 훼손시키는 것에 있다. 사이드(Edward Said) 말마따나 서양인들이 동양과 서양을 구분했던 것은 단순히 그들 간의 본성상의 차이를 나눈 것이 아니었다. 인류학적 야망에 부풀어 있었던 그들은 인류(Human Being)라는 단일한 용어 속에서 진짜 인종을 선별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렇게 선별된 동양론(Orientalism)을 후손들에게 오랫동안 가르쳐왔던 것이다. 유색인종을 대하는 백인들을 가만히 살펴보라. 이 말뜻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하다는 것은 본성적으로 다르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사물들을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교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성을 부정하는 행위들을 통해 각각의 사물들에게 그 본질과 가치를 강요한다. 불가능한 것을 실천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억지와 폭력의 감행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이렇게 강요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배타적으로 소유해야 한다. 다양성을 부정하고 특정한 가치를 강요하는 사회 체계는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리를 찾지 못하게 한다. 그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 가치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삶이 빈곤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교와 부정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유이다.




<문예노트>
Posted by huun
 

나의 몸에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짜여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늬가 나있다. 이들은 내 생애동안 나의 사유와 몸짓과 꿈이 내 육체를 지나다니면서 만들어 놓은 잠재적 문신들이다. 대단히 미세한 점들로 모자이크된, 너무나 미세해서 우리가 흔히 지각하는 방식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운, 시간의 무늬. 이 무늬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지루해하거나 흥분하는 여러 가지의 윤리적 패턴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가 이 섬세한 결을 이해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할 것이다. 직접 만져보거나 맡아보거나 맛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이것은, 말하자면 나만의 지도인 셈이다. 이 지도가 바로 내 육체에 관한, 나아가 내 행위와, 정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채, 이 지도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시간에 관한 윤리적 지침서이다. 나는 이 지침서에 나있는 그 보이지 않는 점들을 따라, 혹은 이 점들 간에 그어진 혹은 여러 겹으로 접힌, 거부할 수 없는 선을 따라 살아간다.


그래서 이 육체와 시간의 무늬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알아차리는 일종의 암호이다. 이 암호를 알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해야하며, 아주 많은 감정들을 서로간에 가져야 한다. 이들 간에 쌓인 지속의 크기와 부피에 따라 그 암호는 더 난해해지겠지만, 그 만큼 서로를 식별하고 친밀해지는 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능력은 사회생활에는 쓸모가 전혀 없다! 심지어는 반-사회적이기까지 하다.

수십 년 동안 헤어져 있다가 우연히 길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찰나적 순간에 조차, 놀랍게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힘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무늬 덕택이었다. 만일 나의 이 자그마한 무늬들과 지도를 미리 알고 있는 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조언 차원에서 미리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내가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과도 비교적 수월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시간의 지속이란 한번에 뛰어 넘거나 되돌아 갈 수 없고, 누군가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망설이고 선택하고 행위하는 과정 속에서만, 오래 머물러 깊이 침잠되어 심오한 기다림을 견뎌냄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이지 참담하고도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얼마나 많은 무늬가 흘러야 할까? 이것이 이별을 마주한 사람이 언제나 한숨을 내쉬며 조급한 마음에 내뱉는 대사이다. 그의 두려움은 그 두터운 무늬의 상실과 기약이라는 이중의 구속감을 감당할

<문예노트>
Posted by huun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프로이드(G. Freud) 얘기 잠깐하고 시작해보자. 살아있는 유기체는 쾌감을 추구하고 고통은 피하려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편적 원리로서 바로 쾌락원칙이다. 그런데 프로이드는 <쾌락원칙을 넘어서>라는 논문에서, 그 보편적 원리로부터 벗어나 외부에서 떠도는 몇 가지 예외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현실원칙의 부정하는 기능이나 우회로에 의해 발생하는 불쾌라든지, 쾌를 불쾌로 전환시키도록 이끄는 정신 조직 요소들의 군사 지리학과도 같은 투쟁이라든지, 어머니의 사라짐과 같은 불쾌한 경험을 재생산하여 반복하는 아이의 놀이라든지, 외상성 신경증에서 자주 보이는 외상적 경험에의 고착이나 반복 강박, 기능적 장애나 전이 현상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예들은 모두가 특정 개인에 의해 반복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불쾌와 관련이 있다. 쾌락 원칙으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예외들인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것은 치료 과정에서 발견되는 이와 같은 경험적 예외들이 아니었다. 하나의 동질적인 원리나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잔여물들을 다루는 것은 문제를 매우 복잡하게 이끄는 처사일 것이다. 이는 더 이상 그 체계를 고수할 수 없으며, 나아가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라는 요청을 받아들여야 함을 뜻한다. 예외들이 발생시키는 이와 같은 복잡성에 의해 쾌락원칙은 초과용량에 달한 것이다. 이 때에 필요해 지는 것은 무엇일까? 프로이드가 반복해서 언급했던 사색적 고찰, 즉 철학적 반성이 아닐까? 사색적 고찰이란 개념화되고 보편화된 원리로부터 벗어나 주변을 맴도는 예외들을 찾아내거나 분류하는 과정이 아니다. 실제의 경험적 자료들과 법칙을 초월하여 이 원리를 가능케 하는 보다 상위의 어떤 것을 발견하는 과정. 이것이 사색의 문제이다. 프로이드는 초월적인 어떤 것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삶 본능의 토대라고 할 죽음본능에 관한 논의 뿐 아니라, 어떤 경우든지 쾌락원칙은 지켜진다고 하는 애매 모호한 논의에까지 이른다. 뭐 이런 저런 구체적인 얘기야 정신분석의 사정일 테니 여기까지만 하고 한 가지만 기억해 두어야겠다. 체계의 문제 자체를 검토하고 조사하는 과정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철학적 반성에 입회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관료는 철학을 하고 싶은 것일까? 혹은 그들의 공무(公務)라는 것이 철학하기 인가? 내가 아는 한 공무원들은 사색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철학적 반성은 그들과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기질과도 무관하다. 그런데 이들은 끊임없이 체계를 반성하고 구성하면서 심지어는 체계 그 자체가 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예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체계에 집착하거나, 심지어는 그 유령(예외)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망상에서 출발한다. 이들에게 있어 체계의 완벽함이란 주변에서 배회하는 예외들을 모조리 제거함으로써 달성된다. 이에 따르면 예외들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예외의 발생은 체계의 경제성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체계의 목적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외들은 힘겨운 에너지와 아까운 비용을 의미한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소리를 낮추고 전방(前方)만을 주시하며 가던 길만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버스노선 체계, 민원 처리 체계, 주민 등록 체계, 병원 관리 체계, 각종 회의 체계, 체계에 의한 체계, 체계에 관한 체계, 체계의 체계, 체계를 위한 체계, . . . 한도 끝도 없는 이 소란한 체계들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체계는 언제나 조용하고 지루하며 단조로울 뿐이다. 동사무소 등의 관공서에 가보면, 경력이 오래된 공무원일수록, 무슨 말 안 하기 대결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조용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체계 그 자체가 되는 과정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체계란 자질구레한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끄러운 절차들 위에 우발적인 질문들이 생긴다면 그 체계는 실패한 체계이다. 행정 관료가 질문을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소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체계는 체계여야 한다는, 따라서 절차들은 자동화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침묵으로 관철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용지가 어디에 있죠?"라고 하는 간단한 질문에조차 절대로 대답하지 않는 그들의 침묵에는, 고집 센 철학자의 미간에서나 볼 수 있는 무늬와 유사한 강도의 고뇌와 신념이 있다. 용지가 어디에 있냐고? 저런 어리석은 질문에 까지 내가 대답을 해야 하나? 다소 코믹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대답할 수 없는 그들의 애로사항을 이해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예외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망상에서 비롯된 그 애로사항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애로사항은 애초부터 잘못 설정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체계로부터 이탈하여 자유롭게 떠도는 예외들은 필연적으로 있기 마련이다. 다르게 말해 완벽한 체계는 필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우선 완벽한 체계란 앞으로 생겨날지도 모르는 변수에 대해 완전한 예측과 통제를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체계 혹은 모든 독립변수의 최초의 상태를 완벽하게 정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그 체계가 소모하는 양에 맞먹는 양의 에너지를 지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보르헤스(L. Borges)의 글에 좋은 예가 있다. 제국의 완벽한 통제에 대한 망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국을 완벽하게 재현한 지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지도와 제국의 일대일 대응을 가능케하는 현척지도에 대한 꿈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제국을 파멸로 이끈다. 전 국민이 지도 제작에 온 힘을 소진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Umberto Eco는 IL SECONDO DIARIO MINIMO(1992)에서 매우 짖꿎은 방법으로 이 현척지도의 불가능성을 논증한 바가 있다). 변수를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한 여러 정보는 그 자체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정보가 창출하는 역 엔트로피는 소모되는 에너지량에 의해 반드시 다른 곳에서 엔트로피를 생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체계의 완벽한 통제가 효율성을 증가시킬 것 같지만, 사실은 효율성의 정도가 낮아진다. 국가나 사회경제의 관료제적 운용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관료는 자신들이 통제하는 전체체계나 하위체계를 숨막히게 하고, 그 과정에서 관료 자신 또한 질식시켜 버린다. 이를 부정적 피드백이라고 하는데, 하나의 상태는 그것이 관계하는 다른 상태들과의 평형을 유지한다는 일반 경제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어쨌든 완전한 체계는 관료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예외들보다도 더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예측과 통제의 연속성에 기초한 완벽한 체계는 그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할 비용 혹은 대가 때문에 실패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같은 체계 외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물질 자체의 성질과 같은 체계 내적인 한계 역시 존재한다. 료따르(J-F. Lyotard)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한 논문에서,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지면이 필요한 과학적 성과들(양자역학이나 원자 물리학의 도입, 새로운 수학적 인식과 같은)을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나열만 하자면 이러하다: 구(求)체의 부피에 따라 변화하는 내부 공기 량의 밀도 측정에서 나타나는 산발성(Jean Perrin의 실험), 비누와 소금이 섞인 물거품의 외형과 같이 표면에 접선을 그을 수 없는 불규칙성을 갖는 함수의 존재(Mandelbrot의 도함수 논의), 정밀측정의 한계를 보여주는 미소입자의 브라운 운동(Brownian movement), 브리타니 해안선, 분화구로 뒤덮인 달의 표면, 별을 이루는 물질의 분포, 전화 통화중의 혼선 발생 빈도, 대기의 난류나 구름의 모양과 같이 윤곽이나 분포의 규칙성을 보여줄 수 없는 대상, 만델브로(Mandelbrot)가 보여주었던 자기-상사성(self-similarity)을 갖는 프랙탈(Fractal)구조, 둘 이상의 통제변수가 동시에 역치(threshold)에 도달하였을 때 발생하는 상태변수의 예측불가능성에서 보듯이 결정된 현상들 속에서 발생하는 불연속성에 관한 르네 통(Rene' Thom)의 파국이론(catastrophe theory), 역설이론을 정신분열증에 화용론적으로 적용한 팔로알토(Palo Alto) 학파의 이중구속 이론(Double Bind Theory) 등이 바로 그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무엇일까? 료따르에 따르면 "연속 미분함수는 지식과 예측의 패러다임으로서 더 이상 우월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불확실성(통제의 결여)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며, 불확실성은 정확성과 함께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체계의 구성은 예외들을 배제하는 과정이 아니라 반대로 예외로부터 파생하는 것이 아닐까? 프로이드가 두개의 본능(생의 본능과 죽음 본능)을 불가분한 것으로 보았듯이, 체계는 그 자신 안에 체계를 벗어나는 예외들, 다시 말해 그 자신의 역설을 스스로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존재 윤리학적 질문을 하나 덧붙여야겠다. 만일에 완벽한 체계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이 가정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유효한 것으로 남아있다. 간단한 예로, 어느 공무원이 자신의 공무를 매끄럽게 해줄 완벽한 체계를 확립했다면, 그래서 더 이상 불필요한 예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는 이상적 관료체계를 추구하는 개인의 모순적 존재를 설명해줄 근거가 있다. 완벽한 체계가 불변의 상태에 이르면, 그 체계의 수행자들은 소멸되어야 한다. 우발적인 예외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 공무원이 왜 거기에 앉아 있어야 하겠는가? 어떤 체계에 있어 예외들의 소멸이란 그 수행 주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칸트(I. Kant)적 의미에서 순수 형식이 되어 가는 현대의 법체계에 있어, 그 주체가 더 이상 입법부나 사법부가 아니며 법관이나 법인은 더더욱 아니듯이 말이다. 이것이 시스템의 이데아가 아니겠는가? 포이에르바하(Ludwig. A. Feuerbach)는 『기독교의 본질 Wesen des Christentums』에서, 신이란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절대적인 표상으로 전화된 인간 자신의 속성이라고 쓴 바가 있다. 하나의 대상 일반 혹은 그 이데아가 확립되고 나면, 이제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 바로 그 표상이 원인으로 자리 잡는다. 이것이 이른바 소외된 사회 속에서의 주체의 전도(顚倒)된 이미지이다. 지고(至高)의 존재는 종교적 환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는 그 보다 더 종교적인 강박이 있다. 신경증적이기까지 한 체계에의 망상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주체는 더 이상 그 체계를 운용하는 수행자가 아니다. 수행자란 운용 절차상의 한 기능일 뿐이다. 체계의 신경증적 망상이란 바로 체계 그 자체가 순수 형식으로서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개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추상적 인간으로 혹은 인간 일반으로 부정하거나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에 살아갈 수 있다면 체계에 내재한 궁극적인 역설이란 바로 이 개인들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각이 하나의 예외이다.


이러한 얘기들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예외들이 사라진 사회, 완벽한 체계의 사회가 실현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손가락만 빨고 있겠다는 말인가? 스스로 체계 자체가 되어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 사회의 관료에게 필요한 것은 예외 없는 체계나, 그 체계에 대한 사색이 아니다. 완전한 체계란 무능력의 망상적 반어(反語)일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외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음을 수긍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단발적으로 처리하는 능력, 즉 땜질 작업에서나 있을 법한 유연함과 협상능력이다. 엔지니어가 아니라 땜쟁이가 될 것을 당부한다. 또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목적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삶이란 최종적인 체계나 목적을 향한 과정이 아니다. 최종적이라고 가정된 체계의 예외들, 그 내부의 역설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예외 없이 지켜지는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관료라고 해서 이 원칙이 달라질까?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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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 벤수잔(Pierre Bensusan)을 알게 된 것은 마이클 헤지스(Michael Hedges)라고 하는 기인(奇人)에 가까운 기타리스트를 통해서였다. 마이클은 자신의 앨범 Aerial Boundaries 에서 "Bensusan"이라는 곡을 연주하였고, 그 테크닉과 분위기는 벤수잔과 매우 흡사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벤수잔 음악의 해석이었다. 그 해석의 중심을 이루는 테크닉이 바로 벤수잔 특유의 해머링(Hammering)과 슬라이딩(Sliding)이다.


해머링이란 현을 오른손 손가락의 핑거링(Fingering)을 통해서가 아니라 프랫(Fret) 위에서 움직이는 왼손가락을 방아찢듯이 하여 소리를 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멜로디가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면서 흐르게 된다. 슬라이딩은 해머링을 극단적으로 밀고나가 프랫과 프랫 사이들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미끄러지며 연주하는 방법이다. 이들 주법은 현을 퉁기지 않고도 그 음색이 스스로 보존되면서 흐르도록 한다. 그리하여 현악기를 현악기이게 해준다. 마이클은 자신의 곡들에서 벤수잔의 해머링이나 슬라이딩과 유사한 연주법을 아주 많이 구사하였다. 또 그는 벤수잔이 약간의 터치만 보여주었던 파장주법(손바닥을 이용해 현을 두드리면서 타악기 효과를 내는)을 최대로 확장시켜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손가락에 국한되지 않고 포지션을 다양하게 하였다.

벤수잔 연주법의 기본은 엄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스윙풍의 베이스음을 "하낫 둘, 하낫 둘" 하는 식으로 두 박자로 깔고, 그 기본음에 따라 검지와 장지와 약지를 이용해서 멜로디 라인을 구사하는 방식이다. 기본음은 아프리카나 이슬람의 토속적이고도 깊은 리듬감을 만들어 내고, 아래에서 구사하는 현란한 핑거링은 그 리듬을 구현하는 육체들의 요란한 민속 춤과도 같다. 특히 그의 특유의 해머링과 슬라이딩은 동양적 신비감을 연출하면서 묘한 이질감을 자아낸다. 그는 법적으로는 프랑스인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알제리 아니 세계인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새롭고도 낯선 것들을 찾아 다니는 것일까? 그것은 예술가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 변덕스러운 영혼때문에,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에 딱 맞는 육체를 찾아 이리 저리 헤매다니는 예술가들에게. . . . 모든 예술가들의 근원적 고향은 아마도 음악이 아닐까? 육체가 없이도, 영토가 없이도, 스스로 지속하여 자신을 완성해가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음악 자체에 관하여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고 불가능한 것인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 속에는 표상이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 행위 외에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음악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첫 곡은 벤수잔을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Musiques 앨범에 수록된 "Le Voyage pour L'Irlande"이다. 신비스러운 보컬과 반복적인 리듬의 기타 연주가 제격인데, 제목이 말해주듯이 미지의 나라를 여행하는 듯 하다. 두번째 곡은 Live in Paris 앨범에 있는 "Bamboule"이다. 이 곡은 자신의 단짝인 Didier Malherbe(관악기)와 듀엣으로 연주하였다. Vocal! Flute! Guitar! 이 세 육체가 이름 모를 영혼의 주변을 맴돌며 나풀거리는 삼중주가 근사하다. Volume Up!!


첫    곡: "
Voyage pour L'Irlande" from Musiques

둘째 곡: "Bamboule" from Live in Paris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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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여행을 하게 되는일이 가끔 있다. 낯선 곳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나면, 밀려오는 막연함에 가슴이 두근거리고는 한다. 갈 곳이 없는 저녁이라면 고독감은 더해진다. 그것을 견딜 수 없다면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면 끝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서 살아야 한다면, 다시 되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떨까?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텅빈 거리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그림보기) 육체를 잃어버린 소수자(minority)가 느끼는 낯설고도 막연한 감정이 우리의 가슴을 후벼판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손이 홀가분한 여행자가 아니었으니. 잔뜩 손에 쥔 보따리를 질질 끌며, 자신의 영혼을 담아줄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도회지의 생활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지가 매여있던 시골로부터 벗어나 작은 환락을 만끽할 수가 있었을 테니. 그곳에는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고, 그들의 질긴 시선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한다면, 꿈꾸던 우아함을 적당히 포기할 용의가 있다면, 목숨이 유지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더러는 살맛도 나고 행운도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시가 그녀에게 안겨준 자유란 그녀를 속이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궁핍이라고 하는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가질 수 있는, 말하자면 정글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자유였다. 그녀는 삶이 가해오는 생애 최초의 그 공포에 맞딱드리지 않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일해야 했을 것이다. 이루고 싶던 꿈도 어느새 바뀌지 않았을까? 도회지의 삶은 더 이상 권태가 아니라 무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다가올 것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그 삶은 현재의 모든 것을 미래의 불안으로 흡수해 버린다.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기에 떠올릴 수조차 없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불안과 공포란 임박한 죽음 속에서가 아니라 무한한 자유 속에서 최대화되는 법이다. 자신을 죄이고 있던 사슬이 풀어지면, 우리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은 불안과 공포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은 자유의 댓가로 영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공포란 도시 환경 자체가 개인에게 주는 정서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도 다를 것 없는 불특정한 구역들. 가려진 태양.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거리들. 또 그 길을 따라 오고가는 이들의 뻣뻣해진 육체. 조각난 노동과 그 현장. 사방에서 밀려오는 소음과 악취. 뿌리칠수도 응할 수도 없는 유혹들. 번쩍거리는 불야성. 그 속에서 무엇인가에 굶주린 잠재적 하이에나들. 그러면서도 아이스크림과 초콜렛의 천국. 쇼우 윈도우. 백화점. 저절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 . .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어떠한 짓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이 거대한 기계 덩어리. 한도 끝도 없어 보이는  이 기만적인 자유. 또 거기서 겪게되는 배회와 방황. 시-공간적 좌표가 소실되어버린("여기가 어디지?") 이 회색 도회지에서 그녀는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이제 그녀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감옥에서 하루 하루를 재빠른 걸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배운 기술도, 아는 정보도, 아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테이블을 치워가며 낯선자들에게 불려다니거나, 여인숙같은 곳에서 남녀들이 밤새 뱉어놓은 찌꺼기들을 치우며 한낮을 보내거나, 콘베이어벨트나 선반 앞에 꼿꼿이 앉아 기계의 시다 노릇을 하거나, 좀 나은 것이라면, 사무실에서 문서 심부름이나 커피를 타주는 일 정도 였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70년대 한국의 도회지에서 중졸의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욕지거리를 듣는 일은 흔했을 것이다. 못볼 일도 많이 겪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추행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회지의 세월은 그녀 안에서 만발했을 설레임과 호기심들을 하루에 하나씩 떨구어 나가는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 삶은 깔깔거리며 발랄한 미소를 지었던 그녀가 꿈꾸어온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녀가 세상을 실망시킨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 시골, 서울, . . . 그녀는 그 어느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반대로 그녀가 그 모든 것들에 실망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젊은이들의 앳되고도 순진한 미소를 망쳐놓는 것이 삶 자체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지녔던 것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그 미소는 점점 짜증과 냉소의 주름들로 구겨져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실망과 더불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에게 무례했던 시골과 서울로부터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동경도 품지 않았다. 식물을 길러본 사람들은 이를 잘 안다. 식물은 환경이 맞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환경과 자신을 절연한다. 식물의 투쟁방식은 다름 아닌 실망이다. 무엇인가에 실망한다는 것. 그것만큼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것도 없다. 말 없이 떠나가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실망할 뿐이다. 그녀의 영혼이 그녀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그녀는 결혼을 하였다. 그녀가 처녀를 잃은 것은 그 때부터일 것이다. 자신을 거칠게 대하는 삶으로부터 그녀가 바랬던 것은 약간의 다정함 뿐이었다. 그녀 자신의 환상이든 아니든, 어쨌든 그녀는 그 다정함을 주는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채 맡겼다. 몇 년후, 식당 주방장과 결혼하겠다고 한 남자를 집에 데려왔을 때,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사람들의 눈총과 동정어린 비난을 기억한다: "저럴 걸 왜 정신 못차리고 이혼을 . . .!"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남편은 성실했고, 그녀를 꽤 사랑해 준다고 들었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오래 전에 들은 기억으로,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손바닥 만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가 다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가슴 속에 품은 것들을 추스르지 못해 공부를 잘 하지 못했으며 외모가 잘나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욕망을 실현시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수단을 쥐지 못했다. 욕망이 움츠려있기에는 너무나 피로해서, 그 피로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그녀는 타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육체를 잃은 영혼처럼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해 엉거주춤 했던 세월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지금은 무릎 관절이 심하게 아파 시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또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는 불행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은 그녀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결정으로 불행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불행이 사라진 낙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을 수도 없고, 있다해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낙원이 아니다. 다만 불행조차도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길 바랄뿐이다. 그랬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다른 조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만의 빛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오래 전에 이 사진 속에 자국을 남겼던 그 소란한 빛처럼. 할아버지 뿐 아니라 사회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빛이 그녀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그녀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버지의 보호에 의해서도 아니고, 남편의 사랑에 의해서도 아니다. 도회지가 그랬듯이 내버려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다려 주는 것.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오로지 기다려 주는 것. 그리하여 그녀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한 없이 기다려 주는 것이다. 감광판을 태우기 위해 조리개를 활짝 열고, 하염없이 빛을 기다리는 카메라, 그 초연한 카메라처럼. . .




<문예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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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tfried Leibniz의 <Monadology>(1714)
trans in English by George Montgomery(1902)





그리고 아직 미완성된 번역본 (빠르게 읽으며 속기로 번역한 것이므로, 불완전함).

Posted by huun
Friedrich Nietzsche의 Thus Spake zarathustra(in english)

Posted by huun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모의 화사함은, 내가 서울로 이사오기 전까지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우선, 나는 국민학교 2학년 2학기에 서울로 전학을 왔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은 나를 놀리고는 했으며, 나 역시 녀석들의 억센 텃새에 눌려 주눅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쉬는 시간이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좋을 리가 없었다. 시험만 끝나면 어머니가 불려오기 일쑤였다. 이모가 그렇게 칭찬했던 서울 생활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헛된 상상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한편으로는 밉기도 했던 이모의 모습은 그렇게 점점 잊혀지고 있었다.

그녀의 화사함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은 더 큰 이유가 있다. 내 마음 속에 그녀를 나타나게 했던 것은 이제 더 이상 그녀의 향긋한 냄새가 아니었다. 분홍빛 뺨의 부드러운 촉감은 더더욱 아니었다. 또 그녀의 깔깔거리는 장난이 나를 당혹스럽게 해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이제 그녀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식구들의 입담에 의해서만 내게 전달될 뿐이었다. 시골에서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삼촌이 올라왔을 때라든가, 엄마 아버지의 대화 속에서만 이모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거나 마주보는 인칭이 아니라, 내가 빠진 인칭, 나 와는 관계가 없는 "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식구들이 저만치에서 거리를 두고 요모조모 살피는 시선 속에만 있었고, 그것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농사 일을 돕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집을 갈 생각도 없었다. 학벌이 없어 취직은 더 어려웠다. 집안 일을 부지런히 배우고 도울만큼 참한 처녀도 아니었다. 그녀가 가족을 위해 또는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식구들 마음에 새겨진 이모의 빛은 더 이상 생기에 차 있지 않았다. 산 너머를 주시하는 포부를 가진 처녀도 아니었다. 다만 한 명의 시골 여자일 뿐이었으며, 자신이 해야할 의무나 할 일을 미룬 채, 소녀적 감성에 고착되어 비현실적인 동경만을 품은 철부지에 불과했다. 그러니 바람이 한껏 들어간 이 시골 여자를 근엄한 촌구석 가부장 기계가 곱게 보았을 리가 없다. 밭을 일구는 것이 무엇인지, 밥물은 얼마나 채워야 하는지, 김치에 젓갈은 어떤 것을 넣어야 하는지, 결혼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와 남편이 무엇인지, 또 아내가, 여자가 무엇인지, . . . 이러한 질문들은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엔 막연한 약속만이 채워져 있었고, 그녀를 둘러싼 시골의 토담 한 가운데에서 한없는 갈증만을 느끼고 있었던, 말하자면 그녀는 소멸이 예고된 초라한 빛이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의 이모는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 첫 번째 결혼식 날은 비가 많이 왔었다. 결혼식 날 비가 오면 불행하다는 어른들의 걱정 소리가 들렸지만, 정작 결혼할 남자가 대머리라고 수군거리며 비아냥대던 이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나 시집간다!고 들뜬 목소리로 이모가 내게 왔을 때, 그녀의 진한 화장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었다. 나는 결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진한 화장을 보고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모는 1주일이 채 못되어 시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녀로부터 직접 듣지 못했으므로 정확한 이유야 알 길이 없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남자의 대머리가 생각보다 심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후로 이모에 관한 어른들의 얘기는 반은 걱정이었고 반은 비웃음이 되어갔다. 그녀에 대한 화제는 결국 웃음으로 이어지고, 가족이나 친척들끼리 모여 서먹서먹함을 중화해야할 필요가 느껴지면, 여지없이 화제는 그녀에게 가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두 번째 결혼이 조용히 치러졌다. 창피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는 무슨 군수(郡守)의 아들이라고 들떠있었지만, 귓속말로는 재처(再妻) 자리라고 쑥덕거리고들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채 1달이 못되어 이모는 다시 시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두 번이나 결혼을 하고도 그녀는 완전한 처녀였다고 했다. 그 후로 이모는 웃음거리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그들의 눈과 귀를 통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던 나 역시 그랬다. 심지어는 막내 여동생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비난 할 때면, 너 이모하고 똑같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그 비난은 일종의 수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모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구실 못한다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었을 할아버지의 싫은 소리. 고집스런 시골 사람들의 질긴 시선. 서울 가서 공부 잘하는 막내 동생(삼촌)과의 비교. 또 누나를 창피해하는 그가 집으로 내려올 때마다 겪게 되는 사소한 언쟁들. 그리고 싸움. 모욕. 비웃음. . . . 실제로 나는 할아버지의 웬수인 이모와 그의 우상인 삼촌의 큰 싸움을 몇 차례 목격한 일이 있다. 두 번째 결혼이 실패한 후 3개월이 채 못되어, 결국 그녀는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가게 되었다.

그 절망적인 가출은 한편으로는 해방이었고, 어쩌면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의 눈을 피해서 동네를 나와야 했으므로, 새벽에 일찍 혹은 밤 늦게 대문을 나섰을 것이다. 아니, 밤이 늦으면 갈 곳이 없으니, 새벽 일찍 나가야 한다. 계획된 가출이 아니었기 때문에, 짐을 싸들고 나오며 어디를 갈까 망설였을 것이다. 우선 잘 곳을 알아봐야겠지?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그러나 그 시절에는 친구를 받아들일 만큼 여유있게 독립한 여자들이 흔치 않았다. 또 그녀는 중학교를 겨우 나온 학벌이었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 어깨를 피고 살고 있을 친구란 찾아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남편이나 아버지 혹은 다른 어떤 조명 아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집을 나서자 마자 실감을 했을 것이다. 어른들이 왜 자꾸만 자신을 시집 보내려 했는지, 동년배 친구들이 왜 자유로워지기 위해 결혼들을 해대는지, 또 배우지 못해 독립이 힘든 여자에게 결혼이, 그리고 현재 자신의  일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이 고독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 . . 나이 어린 처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뭐 이런 복잡한 사안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것이다. 대문을 나선 것이 후회스러웠을 것이다. 처음으로 맡아보는 차가운 새벽공기가 가로막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 안에 있는 생기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살기 위해서는 취직을 해야했고, 그러려면 틀림없이 도회지 쪽으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서울이었을지도. .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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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주 특별한 이모가 있다. 깊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연민과 같은 동요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이모와 내가 마지막으로 대면을 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이 단숨에 전혀 다른 것으로 지각되는 사춘기였으므로, 중학교 다닐 때 보았던 이모는 어린 시절 마음속의 이모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만약에 이모를 지금 보게된다면, 내 마음속의 그녀는 한꺼번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내 마음에서 끄집어내어 실존하는 것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다. 마음속의 이모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이후에 한 번도 만난적은 없지만, 아직도 이모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마 지금은 환갑이 넘어 할머니처럼 흰머리가 많아졌을 테지? 온 몸에는 세월에 긁힌 흉터들로 가득차 있을 것야.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생기에 찬 처녀이다. 나는 아주 어린 꼬마였고, 그녀는 그녀의 생애 가운데 가장 화사했을 처녀시절이었을 테니. . . .

그녀에게 쓰는 내 마음속의 편지는 이미 하나의 회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아주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쥐어져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일까? 이모가 가꾸어놓은 깔끔한 뒤뜰에서 함께 찍은 흑백 사진! 채송화가 많은 뜰에 대한 기억 탓이었는지, 그 사진은 흑백이었음에도 언제나 울긋불긋하다.

그 사진이 찍힌 것은 순전히 이모의 유혹 때문이었다. 그녀의 처녀시절에 나는 어렸으므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들을 더듬어 보면, 그녀는 언제나 외출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모습도 그랬다. 철모르는 나에게 그녀는 어린아이의 콧소리를 섞어가며 들뜬 어조로 말을 붙이다가, 갑자기 일어나 내 주변을 걷기도 하고,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 몸짓과 목소리는 연극배우처럼 가벼웠기 때문에, 나는 그 자태들이 내는 포물선 위에 실려, 그녀가 가리키는 이곳 저곳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내게 사진을 찍자고 하고서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한껏 차려입고 뒤뜰로 나서던 걸음걸이. 항상 보아왔던 걸음이었지만, 그 뒷모습은 언제나 달라 보였다. 나는 그 사뿐 거리는 뒷모습에 취해 현기증이 나면서도 괜히 신이 나서 따라다녔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내 생애에서 입을 가장 크게 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갸름한 얼굴. 안쪽으로 말아 접은 두 입술. 카메라 렌즈를 주시하는 얇은 두 눈. 멀리 있는 연인에게 선이라도 보일 듯이 다소곳이 기울인 고개. 그 사진 속에 있는 이모는 무엇인가에 도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보아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 답답한 시골에서 살고 있는 모든 처녀들이 가졌을 법한 마음속의 동경을 품으며, 이모의 막연한 봉오리는 하루하루 영글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동경은 일종의 경련(痙攣)이었던 것 같다. 어찌해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고압적인 기침소리와 나른한 시골생활 . . . 그 지루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비틀어가고 있는 나른한 경련. 그래서인지 이모의 눈 속엔 언제나 저 너머가 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할 때조차도 그녀의 눈 안에는 내 뒤에 있을 혹은 그 시골의 깊은 산 저편에 있을 어떤 곳이 들어차 있었다. 특별히 나갈 일도 없었음에도 그녀는 언제나 외출복 차림이었다. 불편하지 않은가 라고 물어보면, 들킨 사람처럼 살짝 화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모는 늘 내게 서울 얘기를 해 주었다. 서울에 가면 코스모스 백화점이라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계단이 저절로 움직인단다?! 너 커피라는 것 먹어 본적 없지? 아이스크림이 뭔지 아니? 그러다가 살금살금 다락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한참 뒤적이다가,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쵸콜렛 사탕을 집어들고 깔깔거리며 나를 활짝 놀라게 한다. 정말이지 신나는 날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 들뜬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달콤한 사탕이 아른거려, 너무나 무섭고도 싫었던 헛기침 소리도 잊은 채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하고는 하였다.

내가 서울로 이사오기 얼마 전부터 이모는 마치 자신이 이사라도 할 듯이 들떠 있었다. 우리는 답사를 핑계로 할아버지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고 서울로 나들이를 하였다. 맨 먼저 가본 곳은 코스모스 백화점이었고, 나는 거기서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 보았다.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 위에서 잔뜩 겁을 먹고 난간을 움켜쥔 채, 다른 한 손은 이모의 하얀 손을 꼭 잡았다. 지하철도 처음 타 보았다.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저절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고, 그 절정을 지하철에서 본 것이다. 버스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 녀석은 아무리 타고 있어도 멀미가 나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울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모 때문이었다. 서울에 온 이모는 그 분홍빛의 뺨이 예전보다도 훨씬 더 붉어져가고 있었고, 나는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고동색 작은 손지갑을 쥔 손, 얇은 팔의 하얀 살결에 돛아 오른 솜털, 잘 룩 들어간 허리선에 딱 맞게 재단한 짧은 치마, 밤색 구두, 향긋한 비누냄새, 금색 시계, . . . 어려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내 마음 속에서 일고 있었던 그 요동들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 연인과 함께 서울로 나들이를 갔던 것이다!  .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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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enri Cartier-Bresson


사람은 자신의 삶 전체에 걸쳐 잠깐 동안이나마 초인이 될 기회를 몇 차례 갖는다. 그 시간은 어느날 홀연히 불쑥 찾아왔다가, 우리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외면하는 순간 머리 속에서 훅 . . . 하고 꺼져 버린다. 그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의 지속을 가능케했던 신념과 가치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에 맞닥뜨린 순간, 즉 자신의 내부의 역설을 만나게 될 기회 같은 것이다. 가령,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없다면 내 삶이 불가능한, 나의 신념, 도덕, 가치들, . . .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내부의 역설이란 말하자면 내가 하나의 우아한 영혼으로서 나 자신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말이라든가 그 밖에 모든 표현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남아있는, 그래서 오로지 그 시간에 직면한 자신만이 알고 있는, 표현 이전의 시간이다. 섬광과도 같은 한 줄기 빛!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소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스러기들을 가지고는 이해 불가능한. 스타일이라든가 문체라든가 하는 것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래서 그 앞에서는 더 잘 말할 수도 있었다고 후회할 필요가 없는. 니체나 카프카나 스피노자가 그랬듯이, 기도중에 있는 독실한 한 사제의 뇌리에 스치는 강렬한 의구심 같은.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가 직면했던 사슬이 풀어헤쳐진 시간.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이 활동하는 부정의 시간. 실재의 다양성과 근본적 대면상태에 처한 지성으로 하여금 "이해 불가능"이라고 속삭이는 직관의 시간. 말하자면 중독자의 무시무시한 금단의 환각. 우리를 주춤하게 하는 막다른 길. 자신이 낯설어지는 어느날. 불쑥 내게 되돌아온, 가차없이 비판했던 자에게 느꼈던 혐오감. 대낮의 소란한 환락 이후 엄습해 오는 고요한 저녁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이 너무도 무시무시한 시간 때문에 고개를 숙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그 시간을 미루며 죽어간다. . . .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사유들만이 참되다."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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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위대한 영화 작가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홈페이지.

http://www.sokurov.spb.ru/


다음은 그의 이력을 Nkino에서 발췌하였다.

1951년 출생. 고리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모스크바 영화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1982년부터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1995년 유럽 영화 아카데미에 의해 세계 영화계의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1979), <고통스런 차별>(1983), <일식>(1988), <구출과 보호>(1989), <두번째 순환>(1990), <스톤>(1992), <속삭이는 페이지>(1993), <오리엔탈 엘레지>(1996), <어머니와 아들>(1997) 등이 있다. 소쿠로프는 정치적인 인물을 다룬 두 편의 전작 <몰로흐>(1999)와 <토러스>(2000)에 이어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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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Left 저널에 발표된 Jameson의 최근 논문 몇편입니다.
주로 globalization과 관련된 주제를 다룬 자료들입니다.

"Fear and Loathing In Globalization"  



"Globalization and the Political Strategy"


"Futur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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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d Community]을 쓴 Benedict Anderson의 논문입니다:
"Western Nationalism and Eastern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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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Claire Parnet가 사후 방송용으로 인터뷰를 찍었고,
Arte라는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내용을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set 설명과 인터뷰 분위기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A-Z까지 알파벳을 딴 주제 목록으로 인터뷰하고 정리한 것이고,
일상적인 주제들도 있어 들뢰즈의 일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제목은 L'Ab&eacute;c&eacute;daire de Gilles Deleuze, avec Claire Parnet
<Gilles Deleuze's ABC Primer, with Claire Parnet>
Directed by Pierre-Andr&eacute; Boutang (1996) 입니다.

http://www.langlab.wayne.edu/CStivale/D-G/ABC1.html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네이버의 지식검색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보다 전문적인 정보들이 있는 곳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Gilles_Dele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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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n & Hardart, Lexington Avenue. 1954-55 / photograph by William Klein

고립된 현대인들 사이에서 누군가에게 선뜻 말을 건네는 일이 힘든 이유는,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생산을 위해 고안된 "욕망의 절약"이나 "욕망의 금지"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근대적 생산방식은 욕망을 매우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미국 작가 Edward Albee의 희곡 Zoo Story(1958)를 보면, 언어를 중심으로 욕망과 권력의 아이러닉한 관계가 어떻게 짜이는지 보게 된다. Jerry의 억지나 폭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에는 피해자의 어조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것은 언어가 욕망과 맺는 관계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게 손가락으로 어떤 사물을 가리켰다고 한다면, 나는 그 손가락이 지시하는 사물을 볼 것이다. 이것이 언어의 본질적 기능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설명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해도, 언어에는 그 자체 명령이 함축되어 있다. Austin을 비롯한 화용론(Pragmatics)자들이 그랬듯이, 언어란 말하자면 불가능한 것들간의 직접적인 가교(架橋)이다. 그래서 Jerry의 언어의 표면은 Peter를 압도하고 그에 대한 권력을 세운 듯 보인다. 단어들을 제시하고 거기에 자신이 의도한 기의를 숨김으로써, 주체는 암암리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표상과 상징의 울타리 안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인다. 마치 주인인 나의 배려에 의해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듯이! 혹은 내가 만든 규칙에 초대되었으니 당신은 이제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혹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이제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권리는 오로지 내가 숨긴 기의를 찾아내는 일 뿐이라는 듯이! 언어는 다차원적인 주름이 되어 우주 전체를  몇 마디의 소절들로 꼬깃 꼬깃 접어버린다. 그 중력이란! 그러나 만일 이 지시에 불응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에 벌어지는 파국은 단지 의미작용이나 지시 관계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만을 드러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 파국을 통해 언어의 본질이 출현한다. 명령과 지시는 거부되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명령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욕망이 좌절되었다. Peter의 냉소(冷笑)가 계속해서 Jerry로 하여금 더 많은 강요와 명령을 낳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Jerry의 끊임없는 욕망의 좌절은 이를 상쇄하기 위한 더 많은 말들을 요구하고, 이는 결국 극단적인 에너지의 소비로서 죽음으로 치닫는다. 언어를 필요로 하는 쪽은 권력자가 아니라 욕망 하는 자이다. 언어의 표층에는 명령이 있지만, 그 심층에는 욕망이 있다. Jerry의 강요에는 어떤 형태로든 당신과 내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렬한 애원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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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매체는 지구 전체를 나아가 우주 전체를 하나의 촌락으로 만들어 버렸다.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리는 그 촌락의 일원임을 분명히 자각하게 된다. 헤겔이 말했듯이 현대인은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읽으면서 중세 사람들에 버금가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중세의 교회가 서구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 끌어 들였듯이, 현대의 신문과 텔레비전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마을로 포섭한다. 대중 매체는 서로 실질적인 관계가 없는 부분이나 개인들을 하나의 전체로, 다시 말해 추상적 관계로부터 파생하는 공동체 의식을 조직한다. 일종의 전도된 공동체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대중 매체에는 묘한 역설이 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세계, 체험하지도 않았음에도 익숙한 세계의 충만함이 있다는 점이다. 신의 전능한 품속에서 내가 태어났듯이, 나의 존재는 충만한 전체에 속해 있다. 그러나 내가 속한 전능하신 아버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듯이, 나의 충만한 전체 역시 그 처소를 알 길이 없다. 감각의 세계로부터 추상의 세계로의 전환. 매체가 만들어 놓은 공동체는 실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양태가 전혀 다른 실재이다. . . .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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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한국에 와서 강연을 했을 때의 원고이다. 영어본과 한글번역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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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분명하다: 과학의 본질을 과학 그 자체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 과학 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노동과 활동은 그 자체의 가치에 의해 지속되어야 한다. 과학을 사용해서 이윤을 창출해 내겠다는 철학은 과학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임금과 경쟁의 질서로 노동을 지속시켜 이윤을 내보겠다는 철학이 노동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듯이 말이다. 상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서 과학 그 자체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연구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과학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은 순진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사회 경제적 조건에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학자들에게는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 속에서 형성된 어떤 윤리가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를 완성하는 가운데 그 윤리를 실천한다. 그들의 윤리란 사회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버려진 공터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형성되는 그들만의 윤리 같은 것이다. 그 윤리는 스케이팅을 완성시킨다고 하는 암묵적인 동의에서 형성된 것이며, 그 과정에서 친구들 간에 주고 받는 규율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규약 없는 규약, 절대적 규준으로서의 내공의 질서는 그렇게 생겨난다. 그들의 목적이란 단 한가지 뿐이다. 대가(大家)가 되어 스케이팅을 완성하는 것! 그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대가는 아니더라도,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결코 싫증을 내는 법이 없다. 스케이트 보드계의 수준이란 그런 과정 속에서 진화한다.

실제로 그들 중에는 대가가 되는 친구들이 생겨난다. 스케이트가 사람인지 사람이 스케이트인지 모를 정도로 일체가 되어, 거의 신귀에 가까울 정도의 공중 활공으로 공간과 육체의 모든 제약들을 훌쩍 뛰어 넘어서는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돈도 안 되는 쓸모 없는 장난질 같지만, 그는 그 행위를 예술의 수준으로까지 끌어 올린다. 스케이팅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존엄한 것으로 만든 그는 존경 받아 마땅하다.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지속되는 것은 그 자체 존엄하기 때문이고, 또 그 자신을 비롯하여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스케이팅의 고유한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혹은 사회화가 덜된 그 오만 불손함 때문에, 간혹 불쾌해지는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존경하고 찬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현실을 최상의 것으로 끌어 올리거나, 최소한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줌으로써, 우리를 보다 자유에 가깝게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상인이 그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고 접근했다고 치자. 어떻게 되겠는가? 그 아이들의 윤리는 이윤을 창출한다고 하는 상인의 윤리로 훼손될 것이고, 대가가 되어 스케이팅을 완성해 보겠다는 열정은 공굴리기의 쇼맨쉽으로 전락할 것이다. 더 이상 자유로워지기 위해 스케이트를 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스케이트는 쳐다보기도 싫을 것이다. 한마디로 상인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상인들의 윤리는 그로 하여금 편법이라든가 마약을 종용하기까지 한다. 그 세계에서 부도덕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양심적 고뇌조차 있을 수가 없다. 대가가 되지도 못하고 상인의 눈에 띄지도 못한 나머지 친구들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하여 더 이상 그 공터에 모여드는 일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케이팅은 사라질 것이다. 이 아이들 뿐 아니라 수 많은 잠재적 대가들, 예술가들, 학자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늙어간다.

예술, 인문학, 공학, 자연과학 할 것 없이, 현재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연구자들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연구를 포기하든지! 대박을 터트리든지! 그 나머지는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무능력 탓이 아니다. 이 이상하고도 변태적인 사회적 관점, 즉 상인의 문화가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포기하지도 못하고 대박도 터트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알 수 없는 죄의식과 자괴감에 사로잡혀 하루 하루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간혹 목격하게 되는 이들의 자살을 똑바로 주시해야 한다. 그 이유를 빈곤이라는 이름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내공의 질서 속에서 과학 그 자체를 온전하게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들을 시장판으로 내몰아서 재주부리는 곰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재주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예 노트>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