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2/11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 2007/12/08 되돌아오지 않는 바람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영화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Journal D'un Cure de Compagne)』(1951) 는 신과 신앙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작품의 형식은 제목 그대로 간략한 형태의 일기들로 꾸며져 있다. 한 젊은 신부가 시골 교구로 부임을 한 후에 거기서 위암으로 죽을 때까지 얼마간의 삶이 그 일기에 적혀있는데, 내용은 주로 자신의 신앙심에 대한 반성, 아니면 신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구 사람들과 지낸 짧은 에피소드들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그의 경건한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부족한 신앙심 때문인지, 사람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흙 속으로 그를 끌어들여 함께 뒹굴며 그를 망가뜨리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갈등과 고통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했다. 고통 그 자체인 삶 속에서 신의 은총을 설교하고, 젊음을 잃어가며 그것의 존재함을 증명하고자 애썼다. 때로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지나친 간섭처럼 보였고, 때로는 교회가 그렇듯이 신의 이름으로 그들의 사적인 삶을 제한하려는 의도처럼 보였다. 오해와 불신의 화신처럼 보이는 이 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는 오로지 침묵하는 것만이 평온해지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신과 오해는 더 커져갔다. 오해는 주로 사람들 자신의 상상 속에서, 자신들이 꿈꾸고 욕망해왔던 것과 똑같은 그림들을 그에게 되비추면서 생겨났다. 그가 술을 마신다든지, 자살을 부추겼다든지, 남의 비밀을 엿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는 더욱 더 침묵했고, 자신에 대한 판단을 그들에게 완전히 내던져버리고 말았다. 또 그것 외에는 길이 없었다. 외딴 방에서 혼자 지내는 밤의 공포는 점점 심해졌고, 잠에 빠지는 것은 대낮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끌어안은 채 자신의 베개 밑으로 침수하는 것 같았다. 신에 대한 그의 신앙심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핵인줄 알았던 병세가 위암으로 판정되고, 그는 침묵조차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오래 전 신부 수업을 함께 받던 친구가 신의 의무를 저버린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자, 그는 숨을 거두며, 어쩌면 신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무슨 상관인가? 모든 것이 은총인데!"

Posted by huun

떠나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 만큼 사악하고, 나약하고, 위선적이고, 속물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행이란 근본적으로 속물적인데가 있다. 간혹 마음이 변해 되돌아오지 않는 이도 있긴 하지만. 되돌아오는 사람, . . . 고향에 다시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 . . 그들을 조심하라!

로렌스(D.H. Lawrence)의 작품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y's Lover)>에서 코니를 단순한 불륜이나 부도덕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여성성의 회복이나 남성에 대한 주체성의 확립과 같이 여성독자들의 파격적인 박수 때문이 아니다. 근원적인 육체성의 긍정 때문도 아니다. 그 보다는 그녀가 완전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녀는 배신자가 되어 다른 남자의 애를 밴 채 남편과 마주섰다. 그녀의 진지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기적이고 무능해서 기껏해야 여행에 만족하고 마는 겁쟁이 남자들과는 다르게, 되돌아온 그 순간에도 그녀의 삶과 확신은 저편에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도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만큼 확고한 것이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마치 "삶의 부활"이 가능해지는 유일한 길인것 처럼.

같은 맥락에서 간혹 작가들의 자살이란 위대한 불륜과도 같다. 울프(Virginia Woolf)가 좋은 예이다. 아마도 진심으로, 진정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용기일 것이다. 진심으로 살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자신의 욕망을 믿었던 코니처럼 정치적인 사람이되어 머리도 좋아지고 총명해질 뿐만아니라.

이 만큼 인생에서 역설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사는 이들은 시인들이 광기에차서 내뱉은 횡설수설들, 가령 "세상이 바로 내집이다"라든가, "죽음은 기쁨이다"하는 식의,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들만의 몽상과도 같은 진실을 점차 깨달은 사람들이다. 코니가 그랬듯이, 집 밖의 삶이 더 아름답다고 믿게 되었거나, 방안의 물건들이 없어져도 삶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거나, 윤회를 믿게 되었다거나, 바람 속에 우리의 영혼이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한꺼번에 태워버리듯, 아낌없이 그 흐름 속에 자신의 육신을 내던진다. 울프가 물속으로, 흐름속으로, 바람속으로 들어간 것은 정확히 이런 식이었다. 코니의 불륜처럼, 피츠제럴드의 방탕처럼, . . . 모두가 물속으로, 대기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들이 진정한 글쓰기를 했다면, 그것은 바로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바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최후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갈 요량으로.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