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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note_fragmentary_aporism 2010/11/19 01:51

속물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부지런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속물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자고, 맡은바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일상을 채운다. 속물의 행동강령은 부지런이다. 방탕하거나, 게으르거나, 자신의 의무에 의구심이 강한 사람은 속물이 되기 어렵다. 한 사회에서 좋은 직업군이나 상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속물로 채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강령 속에 녹아들어 있는 뚜렷한 목표가 바로 그들이 현재 처해있는 사회적 위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속물의 가장 최악의 덕목 또한 이 부지런에 있다. 속물은 마주보고 서있는 앞사람 그리고 함께 앉아있는 옆사람에게 자신과 마찬가지의 목표의식과 부지런을 강요한다. 자신만이 힘들게 사는 것 같아 억울해서인지, 아니면 그러고 사는 것이 너무도 좋아 전도를 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열등한 영혼을 공유해서 분산시키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사실은 배가하지만), 어쨌든 부지런한 그들은 부지런을 강요한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가 말했듯이, 속물근성은 "행동을 자극해서 바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사회는 "마치 벼룩이 잔뜩 묻은 개처럼" XX 발광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상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헉슬리에 따르면, 예술속물 혹은 문화속물도 있으므로)의 개인사는 속물과의 투쟁사, 아니 희생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illiam Thackeray가 편집했던 잡지 <펀치>(Punch)의 1892년 어느 날 삽화에는 뿌리깊은 '상처'를 안고 '열등감'으로 살 수밖에 없는 속물의 내적본질을 잘 담은 한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삽화에서 한 신흥부르주아 여인은 딸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와 사귀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만한 사람들이 아니란다. 우리가 사귀어야 할 사람들은 오로지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뿐이란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