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잔뜩 쌓아두었던 설거지를 했다. 비록 내가 먹고 남긴 찌꺼기였지만, 정말 지저분하고, 만지기도 싫은 것들이었다. 내가 남긴 것들. 찌꺼기, 배설물, 쓰레기, . . . 이들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타인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수세미에 퐁퐁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물을 약간 뿌려서, 그릇과 냄비 등, 하나 둘씩 집어들고 문지른다. 조금 지나면 내 손은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그릇들이 씻기고 헹구어진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여러 가지 기억이나 생각들에 잠기게 된다. 손의 움직임은 찌꺼기 그릇이나, 걸레에 가 있었지만, 의식은 다른 곳으로 왔다 갔다 한다. 아주 많은 생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뉴스에서 들리는 소리들, 미국, 이라크, 정치인들, 기술. . . 그러다가 내가 아는 사람들로 옮겨간다. 고마웠던 사람들, 얄미웠던 사람들, 나를 기쁘게 했던, 슬프게 했던 사람들, 점점 생각들이 깊어지면, 하나 둘씩 그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나의 어머니는 가끔 설거지를 하면서, 알 수 없는 화를 내곤 했다. 그릇을 심하게 덜그럭거리거나, 혼자서 중얼거리기가 일쑤였다. 돌연히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다가, 원망스러웠던 것일까? 나에게 혹은 내 동생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불쾌하게 했던 누군가가 떠올랐을까?

오늘 아침에는 괜히 일찍 일어나 배가 고팠고, 뭔가 먹기 위해 설거지를 하면서, 하루종일이 걸려야 했을, 모든 생각들을 한꺼번에 다 해버렸다. 이제 마지막 그릇을 헹구고, 행주로 씽크대를 깔끔하게 닦아, 수돗물에 흰 행주의 얼룩을 씻어 내린다. 깨끗하다. 홀가분하다.

Posted by h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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