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Henri Cartier-Bresson


사람은 자신의 삶 전체에 걸쳐 잠깐 동안이나마 초인이 될 기회를 몇 차례 갖는다. 그 시간은 어느날 홀연히 불쑥 찾아왔다가, 우리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외면하는 순간 머리 속에서 훅 . . . 하고 꺼져 버린다. 그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의 지속을 가능케했던 신념과 가치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에 맞닥뜨린 순간, 즉 자신의 내부의 역설을 만나게 될 기회 같은 것이다. 가령,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없다면 내 삶이 불가능한, 나의 신념, 도덕, 가치들, . . .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내부의 역설이란 말하자면 내가 하나의 우아한 영혼으로서 나 자신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말이라든가 그 밖에 모든 표현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남아있는, 그래서 오로지 그 시간에 직면한 자신만이 알고 있는, 표현 이전의 시간이다. 섬광과도 같은 한 줄기 빛!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소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스러기들을 가지고는 이해 불가능한. 스타일이라든가 문체라든가 하는 것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래서 그 앞에서는 더 잘 말할 수도 있었다고 후회할 필요가 없는. 니체나 카프카나 스피노자가 그랬듯이, 기도중에 있는 독실한 한 사제의 뇌리에 스치는 강렬한 의구심 같은.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가 직면했던 사슬이 풀어헤쳐진 시간.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이 활동하는 부정의 시간. 실재의 다양성과 근본적 대면상태에 처한 지성으로 하여금 "이해 불가능"이라고 속삭이는 직관의 시간. 말하자면 중독자의 무시무시한 금단의 환각. 우리를 주춤하게 하는 막다른 길. 자신이 낯설어지는 어느날. 불쑥 내게 되돌아온, 가차없이 비판했던 자에게 느꼈던 혐오감. 대낮의 소란한 환락 이후 엄습해 오는 고요한 저녁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이 너무도 무시무시한 시간 때문에 고개를 숙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그 시간을 미루며 죽어간다. . . .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사유들만이 참되다."

<문예 노트>
Posted by h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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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땡글땡글 2006/10/13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가 거울을 보고 앗! 누구지? 낯설어서 한참을 아주 오랫동안 쳐다봤던 기억이 나네요...나름대로 실존하는 나를 처음 자각한 순간이었을까요? 그때가 아주 어린 나이었었는데...하긴 한대수씨는 어릴 적에 외가댁에 놀러갔다가 과수원에서 "바람과 나"를 지었다고 하던군요. 2005/12/30 03:59

  2. huun 2006/10/13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 같은 경험을 . . 멀리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 . . 얼마나 볼품이 없어 보였는지 . . 생각 속의 나와 실제의 나는 정말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늙는 과정은 아마 생각 속의 내가 점점 좌절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 외면해봐야 소용없겠죠?!! 2005/12/30 04:27

  3. yhunsong 2006/10/13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드시나 보네요.니체가 초인을 갈망해야 했던 이성적 압제와 소크라테스가 다이모니온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했던 순간의 절망감이 때론 우리에게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인간이기에 그런 것들에 힘들어 하는 것 같더군요.
    만약 니체의 초인이 좀더 이성적이고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이 좀더 큰 소리로 이야기했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많이 바뀌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 신을 발견하고 겸허할 수 있는 것 만큼 세계를 변역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더군요. 2005/12/30 05:30

  4. 화분 2006/10/13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학적이다, 지적이다, 똑똑하다, 솔직히 저는 이런 표현을...욕으로 하거든요. 님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많은 사람에겐 알려지지 않은, 그러니까 미디어에서 정형화시키지 않은 독특한 스타일의 미녀가 있어요, 그런데 이 미녀는 늘 황신혜처럼 화장한다던가 김하늘처럼 머리를 한다던가,이혜영처럼 입는다던가 해요. 예쁘긴 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그대로 그냥 아름다운데...그러니까 2000년전에 죽은 할아버지나 500년전에 죽은 할아버지를 너무 경직되게 자주 인용하신다는 느낌요. 자기자신에게도 거기못지않은 빛나는,무엇보다 '살아있는' 감성이 있지않나요. 그것만 따로 빼서 갈무리하신 적도 있나요. 그 죽은 할아버지들의 갑옷이 없으면 그럴싸하게 쓰실 자신이 없으신거 아닌가요? 감수성이 뛰어난 분이란 생각이 없다면'그렇다 살다가쇼' 그러고 말았을거에요. 엎어지려는 사람 뒤에서 떠밀어 주었나요? 2005/12/30 07:07

  5. 사과꽃이핀뜰 2006/10/13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인이 되는 일엔 별 관심이 없지만, 그래서 기회가 왔었는 지도 모르지만,,
    저는 종종, 나의 알맹이를 찾는 일이 러시아 인형을 여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큰 인형을 열면 그 안에 여러 개의 작은 인형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는 러시아 민속인형 있잖아요 왜,,,

    혹가다, 내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마음의 잔물결조차 잠재울 때, 인형의 껍데기 하나를 벗은 것같은 가벼움의 느낌이 들 때가 있지요. 그렇게 하나 하나 벗어나가서 언젠간 가장 안에 들어있는 '본연의 나', 그 알맹이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듯도 하다가,,,,어느샌가 다시금,, 도로아미타불,,, 벗었던 껍데기, 큰 인형을 도로 뒤집어 쓴 세상의 '표면'에 익숙한 나를 보기도 한답니다..
    2005/12/30 07:58

  6. huun 2006/10/13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이 새벽 4시 42분, 23초, 24초, 25초, . . . 사람들과 송년회겸, . . 술한잔 하고 들어와 앉아보니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네요^^. 별로 재미도 없었고, 풍요로운 것 같지도 않았고, . . 아마도 침묵이 두려워서였는지, 괜한 말들만 잔뜩하고 와 버린것 같네요. 사교계의 말들요. 거기서 있던 몇 시간 동안 그 말들 속에 나를 다 실어버리면서, 러시아 인형을 까고 있었나보다 . . 그래서인가, 피곤한데도 뭔가가 자꾸만 먹고싶어 지네요.

    화분님 . . 그냥 이쁘게 봐주세요. 돈 드는것도 아닌데. . . 그리구요 . . 그 할아버지들 . .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봤고, 오늘도 봤고, 지금도 보고 있어요. 정말로 그들을 죽이고 싶으세요? 그러면 두번 죽이는 셈인데. . . 애정어린 관심으로 이해하겠습니다. 2005/12/31 05:07

  7. 화분 2006/10/13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그렇게까지 예쁘게 말씀하시는데 이쁘게 안 볼 도리가 없네요. 더군다나 돈도 안든다는데...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5/12/31 07:49

  8. huun 2006/10/13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에 써 놓은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 속에서 던져진 것들입니다. . 우리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아무런 의심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가 있는지 . . . 오히려 그것은 오만이 아닌지, . . 그 믿음이 우리를 오히려 더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 . 자신이 나약하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면, 그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절대자를 찾아가 거기에 안주해서 자신의 오만한 믿음을 맹신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의심해 보아야하는 것이 아닌지, . .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내가 어떻게 내가 믿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을지, . . . . 직관적으로 맞딱드리는 어떤 질문에 대해, 우리가 고작 해대는 일이, 더 이상 질문을 중단해 버리고, 우리 자신의 실재를 외면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 . 이런 인간은 결국 내밀한 자아의 묵인하에 부도덕해지는 것이 아닌지, . . 결국 생애를 통틀어 한 번도 진정한 질문 하나 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닌지. . . 2006/01/13 02:14

  9. 화분 2006/10/13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진작 그렇게 말씀을 하셔야 알아듣죠. ㅠ.ㅠ 그리고 겸손...그건 군자의 마지막 공부라고 합니다. 익지도 않았는데 무슨 재주로 고개를 숙이나요, 익으면 절로 고개가 숙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