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란 속물근성적인 문명의 허영과 오만에 찬 향수이다. 고향 사진을 한 장 찍어 사진첩 혹은 벽걸이에 꽂아두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연사적 사건이 아니라 문명의 한 스캔들이다. 그것이 식물이나 동물들로부터 일어난 것일지라도. 아래의 흥미로운 기사를 보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618601007

이 에피소드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문명의 공포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어른이 순진무구한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놀라며 공포에 떠는 그러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칼을 쥔 당사자로서는 칼의 용도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칼은 물론 자르거나 찌르거나 파고들어 사물을 해체한다. 그러나 칼에는 수많은 윤리적 가치가 내재한다. 물건을 자르고, 찌르고, 줄을 끊고, 사람의 육신을 해체하고, 피를 내고. 그 중에 어떤 기능을 선택할지는 순전히 칼을 쥔 자의 생각에 달려 있다. 요리사의 칼, 어머니의 칼, 범죄자의 칼, 어린 아이의 칼. 문명의 반대편에 서 있는 고릴라로서는 칼이 음식을 자르는 도구라는 생각조차 했을 리 만무하다. 아니 쥐는 부분이 칼 자루일 것이라는 생각조차. 그냥 우연히 날카로운 곳을 피해 잡다 보니 칼자루였을 것이고, 그냥 우연히 장난을 치다 보니 칼을 휘두르는 꼴이 된 것이다. 자연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연이니까. 하물며 칼이 생명을 해치고 살생을 하는 범죄 행위의 도구라는 생각은, 범죄의 개념조차 없는 그에게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그냥 인간이 떨어 뜨려 놓은 칼을 호루라기를 주어 불어보듯이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그러나 칼을 들고 장난을 치는 고릴라를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과 신음을 냈던 관람객들이 상상했던 것은 무엇일까? 휘둘려지는 허연 칼과 그것을 쥔 고릴라의 특유한 외모를 결합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문명인으로서 마음 속 깊이 새겨둔 어떤 이미지가 환기되었던 것일까? 검은 색의 털이 온 몸에 무성하게 나 있어 무지막지하고 무섭게 생긴 동물이 금속성의 강한 해체 도구를 들고 뛰어 다닐 때, 문명이 쉽게 머리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그러한 이미지를. 예를 들면, 기자가 찍었을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하나를 뽑아 저기에 게시된 저 이미지와 같은, 정확히 인간의 모습을 닮아 더 끔찍해 보이는 그러한 이미지를. 어떤 점에서 문명이란 만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강박 아니면 부정적 나르시즘일 것이다.

칼의 존재는 칼을 쥔 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상상 속에도 있다. 칼을 보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자연에 대하여 혹은 순진무구에 대하여 문명이 상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칼의 존재이며, 칼을 쥔 우리의 상황을 표상한다.

Posted by h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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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나라의 장난 2009/06/22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침 '물속의 칼' 이란 폴란스키 DVD를 보았는데...
    로만 폴란스키 특유의 섬뜩함이 살아있었습니다.

    칼을 든 고릴라를 바라보는 사람들 무척이나 섬찟했겠지요?

    영화속에선 떠돌이 청년과 한없이 오만한 한 중년의 사내가 등장하는데 그는 청년을 무시하고 하대하기 이를데 없습니다.떠돌이 청년은 여행 도구로서 칼 하나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그것이 보는 자의 상상 속에 섬찟함을 연출합니다.아무렇지도 않았을 하나의 도구가 박해자를 만남으로서 의미가 완전히 전환됩니다. 다행히도 이야기는 우리들의 상상과 달리 피비린내를 내지 않고 청년을 무사히 떠나도록 하는데 폴란스키는 아마도 무산자 계급에 대한 애정을 그런식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오만한 사내는 그를 혐오하게된 그의 아내와 단 둘이 남게 됩니다만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청년의 칼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멸시당하고 턱없이 박대를 당하고 가진 것이 없는 자의 우발적인 살인 같은 것을 상상하게 되는 거지요.그런자 들은 어딘지 거칠고 위험하다는 선입견에 따라 참으면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게 됩니다.. 감독은 그런 피냄새 대신에 청년에게 중년사내의 남편에 대한 불만에 가득찬 아내를 유혹하도록 합니다.어쨋든 칼을 피해가도록 하지만 마음 속의 칼 마저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닌것 같습니다. 청년은 일찍 자리를 뜨고 중년의 사내는 그가 죽었다고 믿습니다 여자가 진실을 말해 주지만 사내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오만한 문명이 자연을 하대하면서 한 동물의 손에 쥐어진 칼에 잠시라도 불안에 떨고 무언가를 연상했다면 저 영화속의 칼이 관객들에게하는 역할과 그리 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순진무구한 존재에 대한 문명의 불안 불편한 심리 자체가 우리의 문명이 품는 하나의 칼로 전환되는 것이겠지요.

  2. huun 2009/06/23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달나라님. .
    그 영화는 저도 보았는데, 폴란스키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그러더군요. . . 몇 년 전에 보아서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요 . . 사실 그 DVD를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숫컷들이 헤게모니를 두고 폐쇄된 배 안에서 쟁투를 벌였던 것 같은 기억이 얼핏 납니다. 외디푸스 삼각구도에서의 적대관계처럼 보이기도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무산자 계급이라든가 박해자의 주제로는 생각을 못했는데,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 .

    폴란스키 영화가 상당히 매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피아니스트>도 그랬고, 예전에, 스릴러 영화들도 보면, 동구권의 약간 칙칙하면서도 무거운 화면이지만, 서구풍의 모던한 음악, 분위기, . . 쇼팽을 듣는듯한 산뜻함마져 느껴집니다.

    참, 폴란스키가 미국에서 성추행혐의로 기소되어, 프랑스로 망명했잖아요?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최근에 나왔더군요. 제목이, "Roman Polansky: The Wanted and Desired"인데, 제목이 참 멋집니다. 저는 중간까지만 보았는데, . . 주로 당시 미국의 언론과 사법부가 스캔들을 이용해 어떻게 문화적, 도덕적 테러를 저지르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던데. . . 그러고보니, 최근 우리의 경우와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되었던 것 같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