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생전 모습이라고 한다. 신이 죽어버린, 아니 새로운 신이 탄생한 현대의 악취가 견딜 수 없어 무덤 속에서 출몰한 유령이 찍힌 듯 하다
가만히 보면 아우라(aura)가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로 인해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기술복제는 아우라를 생산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의심은 어쩌면 놀라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믿어지지 않는다" 혹은 "믿을 수가 없다"는 말만큼 믿음에의 열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그 니체일까? 그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포리즘의 대가인 백년도 넘은 바로 그 니체일까? 이제 그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아니 오히려 의구심을 일소하고 싶어 근거없는 기억들이 마구마구 솟아나기 시작한다.

"예전에 어디서 얼핏 듣기로, 니체는 생전에 한번도 저렇게 긴 비스마르크 콧수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도 그럴 것이 제2제국을 독일의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니체가 아닌가? 사진에서 우리가 흔히 보던 콧수염은 새벽녘을 바라보는 듯한 총명한 시선의 옆모습과 함께 그의 아우라를 창출하기 위해 덧칠한 픽토그래프(pictograph)였다고 하던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잘못된 기억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나의 기억착오 혹은 소문착오를 오히려 증명하듯, 상상 속의 그 니체, 꼬장꼬장하게, 근엄하게 기른 콧수염의 니체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어쨌든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어서 영상 속의 니체가 진짜(?)였으면 좋겠다. 그 마저도 아니라면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해질까? 그의 모습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니체의 영상을 바라 보며 내가 마치 그림의 진본성(authenticity)을 의심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사상(思想)의 아우라가 테크놀로지를 압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 영상이 우리 앞에 드러난 이상, 그 촉각적 실체가 확인된 이상, 이제 그의 육체는 현재적인 것이 되었다. 그가 출몰한 것이다.
Posted by h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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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명씨 2008/12/14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쓰기가 조심스럽군요.
    생생하군요.기술복제도 아우라를 생산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많이 놀라셨나봅니다. 이럴 땐 말없음표가 가장 적절한 댓구가 되겠지요만......니체의 출몰을 이야기하는 그 기저의 놀란 심사를 어찌 다 알겠읍니까. 니체를 보는 것도 놀랍지만 글쓴이의 심사가 더 절절히 느껴집니다.감히 들락거리길 자제해야겠읍니다.
    수염은 진짜 아니겠읍니까?^^

  2. huun 2008/12/14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어느 책에서, 니체의 수염이 나중에 그려진 것이라고 본 기억이 있었거든요.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서 보았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잘못 본 것인지, 왜 그런 기억이 남아있었던 것인지, . . 도무지 알수가 없네요.^^

    니체의 책은 여러권 읽었지만, 한 개인으로서의 니체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책과는 다르게 사진이나 영상의 힘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 . "육체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 말이예요 . . 그래서인지 저 영상을 보자마자 그런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별 뜻은 없었구요 . .

    그리고, 무명씨님 . . 편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조심스럽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히려 조심스러워지네요..^^

  3. 무명씨 2008/12/14 2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숙연한 마음이 들어서였읍니다.^^

    따뜻한 밤 되십시요.

  4. huun 2008/12/15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고인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드는게 . . .^^

  5. altcre 2008/12/17 0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동영상의 니체 모습이 사진으로 촬영된 것들도 있습니다. 그 사진의 소스가 동영상 필름이었군요. 이런 동영상을 백년도 넘은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엘리자베쓰의 허영과 장사속 덕이 아닐까...

    huun님이 들었다는 그 불확실한 소문을 나도 얼핏 들었던 듯합니다. 수염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맑스는 생애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수염과 머리를 전부 삭발했답니다. 죽을 때까지 사진촬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혹시 또 모르죠, 이 동영상의 경우와 비슷하게, 삭발한 맑스의 사진이 발견될지.

    그냥 가면 얼 것 같아서, 한 마디 답니다. ^^

  6. huun 2008/12/17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altcre님..

    엘리자베스 얘기는 흥미롭네요 . . 좀 더 알려주시면 안될런지요?

    아탈리의 평전은 읽지 못했지만 . . 맑스의 삭발이라 . . 음 . . 어떤 이들은 그것이 마치 상징적 거세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네요 . .

    altcre님의 웹페이지 잘 보았습니다. 흥미로워보이는 글들이 여럿 있더군요. 앞으로 가끔씩 들러서 읽어 보겠습니다.
    저 역시 얼어붙지 않기 위해 그냥 지나치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