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것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동요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실제로 느끼거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고단한 노동과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와는 반대로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또한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것을 그냥 생각 속에서 지워버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지 못하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별 어려움 없이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미지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것이 내 눈에 혹은 다른 나의 감각으로 밀고 들어와 나를 동요시키면,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굴복해야만 한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런데 난 처음에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작 내가 그 말을 이해했던 것은, 한참이 지난 후 길을 걷다가 사람들 틈에서 우연히 맡게 된, 그러나 그 사람 곁에 있었다면 늘 맡았을 어떤 냄새 때문이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문득 어떤 절망적인 깨달음에 이른다. 우리가 어떤 것을 깨닫는 순간은 이렇게 무엇엔가 두리번거릴 때이다. . . .
<문예 노트>
jealousy.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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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미지들의 결합과 해체를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오면 그게 아니었습니다.ㅎㅎ
홀가분함을 맛보고 싶습니다.
어떤 대상에 집착하거나 그 대상을 분석하여 무언가
이미저리를 집어내겠다는 욕심...
그런 욕심으로부터 홀가분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물론 시를 쓰는 입장에서의 대상을 말합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2006/04/07 16:14
그런 욕심으로부터 홀가분해진다 . . . 참으로 야무진 꿈이시네요^^ . . 고통받는 걸로 치자면야 . . 시인들은 경이로운 사람들일텐데요 . . 아마도 이미지들의 여러 층들(지각, 감정, 기억, 회상..)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거릴때 가장 힘들거라는생각이 드네요...
사물과 그 이미지에 대해서는 플라톤도 한 문장했는데 . . 그러더군요.. 사물들이 본성적으로 갈라지는 결을 따라 갈라내는 방법을 쓰라구요(마치 고기살의 결을 따라 찢듯이) . . 시인들의 고통은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르려고 하다보니, 잘 안되니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참 어려운 말이군요 . . 사물의 본성적인 결을 따라 갈라낸다? . . 다르게 말하면, 본성적으로 다른 것을 찾아낸다? . . 모든 사물은 복합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 . 그 복합물 속에서 본성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을 골라낸다? 나눈다? . . . 이 말은 직관적으로 사물을 보라고 가르치는 것 같은데 . . . 어떠세요? 은물결님의 생각은? 2006/04/08 04:34
오직 내 안에서 만 구체성을 띄는 주관적 '외연'을 가진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인데도 불구하고 (짝)사랑이란 동기를 가지고 탄생한 '이미지'는 나를 배제하고 사물화 되기도 하는군요. 짝사랑이나 실패한 사랑이 아닌 경우엔 그 이미지들이 나를 배신하고 스스로 고립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도 되는건가요 그럼,,
그런데, 마지막 문단의 <구체적 이미지>는 주관의 허상이 벗겨진 수도자들의 순수한 그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님, 글 초입의 '순수하고 확고부동'하여 벗어나기 힘든 (주관적으로/내 눈에)구체적인 이미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리고요, 두번쨋줄 "그렇기 때문에.."부터, 네번쨋줄 "..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의 문장이 헷갈립니다. 혹,, '추상적이 아닌 것(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이라고 쓰시려 했던 건지요? 갸우뚱~ 2006/04/08 13:04
인테넷에서 글을 읽을때는 처음 부터 끝까지 주루룩~~ 읽게 되더라구요..
속도감에 중독 된 것처럼
빨리 이 페이지를 클릭해서 넘겨야 할것 강박증이 생기기도 하구요.
글은 읽은 시간의 3배 이상을 생각해 봐야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huun님의 말씀대로
글을 쓴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생각을 들여 이런 글을 썼을까?
새삼 깨닫게 됩니다.. -.-
사과님이 질문 하셔서 그 문장을 다시 읽어 봤는데,
아직 완전히 이해 되지는 않았지만,
혹 이런 의미는 아닐까요?
사물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뚜렷이 떠오른다는 것은
질투라는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대상이 더이상 나와 관계가 없다는 깨달음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사물들을 보거나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보다,
이제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수도자와 같이 사물과 나를
두통이 다른 개체들로 인식하게 되고
그 순간 비로소 나는 사물들을 진정으로 존재로 인정하게 되는게 아닐까요?
쉽게 말해서, 바람난 애인에게 질투가 나지만, 그 애인의 마음은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니까 관조적으로 기다릴 수 밖에요..
돌아와~~ 하며 기도하거나. ㅎㅎㅎ
이해가 부족했다면, huun님의 훈습을 부탁!!
두통이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는데,
질투가 뜨거움의 상태에서 관조의 상태로 변화되어 가면서
상대(대상)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바람난 애인이 더 멋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지요.. 2006/04/10 16:44
질투는 타자성(otherness)에 대한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서 좌절하는건 질투심도 질투심이지만, 그보다는 배신감 때문이겠죠^^ .. 사랑이라는 사건은 그 자체가 이미 질투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여기서 사랑의 여러 종류에 대해 말한다면, 또 다른 얘기를 해야겠지만..) . . 어쨌든 질투를 타자성의 자각 자체라고 말할 수 없다해도, 그 출발인건 확실한 것 같아요..우리는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질투를 하잖아요?(오히려 더욱 더)...나와 관계하고 있는, 나에 대한 어떤 타자가 아니라, 절대적인 타자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 때문이죠..그래서 질투는 누가 바람을 피우고 안피우고의 문제가 아니라, 혹은 사랑이 받아들여지고 안받아들여지고 하는 그런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에 더 가까운것 같아요..
제가 시간을 내서, Robert Browning이라는 시인의 시를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질투가 어떤 것인지를 기막힌 드라마로 만들어낸 시인이거든요..그런데, "바람난 애인이 더 멋있는 사람"이라구요? ㅎㅎ..재밌네요... 2006/04/10 20:25
"질투가 뜨거움의 상태에서 관조의 상태로 변화되어 가면서 상대를 더욱 잘 알게 되는 것 같"다는 말...멋진 말이네요..ㅎㅎ..바람난 애인이 더 멋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상대를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 상대가 내가 원하는 사람, 혹은 나를 원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겠죠? 내게 가혹한 고통을 준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고유의 존재성을 깨닫는 것, 즉 나 자신을 배제해 버리는 것 말이죠...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게된 것입니다. 투명하게요..질투에서 관조로 나아가는 것이죠..영국의 시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특히, Wordsworth, keats, Eliot 등), 그 형태들은 달랐지만, 끊임없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개인성, 혹은 몰개성성(impersonal)입니다. 그것은 현실적 고통들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불교나 노장 역시 다르지 않겠지만 말이죠..
좀 단순화시켜서 말한 감이 없진 않지만 , . .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에피쿠로스가 생각했던 쾌락(ataraxia)도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런데 . . 두통이님이 누군지 알고싶어서 보니까 . . 그냥 별명만 쓰셨네요? 글방 없으세요? 2006/04/11 02:45
잘 읽었습니다. 2006/04/17 12:15
답변이 많이 늦었습니다. 용서하세요.*^^*
사물을 직관적으로 보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거개는 비슷비슷해서 직관조차도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자신은 직관적이라 생각하고 표현한 것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험하거나 생각했던 부분이라면 문제가 생깁니다.
일반적인 대화의 경우라면 서로 공감의 장을 찾은 것이겠지만
글을 쓰는 경우라면 자칫 상투적이라는 돌맹이를 맞게 됩니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새로운 것>이라는 명제 앞에 좌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발표를 하고 보면 내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후회를 자주 느껴서요.
에휴...이래저래 참 어렵습니다.*^^* 2006/04/20 18:13
네..은물결님 . . 새로움이란 아마도 구체성의 다른 표현일겁니다 . . 최소한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말이죠 . . "구체적으로 보는 것이 새롭게 보는 것" . . .그러니까, 만일에 어떤 시가 상투적이라면, 새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구체적이지 않아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네요. . 구체적이지 않다보니까, 별 고통이 안 느껴지는 거죠...위에서 말한 추상성 처럼요 . . . 직관은 여기에 없는 다른 것, 즉 새로운 것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 있지만, 습관화되고 자동화된 지각 때문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을 강렬하게 촉지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가장 나약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지 않습니까?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자극을 받는, 고통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죠 . . 2006/04/22 16:12
그러니, 훌륭한 시인이되려면, 일반인들처럼 습관화된 지각의 원인인 피부에 쌓여진 외피를 땟수건으로 빡빡 밀어서 . . 발갛게 달아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갓난 아기와도 같은 피부를 만들어야 겠죠?^^ . . 어려운 일이겠죠.. 하지만, 한번의 땟수건질이 바로 시인으로서의 성장의 일보를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끊임없이 읽고, 쉼없이 쓰고, 한없이 생각 하시기 바랍니다. . .
그리고,..멋진 시 쓰세요 . . 이 글방에 소개도 좀 해주시구요..^^ 2006/04/23 0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