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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6 동물원 이야기
  2. 2006/09/21 이모와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3) (5)

꼬마 시절에 처음으로 동물원에 가서 놀랐던 것은 아마도 잠재적인 것(the virtual)이 지각과 의식으로 난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 책을 보거나 우화집을 읽을 때 조차, 나는 동물이나 사물, 그 밖에 세상 모든 것들을 마치 눈을 감고 걸어가는 몽유병자처럼 지각했다. 부피도 없고 잔주름도 없이 깔끔하고도 살균된 이미지들을 2차원의 형태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에서는 그 환영지대(phantom zone)의 이미지들이 창문을 부수고 나와 실제로 육체라고 하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잠재적 지속(virtual duration)이라고 하는 엄청난 것을 내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백 년도 훨씬 넘은 거북의 뱃살에 새겨진 정신착란적 찰과상들,  슬로우 모션 영화를 보는 것같이 우아하기 그지없는 기린의 몸동작, 막대한 체적으로 시야를 압도하는 코끼리의 뒷다리,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는 늑대와 사자들의 야수성, . . . 그들은 정말로 동물들이었고, 내게는 일종의 괴물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내가 가져왔던 지각의 패턴을 흩트려 놓았다. 어린 시절 동물원으로의 외출은 그야말로 지각의 외출이었다. 어쩌면 실재에 대한 불안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도 그 때이며, 한편으로는 내 일상적 지각이나 믿음에 대한 어렴풋한 권태가 밀려온 것도 그 때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동물원에 가보지 못했다. 그러자 점차 그 권태와 불안은 잊혀져 갔다.

다 커서 동물원에 갔을 때, 이제는 지각의 흐트러짐 조차 또 하나의 지각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늙어가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어쩐지 저것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존재를 닮아가는 것 같았고, 한참이나 바라보던 나 또한 그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가 않았던 것이다. 레드 피터(Red Peter)처럼, 살아나기 위해, 본인은 "잠시 동안만!" 이라고 매 순간 다짐하면서 실은 평생동안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그들은 더 이상 창살 쪽으로 가까이 와서 식식대며 좌-우로 배회하는 일이 없다. 간혹 아프리카 초원이나 남미 정글에서 새로 구입되어 막 갇힌 동물들만이 새 우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창살 쪽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잠깐 끌고 있을 뿐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그들도 곧 창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눈에 띄지 않는 그늘이나 어두운 동굴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거나, 관리인이 던져놓아 한참 동안 바닥에 나뒹굴던 김빠진 먹이를 뜯게 될 것이다. 그들은 먹이로부터 초연하기까지 하다. 급기야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방문객들이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이리저리 소리를 질러가며 약을 올리지만, 동물들은 오히려 더욱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하품을 해댄다. 누구의 창살이고 누구의 구경거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누구의 것이든, 거기서는 그 무엇도 흥미를 끌지 못했고,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관심밖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기대하고 예상하고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낙원이었던 것이다!

Posted by huun

나는 혼자 여행을 하게 되는일이 가끔 있다. 낯선 곳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나면, 밀려오는 막연함에 가슴이 두근거리고는 한다. 갈 곳이 없는 저녁이라면 고독감은 더해진다. 그것을 견딜 수 없다면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면 끝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서 살아야 한다면, 다시 되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떨까?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텅빈 거리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그림보기) 육체를 잃어버린 소수자(minority)가 느끼는 낯설고도 막연한 감정이 우리의 가슴을 후벼판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손이 홀가분한 여행자가 아니었으니. 잔뜩 손에 쥔 보따리를 질질 끌며, 자신의 영혼을 담아줄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도회지의 생활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지가 매여있던 시골로부터 벗어나 작은 환락을 만끽할 수가 있었을 테니. 그곳에는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고, 그들의 질긴 시선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한다면, 꿈꾸던 우아함을 적당히 포기할 용의가 있다면, 목숨이 유지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더러는 살맛도 나고 행운도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시가 그녀에게 안겨준 자유란 그녀를 속이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궁핍이라고 하는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가질 수 있는, 말하자면 정글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자유였다. 그녀는 삶이 가해오는 생애 최초의 그 공포에 맞딱드리지 않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일해야 했을 것이다. 이루고 싶던 꿈도 어느새 바뀌지 않았을까? 도회지의 삶은 더 이상 권태가 아니라 무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다가올 것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그 삶은 현재의 모든 것을 미래의 불안으로 흡수해 버린다.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기에 떠올릴 수조차 없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불안과 공포란 임박한 죽음 속에서가 아니라 무한한 자유 속에서 최대화되는 법이다. 자신을 죄이고 있던 사슬이 풀어지면, 우리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은 불안과 공포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은 자유의 댓가로 영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공포란 도시 환경 자체가 개인에게 주는 정서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도 다를 것 없는 불특정한 구역들. 가려진 태양.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거리들. 또 그 길을 따라 오고가는 이들의 뻣뻣해진 육체. 조각난 노동과 그 현장. 사방에서 밀려오는 소음과 악취. 뿌리칠수도 응할 수도 없는 유혹들. 번쩍거리는 불야성. 그 속에서 무엇인가에 굶주린 잠재적 하이에나들. 그러면서도 아이스크림과 초콜렛의 천국. 쇼우 윈도우. 백화점. 저절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 . .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어떠한 짓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이 거대한 기계 덩어리. 한도 끝도 없어 보이는  이 기만적인 자유. 또 거기서 겪게되는 배회와 방황. 시-공간적 좌표가 소실되어버린("여기가 어디지?") 이 회색 도회지에서 그녀는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이제 그녀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감옥에서 하루 하루를 재빠른 걸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배운 기술도, 아는 정보도, 아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테이블을 치워가며 낯선자들에게 불려다니거나, 여인숙같은 곳에서 남녀들이 밤새 뱉어놓은 찌꺼기들을 치우며 한낮을 보내거나, 콘베이어벨트나 선반 앞에 꼿꼿이 앉아 기계의 시다 노릇을 하거나, 좀 나은 것이라면, 사무실에서 문서 심부름이나 커피를 타주는 일 정도 였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70년대 한국의 도회지에서 중졸의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욕지거리를 듣는 일은 흔했을 것이다. 못볼 일도 많이 겪었을 것이고, 심지어는 추행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회지의 세월은 그녀 안에서 만발했을 설레임과 호기심들을 하루에 하나씩 떨구어 나가는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 삶은 깔깔거리며 발랄한 미소를 지었던 그녀가 꿈꾸어온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녀가 세상을 실망시킨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 시골, 서울, . . . 그녀는 그 어느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반대로 그녀가 그 모든 것들에 실망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젊은이들의 앳되고도 순진한 미소를 망쳐놓는 것이 삶 자체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지녔던 것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그 미소는 점점 짜증과 냉소의 주름들로 구겨져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실망과 더불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에게 무례했던 시골과 서울로부터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동경도 품지 않았다. 식물을 길러본 사람들은 이를 잘 안다. 식물은 환경이 맞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환경과 자신을 절연한다. 식물의 투쟁방식은 다름 아닌 실망이다. 무엇인가에 실망한다는 것. 그것만큼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것도 없다. 말 없이 떠나가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실망할 뿐이다. 그녀의 영혼이 그녀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그녀는 결혼을 하였다. 그녀가 처녀를 잃은 것은 그 때부터일 것이다. 자신을 거칠게 대하는 삶으로부터 그녀가 바랬던 것은 약간의 다정함 뿐이었다. 그녀 자신의 환상이든 아니든, 어쨌든 그녀는 그 다정함을 주는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채 맡겼다. 몇 년후, 식당 주방장과 결혼하겠다고 한 남자를 집에 데려왔을 때,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사람들의 눈총과 동정어린 비난을 기억한다: "저럴 걸 왜 정신 못차리고 이혼을 . . .!"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남편은 성실했고, 그녀를 꽤 사랑해 준다고 들었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오래 전에 들은 기억으로,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손바닥 만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가 다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가슴 속에 품은 것들을 추스르지 못해 공부를 잘 하지 못했으며 외모가 잘나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욕망을 실현시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수단을 쥐지 못했다. 욕망이 움츠려있기에는 너무나 피로해서, 그 피로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그녀는 타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육체를 잃은 영혼처럼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해 엉거주춤 했던 세월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지금은 무릎 관절이 심하게 아파 시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또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는 불행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은 그녀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결정으로 불행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불행이 사라진 낙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을 수도 없고, 있다해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낙원이 아니다. 다만 불행조차도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길 바랄뿐이다. 그랬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다른 조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만의 빛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오래 전에 이 사진 속에 자국을 남겼던 그 소란한 빛처럼. 할아버지 뿐 아니라 사회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빛이 그녀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그녀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버지의 보호에 의해서도 아니고, 남편의 사랑에 의해서도 아니다. 도회지가 그랬듯이 내버려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다려 주는 것.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오로지 기다려 주는 것. 그리하여 그녀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한 없이 기다려 주는 것이다. 감광판을 태우기 위해 조리개를 활짝 열고, 하염없이 빛을 기다리는 카메라, 그 초연한 카메라처럼. . .




<문예노트>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