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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8 문명의 그늘 (2)
  2. 2008/08/06 동물원 이야기

동물원이란 속물근성적인 문명의 허영과 오만에 찬 향수이다. 고향 사진을 한 장 찍어 사진첩 혹은 벽걸이에 꽂아두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연사적 사건이 아니라 문명의 한 스캔들이다. 그것이 식물이나 동물들로부터 일어난 것일지라도. 아래의 흥미로운 기사를 보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618601007

이 에피소드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문명의 공포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어른이 순진무구한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놀라며 공포에 떠는 그러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칼을 쥔 당사자로서는 칼의 용도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칼은 물론 자르거나 찌르거나 파고들어 사물을 해체한다. 그러나 칼에는 수많은 윤리적 가치가 내재한다. 물건을 자르고, 찌르고, 줄을 끊고, 사람의 육신을 해체하고, 피를 내고. 그 중에 어떤 기능을 선택할지는 순전히 칼을 쥔 자의 생각에 달려 있다. 요리사의 칼, 어머니의 칼, 범죄자의 칼, 어린 아이의 칼. 문명의 반대편에 서 있는 고릴라로서는 칼이 음식을 자르는 도구라는 생각조차 했을 리 만무하다. 아니 쥐는 부분이 칼 자루일 것이라는 생각조차. 그냥 우연히 날카로운 곳을 피해 잡다 보니 칼자루였을 것이고, 그냥 우연히 장난을 치다 보니 칼을 휘두르는 꼴이 된 것이다. 자연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연이니까. 하물며 칼이 생명을 해치고 살생을 하는 범죄 행위의 도구라는 생각은, 범죄의 개념조차 없는 그에게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그냥 인간이 떨어 뜨려 놓은 칼을 호루라기를 주어 불어보듯이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그러나 칼을 들고 장난을 치는 고릴라를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과 신음을 냈던 관람객들이 상상했던 것은 무엇일까? 휘둘려지는 허연 칼과 그것을 쥔 고릴라의 특유한 외모를 결합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문명인으로서 마음 속 깊이 새겨둔 어떤 이미지가 환기되었던 것일까? 검은 색의 털이 온 몸에 무성하게 나 있어 무지막지하고 무섭게 생긴 동물이 금속성의 강한 해체 도구를 들고 뛰어 다닐 때, 문명이 쉽게 머리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그러한 이미지를. 예를 들면, 기자가 찍었을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하나를 뽑아 저기에 게시된 저 이미지와 같은, 정확히 인간의 모습을 닮아 더 끔찍해 보이는 그러한 이미지를. 어떤 점에서 문명이란 만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강박 아니면 부정적 나르시즘일 것이다.

칼의 존재는 칼을 쥔 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상상 속에도 있다. 칼을 보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자연에 대하여 혹은 순진무구에 대하여 문명이 상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칼의 존재이며, 칼을 쥔 우리의 상황을 표상한다.

Posted by huun

꼬마 시절에 처음으로 동물원에 가서 놀랐던 것은 아마도 잠재적인 것(the virtual)이 지각과 의식으로 난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 책을 보거나 우화집을 읽을 때 조차, 나는 동물이나 사물, 그 밖에 세상 모든 것들을 마치 눈을 감고 걸어가는 몽유병자처럼 지각했다. 부피도 없고 잔주름도 없이 깔끔하고도 살균된 이미지들을 2차원의 형태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에서는 그 환영지대(phantom zone)의 이미지들이 창문을 부수고 나와 실제로 육체라고 하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잠재적 지속(virtual duration)이라고 하는 엄청난 것을 내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백 년도 훨씬 넘은 거북의 뱃살에 새겨진 정신착란적 찰과상들,  슬로우 모션 영화를 보는 것같이 우아하기 그지없는 기린의 몸동작, 막대한 체적으로 시야를 압도하는 코끼리의 뒷다리,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는 늑대와 사자들의 야수성, . . . 그들은 정말로 동물들이었고, 내게는 일종의 괴물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내가 가져왔던 지각의 패턴을 흩트려 놓았다. 어린 시절 동물원으로의 외출은 그야말로 지각의 외출이었다. 어쩌면 실재에 대한 불안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도 그 때이며, 한편으로는 내 일상적 지각이나 믿음에 대한 어렴풋한 권태가 밀려온 것도 그 때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동물원에 가보지 못했다. 그러자 점차 그 권태와 불안은 잊혀져 갔다.

다 커서 동물원에 갔을 때, 이제는 지각의 흐트러짐 조차 또 하나의 지각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늙어가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어쩐지 저것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존재를 닮아가는 것 같았고, 한참이나 바라보던 나 또한 그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가 않았던 것이다. 레드 피터(Red Peter)처럼, 살아나기 위해, 본인은 "잠시 동안만!" 이라고 매 순간 다짐하면서 실은 평생동안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그들은 더 이상 창살 쪽으로 가까이 와서 식식대며 좌-우로 배회하는 일이 없다. 간혹 아프리카 초원이나 남미 정글에서 새로 구입되어 막 갇힌 동물들만이 새 우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창살 쪽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잠깐 끌고 있을 뿐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그들도 곧 창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눈에 띄지 않는 그늘이나 어두운 동굴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거나, 관리인이 던져놓아 한참 동안 바닥에 나뒹굴던 김빠진 먹이를 뜯게 될 것이다. 그들은 먹이로부터 초연하기까지 하다. 급기야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방문객들이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이리저리 소리를 질러가며 약을 올리지만, 동물들은 오히려 더욱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하품을 해댄다. 누구의 창살이고 누구의 구경거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누구의 것이든, 거기서는 그 무엇도 흥미를 끌지 못했고,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관심밖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기대하고 예상하고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낙원이었던 것이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