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네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1/19 아버지들의 깃발

잘 알려진 예로,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소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 19세기 당시 부르봉 왕조를 지지했던 골수 보수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발자크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었던 관찰과 통찰은 귀족계급의 필연적인 몰락이었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발자크의 리얼리즘에서 간파했던 위대함은 그가 비개인성(impersonality)에 도달했다는 사실이었다. 엥겔스에 따르면 진정한 리얼리즘이란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계급 그리고 사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상위의 실재에 대한 긍정에 있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라든가 프루스트(Marcel Proust)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관점(a point of view)"을 예술가 개인을 넘어서 하나의 세계라고 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 목표 즉 신의 눈을 가질 것!

그러나 이 "신의 눈"이라는 개념을 그렇게 예술적 혹은 역사적으로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고도 그 의미를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 삶 속에서의 작은 윤리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작은 사건을 바라보는 진지한 태도를 의미할 수도 있다. 가령,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영화가 좋은 예이다.

그의 영화를 유심히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는 투박한 미국인 답지 않게 꽤 섬세하고, 배려심이 강하고, 사려가 깊다. 말하자면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아니면 그 맛을 좀 안 다고 할까? 재즈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섬세함일까?(Charlie Parker에 관한 영화를 비롯하여 이미 그는 재즈에 관한 상당히 수준 높은 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다) 어쩌면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이고(그는 공화당 지지자이며, 공화당 집권 당시 공직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기에 있어 보수주의적 색채가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식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일 수도 있다(그의 영화 대부분은 가족이나 도덕에 있어 미국식 이데올로기가 진하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보면, 그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편협한 관점의 소유자는 아님을 느낀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난 후 짧게 드는 생각은, 한 마디로 그가 뭔가를 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시하고 진부해서 거들떠보기도 싫은 미국 상업 영화들 속에 끼어 있는 것이 좀 의아하고, 또 그의 재능이 아까울 만큼.

그의 작품 <아버지들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 2006)은 미국인들의 애국과 영웅주의를 비판 혹은 고무시킨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국의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미국에 관한 영화이고, 미국적 영화이고, 어떤 점에서는 우리와는 무관한 혹은 어떤 점에서는 미국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그들만의 제스처에 대한 이질감(혹은 역겨움)이 느껴지는, 그래서 우리를 실망시키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이 작품에서는 놀라운 장면들이 간간히 펼쳐지는데, 초반의 몇 몇 시퀀스에서의 그 "엉성한 전쟁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어딘가 항상 핀트(focus)를 놓치는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만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첫 시퀀스의 장렬한 전투 씬을 비교해보라. 전쟁터에 투입되기 전의 "햇병아리 같은 신병들"(이스트우드는 확실히 미국의 노인이다)과 비교적 의젓한 고참 병사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해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을 실감하지는 못한다. 막연한 공포만이 그들의 대화와 표정에 감돌 뿐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죽음인지조차도 감지하지 못한다. 군함에서 장난을 치다가 우연히 한 병사가 바다로 떨어진다. 동료들은 그의 우스꽝스러운 실수에 웃고 떠들며 놀려댄다. 하지만 군함은 그를 구출할 만큼 한가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를 가차없이 버리고 갈 것이고 그는 결국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 죽을 것이다.

 전쟁은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죽음은 아주 우연적이고 사소하게 장난처럼 다가 오지만,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막대함이 더 이상 저항도 거부도 할 수 없이 왔다가 사라져 버린다. 섬에 도착해서도 전쟁은 엉성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상상하는 장렬한 드라마는 고사하고 전쟁이 시작된 것인지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돈다. 마치 공사장의 인부들처럼 자신 앞에 놓여진 노역의 임무를 수행하듯이, 마치 어제도 해 보았던 일이라는 듯이 일상처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신병은 그 와중으로 끼어들어가 거기서부터 죽음에 적응하고 죽음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감지해야만 할 것이다.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육중한 철근 덩어리와 금속 탄환들이 이따금씩 순간적으로 날라와 옆에 있는 동료들의 사지를 찢어발기고 머리통을 부수고 있다. 하지만 실감도 나지 않는 장난 같은 전쟁이, 곧 있으면 감독의 컷 소리가 이 모든 것들이 아무 일도 아니었음을 선언할 것 같은, 엉성하고도 어설픈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싸움과 장렬한 최후는 집으로 되돌아가고 한참이나 지난 후 후방에서만 벌어지는 일처럼.

감각도 없이 얼얼한 상태 속에서 벌어지는 그 엉성한 전쟁장면 전체는 아마도 전쟁에 투입된 신병들의 주관적 관점으로 제시되는 것 같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죽음들간의 싸움에 점차 적응해야만 하는 시간. 그 첫 전쟁 시퀀스에는 공포가 잠재적으로만 존재한다. 전투 당사자의 주관적 관점! 전쟁의 실상에 대해 그 만큼 객관적인 장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핵심은 깃발에 있다: 그 사진 한 장에 찍힌 깃발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본국의 정치가들은 그 깃발이 미국인의 애국, 전쟁에서의 승리,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이 되기를 바랬다. 그들은 장병들과 미국인 전체 그리고 더 정확히는 자기 자신들에게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깃발을 세우고 싶어했다. 그들의 모든 바램을 표상해주는 하나의 미국, 두 장도 필요 없는 단 하나의 이미지 말이다. 왜냐면 그들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고, 전쟁을 위해 돈이 필요했고, 지지를 위한 단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진 한 장이 할 수 없는 일을 영화가 해 주어야 한다; 실상(real image)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진 한 장은 말 수가 너무 적으며 너무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그리하여 사건을 어림짐작으로 보게 하고, 현재의 바램을 가지고 과거를 보게 할 소지가 크다; 바램을 비추어 감미로운 색채를 덧붙여 볼 것이 아니라, 과거를 과거 그 자체로서, 가급적이면 무미건조한 상태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한 번 보자; 찬사 역시 근거 없는 비난 만큼이나 또 하나의 왜곡일 수 있다; 거짓말쟁이들에게 여지를 주지 말자!

이스트우드가 생각하기에 사진은 아주 위험한 매체이다("모든 문제는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편협한 지각처럼 실상으로부터 시간의 지속을 빼고 흔적과 자취만을 남김으로써, 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경유착적 유혹에 따라 과거를 바라보게 할 소지가 크다. 그것은 과거의 왜곡, 존재의 왜곡, 삶의 왜곡이 될 수 있다. 사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감독의 뜻을 해석해보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진실이란 물질적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지속의 문제라는 것이다. "병사들이 깃발을 꽂았다!"가 아니라, "어떤 병사들이 언제 어떻게 어디서 무엇 때문에 . . . . 깃발을 꽂았는가!"여야 한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수 백 권 분량의 책을 집어넣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이야기는 시종일관 그 깃발 사진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롱 컷의 형사물(detective story)처럼 진행된다. 미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보도를 하듯이, 깃발이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으며, 누가 맨 처음 세웠고, 깃발은 어디에서 가져왔고, 누가 그것을 가져왔고, 누가 세우라고 지시를 내렸고, 몇 시에 언제, 세울 때의 각도는 어떠했고, 대기 상태는 어땠는지, 깃발을 세우고 난 후 병사들의 기분은 어땠는지, 일본군은 어디에 있었는지, 사진은 누가 어떤 카메라로 어떤 각도에서 언제 찍었는지, 왜 하필이면 그 장면을 찍었는지, 영웅을 만들려고 찍었는지, 그 문맥 속에 영웅이 있었는지, . . . 이 모든 물음과 대답들은 형사가 조서를 꾸미듯, 범행 사후 검증 프로그램을 짜듯이 하나씩 하나씩 제시된다. 사진을 빌미로 정치적으로 채색되었던 어떤 비극적 혹은 영웅적 드라마가 건조한 사실들로 해부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감독이 도달한 실상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상상했던 사진 속 영웅들의 깃발장면은 너무나 실망스럽고, 클라이맥스도 없으며, 무슨 사건이라고도 할 수 없이 흔하고도 우연한 일에 불과했다; 실상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우리가 생각해 왔듯이 그렇게 영웅적인 존재나 악당의 감동적인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깃발을 꽂는 행위 역시 언제 그것이 일어났는지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의 하나의 지리멸렬한 사실로 흩어질 뿐이다; 실상 안에는 적도 없고 편도 없고 장렬한 음악도 없고 자세히 보려는 클로즈업도 없고 기억에 오래 새기기 위한 슬로우 모션도 없다; 다만 육체와 포탄의 순간적인 충돌들만이 메아리 칠 뿐이다; 말할 수 없이 엉성하고도 어설픈 전쟁의 다른 절차들처럼(전쟁만큼 억지스럽고 엉성한 폭력이 또 있을까?), 깃발을 거는 행위 역시 전투의 한 절차였을 뿐이며, 전투가 끝난 것도 아니었으므로 승리의 선언조차 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오히려 깃발이 걸린 후 한참 동안이나 죽음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사진 한 장이 그 사소한 지점에서 흔적을 남김으로써, 추악한 탐욕을 가진 어떤 집단적 망상이 일부러 오해를 하도록 여지를 주었다; 구체성에 도달할수록 우리가 대면하게 되는 것은 사소하고 우연적인, 심지어는 모호한 대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겪은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그렇게 명분도 없고, 이유도 없고, 드라마도, 영웅도 없는 모호성으로부터, 사소한 것으로부터 이유도 없이 나자빠지면서부터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전쟁의 실상을 겪은 실제의 신병들, 그들 각각의 자신의 모습이다; 영웅과 악당이 대립하는 뜨거운 세계는 사후(事後)에 누군가의 필요가 만들어낸 낭만일 뿐이며, 그것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실상의 개인들에 대한 무례이다; 객관성의 상징인 사진 한 장만으로도 우리는 낭만적 열광의 거짓으로 무례를 범한다; 애국과 단결과 영웅의 탄생을 선언하는 깃발은 전쟁을 막아주고 형제의 목숨을 지켜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영웅의 깃발은 적으로 하여금 무기를 버리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무기를 버리게 하지는 못한다; 전쟁을 그만두기 위해, 전쟁의 억지스럽고도 무지막지한 실상을 겪은 작은 사람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우리가 해왔던 모든 찬사들을 철회하자! 그들에게 보냈던 모든 환호성에 찬물을 끼얹자!

이것이 바로 영화 전체에 걸쳐 "전장에서의 실제 상황"과 "본국에서의 찬사"를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식으로(그 목적은 전혀 다르게) 계속해서 나란히 교차로 편집했던 이유일 것이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 후방의 안방의 우리들은 모두가 형식주의자 및 유미주의자가 된다.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의 선언문을 암송하듯이, 우리는 전쟁의 형식미와 전장의 다이나믹을 만끽한다.

   

용맹스럽게 돌진하는 군인들, 터지는 포탄의 카리스마, 화염방사기가 내뿜는 불꽃의 현란한 색채, 나자빠지는 육체들이 표현하는 가공할 기술주의의 힘, 에너지, 속도, 그리고 그 모든 미래적 활력과 미를 하나의 응축된 힘으로 보존하는 위대한 신 즉 자본! 그러나 이 철없는 미학과는 무관하게, 전쟁 영화란 전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영화이다. 그 결과 그 어떤 찬사와 미학도 허용되지 않는, 스스로 소멸되어가거나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신의 미를 일그러뜨리는 길을 간다. 명목상 진정한 전쟁 영화는 다큐멘터리 혹은 보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버지들의 깃발>은 그 정치적 관점에 있어 여전히 애송이 티를 벗지 못한 작품이긴 하지만(후속 작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그 보다 더 어설픈 문화적 편협이 있다), 그럼에도 미적인 것을 가급적 지양하면서 개인의 실상(전쟁의 실상은 아닌)을 보려는 노력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을 이렇게 요약해보자: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 사리를 밝히고 따져봄으로써, 개인들의 구체적 실상을 보고자 하는 영화적 노력"(이스트우드는 눈매만큼이나 꼬장꼬장한 노인네이다). 이것이 우리의 정신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구체성을 사진의 감각-물리적 객관성이 아니라 시간-지속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해주었다는데 있을 것이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