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게으름 탓이다. 가장 흔하고 값쌀 뿐만 아니라, 가장 습관적인 음료, 그래서 또 가장 편리한 음료. 커피는 상품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무엇이든 상품이 되고 나면 편리해지고 습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지겨워지기도 한다. 다른 신선한 음료는 없을까? 이러한 욕망이 채워지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이는 또 새로운 비용이나 에너지를 부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저냥 커피를 마시며 살고 있다.
사람들이 대체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른 신선함을 몰라서가 아니다. 식후 커피는 마치 어떤 의례(儀禮)처럼 보인다.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하고 있는 저들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우선 약속 장소에서 만나면 식사를 하러 간다.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지나면, 곧바로 식당을 나와 찻집으로 들어간다. 아주 익숙한 사이가 아니면, 사실 모든 얘기는 이미 식당에서 끝냈을 것이다. 밥 먹고 헤어지기 뭐하니 예의로 차를 마시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즉 내가 정말로 마시고 싶은 것인가? 하고 자문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내 손은 의무적으로 커피에 닿아 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친구들과 딱히 할 일이 없으면 봉지커피를 타거나, 봉지커피의 변신이랄 수 있는 동전커피를 뽑는다. 동전커피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구멍이 외부에 노출되어 위생상 좋지 않을 것이다. 대장균이 꽤 서식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배가 아파 오기도 한다. 그런데도 열심히 들 마시고 있다. 마시면 헛배만 부른, 콜라 다음으로 가장 게으른 음료. 가끔은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커피에는 게으르고 지루한 속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속성이 더 많다(이 점이 콜라보다는 우월한 이유이다). 그것은 대체로 커피 자체에 있기보다는 그것이 품고 있는 다른 것에 있을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내가 아는 한 커피는 여자들이 더 좋아한다. 왜일까? 그들에게 카페인을 더 선호하는 호르몬이 있는 것일까? 남자들은 만나면 술을 마시거나 당구를 치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다방이나 카페에 가는 일은 드물다. 간혹 실수로 그런 곳에 간다해도, 앉아서 담배만 피워대거나, 쭈뼛 쭈뼛 고개를 젖히며 하품이나 해 대는 게 전부이다. 그러다가 몇 십 분이 지나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야! 나가자!" 혹은 "술 한잔 어때?" 심한 경우엔 "에이, 지겨워!" 그러나 여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커피숍에서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커피를 앞에 놓고 하루종일 수다를 떨어도 즐겁다. 담배를 즐겨 피우는 일도 별로 없고, 술을 찾는 일도 많지 않다. 딱히 몸을 기댈 수 있는 물신(fetish)을 별로 가지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인지, 이들에게 허락된 저 커피와 그 분위기에 자신들의 몸을 맡기기를 서슴지 않는다. 커피에 죽고 커피숍을 위해 태어난 존재! 이들이 바로 여자들이다. 남자들의 환타지가 술집이라면, 커피숍은 바로 여자들의 환타지일 것이다. 모두가 일종의 출구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장소이다. 이렇게 우리는 술에 취하는 것만큼이나 커피에도 취한다.
그러나 알콜도 없는 커피를 마시며 무엇에 취하는 것일까? 아마도 말(言)일 것이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대화. 커피 뿐 아니라 차를 마시는 일은 대화를 의미한다. 동양인들은 차를 마시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거기에 도(道)라는 심오한 세계를 품에 안았다.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물질과 정신을 왕복운동 하듯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자신과 대화하면서 명상 속에 잠기면 나의 몸은 끝간데 없는 정신적 심연으로 빠져들어 에테르 상태가 된다. 그러다가 차를 마시면 입안으로 퍼지는 모든 감각들―뜨거움, 차가움, 신맛, 단맛, 향기―로 인해 내 몸은 다시 공간을 점유하고 무게를 갖는 몽뚱아리가 되어 내려온다. 감각과 추상의 왕복 운동 속에서 나는 마치 그네를 타듯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저 여자들 역시 수양(修養)에 버금가는 무엇인가를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몸을 데운다. 이야기를 하려면 서로가 이미 잘 알고 있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낯선 인물이나 사건 혹은 장소들조차도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반복적인 등장으로 친숙해 지고 거기에 특별한 감정이 느껴진다. 두 번째로 지나가는 길이 익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듯이, 반복은 거리를 없애고 감정을 촉발한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낯설다. 저 만치에 떨어져 그 주인인 우리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이 낯선 일상이 이야기 속에 실리면, 우리는 그것을 이리저리 만져볼 수도 있고 냄새를 맡아볼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 누군가가 등장한다면, 그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선망의 대상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참 지나고 나면 그의 오밀조밀한 사건과 사연들이, 단단히 주름진 색종이가 물 속에서 흐물흐물 퍼지듯이, 하나 둘 씩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펼쳐진다. 소설가란 먼 거리에서 신비로운 광채를 띤 어떤 것을 이 편으로 가져와, 그 신비를 벗겨보았더니 실은 별것이 아니었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의 탄성을 지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같은 평면 위에서 인물들을 바라보고 같은 세계를 그린다. 곁에 바짝 붙거나 바로 앞에서 살아있는 사람이나 사물들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얄밉거나 귀찮기도 하며, 또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은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두려움과 냉소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야기를 통해, 떨어져 있던 간극이 식혀 놓은 차가워진 신체를 데우며, 가족을 느끼고 외로움을 없앤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식사를 하면서 몸을 데우듯이,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커피와 이야기는 살아가는 것 자체이다.
그러다가 간혹 우리의 몸은 매우 뜨거워지는 경우도 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 . . 이야기를 하다보면, 선한 것과 악한 것은 뜨거운 스프 상태가 되어 잘 구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선이나 악은 살아가는데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거나 들으면 저 선과 악을 떠올리며 쉽게 뜨거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 자체를 그 뜨거움 속에 내맡길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야기는 그냥 놀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의 모든 것은 가여워 보이기만 하다. 죽도록 미운 것도 없으며 영원한 사랑도 없다. 지고한 선도 추악한 악도 모두가 그냥 이야기의 한 소절일 뿐이다.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초인이 되게 한다. 그리고 이 초인은 간혹 뜨거워지는 자신의 몸을 달래기 위해 커피나 차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대화에 임하려는 것은 미리 뜨거워질 몸을 스스로 배려해서이다. 내 어린 시절 무섭기만 했던 저러한 뜨거움에 울고 있으면, 어른들은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고 타이르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시며 그 뜨거워질 시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은 어른이다. 화나는 일이든, 슬픈 일이든, 자신의 통제력으로는 가눌 수 없는 온도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커피나 차와 같은 물질의 힘을 빌어 누그러트릴 줄 아는 초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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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균이면 보통 그 온도면 청소가 되는데 따른 데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죠. 2005/11/30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