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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6 역사성과 영화: 멜 깁슨의 <Apocalypto>에 관한 짧은 논평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해, 역사란 비개인성에 도달한 상태이다. 그것은 나의 현재적 관심과 필요와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벗어나, 존재를 그 자체로 보려는 노력이고, 그 가능성에 대한 비젼이다. 오로지 이 방식만이 모든 존재들을 종속 상태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 자신의 고유한 존재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역사성의 정신적 토대이자 조건이며, 우리와 같은 고매한 취향의 소유자를 흥분시키는 유일한 시간이다.

미국인들이 만든 문화 상품은 언제나 굉장한 규모와 테크놀로지로 우리를 놀라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멜 깁슨이 또 등장했으니, 그의 얘기를 잠깐 해보자.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예술적인 관점에서보다는 상품의 관점에서 얘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들 박수를 치고 있으니, 한번 따져볼 수 밖에.

그의 영화 이미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가 대단한 강박과 집착의 소유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강박적 태도의 요체는 한 마디로 말해, "실재적인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아포칼립토>에서 그가 주로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언어와 역사의 고증이었던 것 같은데(인물들, 건축, 공동체, 문화, 제례, . .), 고증에 대한 미국인들의 열망을 나는 잘 믿지 않지만, 어쨌든 그의 영화를 보면 바로 생생한 것, 실재적인 것에의 철저하고도 고집스런 집착이 있어 보인다. 긍정적으로 말해 일종의 역사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설정된 인물들의 본래의 언어를 영화 속에 그대로 안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첫 시퀀스에서 보여주었던 그 놀라운 아람어를 듣는 순간, 우리는 경련을 일으키게 된다. 화면 속의 인물들과 예수와 그들을 감싸고 있는 시간 전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로부터, 바로 그들 고유의 존재로부터 튀어나와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그 많은 인물들이 모여서 알 수 없는 아람어를 읊조리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정서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어떤 야수에게 침탈 당한 것처럼, 우리의 내부로부터 요동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순전히 고대 아람어 하나만으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 시간은 나와는 완전히 무관한 타자로부터 경험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동네 뒷동산이 아니라 진정한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멜 깁슨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멜 깁슨의 인터뷰 내용 한 구절을 들어보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아포칼립토>를 마야어로 촬영한 건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 어렸을 때 추억을 떠올려보면 더욱 극명하다. 그 당시 본 것들 가운데, 한 무리의 바이킹이 수녀원을 습격하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다. 덩치가 산 만한 바이킹 남자가 천천히 배에서 내려 수녀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나 흥분되는 장면이던지, 하지만 내 감응은 바로 다음 순간 산산조각 났다. 바이킹이 영어로 "나는 여기 내 선조들의 도끼를 가지러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안녕, 난 로스ㅡ앤젤레스 동쪽에서 왔어"라는 말과 똑같이 들렸다. 하지만 만약 그 바이킹이 아주 낮은 음성의 독일어를 사용했다면, 오, 나는 아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오줌을 싸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위 내용을 보면 그는 뭔가를 아는 사람임엔 틀림없다. 그 자신이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리고 이제는 이미지를 직접 디자인하는 감독으로서, 실재적인 것에 대한 집착과 철저함에 찬사를 보낸다.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철저해야 한다.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티끌 하나라도 성의 없이 대충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문제가 아니다. 하늘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성의 깊이는 곧 예술가의 윤리이다(임권택 감독의 예술에 관한 영화들 대부분은 바로 이 주제를 담고 있다). 남의 작품을 베낀다든가, 적당히 얼버무린다든가, 눈속임을 한다든가 하는 예술가에게 우리가 비난을 하는 것은, 결코 그가 법을 어겼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이킹 영화의 영어 더빙처럼, 시시하기 때문에, 우리를 맥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술적 타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적 윤리와 예술성은 같은 말이다. 어린 멜 깁슨이 그 바이킹 장면에 실망하면서 감독에게 항의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왜 바이킹의 고유함을 훼손시키는가?"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과연 멜 깁슨이 예술적인가? 그는 정말로 철저한 사람인가? 많이도 필요 없고, 한 가지만 말해보자. <아포칼립토>의 첫 시퀀스와 두 번째 시퀀스는 마야인들의 사냥과 마을 공동체에 관한 긴 내러티브로 꾸며져 있다. 이 두 시퀀스에서 우리는, 고대 마야인이라고 지시된(referred), 원시인들처럼 가죽을 걸치고,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수십 수백의 집단이 각자의 가족을 이루며, 여가 생활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 . . 정확히 미국인들의 가족을 보게 된다. 심지어는 기독교적인 냄새까지 나는 가족의 모습, 헐리웃 영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행복하고도 건전한 가족의 모습 말이다. 시퀀스가 끝나고, 그들이 단잠에서 깨어나면, 침입자가 쳐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다들 모여 당장에 예배당이라도 나갈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공동체. 놀랍게도, 철저한 이미지를 추구할 것 같았던 기독교인 멜 깁슨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던 디에고 드 란다가 쓴 정말 좋은 책(<유카탄 지역 문물들의 제 관계>1566), . . .  관습과 사회적 습속을 직접 목격하고 쓴 책, . . . 드 란다는 그 책에서 마야 문명과 용기, 절제, 의지, 서로 화합하는 기독교적 미덕을 보여준 원주민들의 모습을 자주 묘사했다. 이는 영화 속 표범 발의 마을을 형상화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영어로 바이킹의 언어를 더빙한 것에 대해 실망했던 그가! 더 무시무시한 더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디에고 드 란다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나 역시 오줌을 지릴 뻔 하다가, 그 헐리웃-예배당-oriented 패밀리들을 보는 순간(실은 사냥하면서 미국식 장난을 치던 청년들의 모습이 더 먼저였지만), 완전히 기분을 잡쳤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더 이상 기대감을 접고, 고차원적 흥분을 포기한 채, 헐리웃 액션영화를 보듯, 이미지의 감각적 자극이 주는 진부한 쾌감에만 몰두하며 스크린을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중간 부분에서 대단히 감각적으로 보여주었던 마야인들의 희생제의의 경우, 타락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된 어리석은 대중의 종교적 야만적 열광 쯤으로 해석한 것은, 오히려 현대 서구 사회 특히 미국의 정치-종교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스포츠, 전쟁, 종교, . . 미국의 정치 문화를 비판한 것일까?).

더빙은 우리를 맥 빠지게 한다. 언어 뿐만 아니라 주관성의 더빙은 더 그렇다. 역사에 있어, 문제는 누가 침략을 했는가? 왜 멸망을 했는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건축물과 육체들의 배열과 운동, 그리고 몇 몇 감각적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아니, 오히려 그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역사성에 도달하려면, 진정한 실재성을 보여주려면, 보다 근본적인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 언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자신의 신념으로부터 벗어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과거에 관한 이러한 편협한 관점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있었나! 역사적 고증은 기계나 사진 혹은 남아있는 자료들의 감각적 직접성이 아니라, 주관성 내부로부터 시작하는 직접성이어야 한다. 역사는 비개인적 관점에 도달한 상태라고 했던 나의 명제는 바로 이런 뜻이다. 영화는 문학이나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매체이다. 그러나 그 직접성이란 감각 이미지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바이킹에게 그들 고유의 언어를 돌려주고자 했던 멜 깁슨 자신의 철학처럼, 영화는 마야인들의 언어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거 전체를 되돌려 주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는 것! 상품과 예술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란 생생하고도 사실적인 것의 소유가 아니라 과거 전체를 되돌려 주기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만 비로소 예술은 역사적인 것을 구체화할 수 있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