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교는 본관건물이 사각의 도우넛과 같다. 마치 거대한 요새나 큐브처럼, 건물 터 중앙에 있는 사각의 광장 주변에 7-8층의 시멘트 건물이 솟아 있다. 자료를 뒤지거나 누군가에게 물어본 적이 없으므로,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군대문화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그 건물 안에는 교수들의 연구실 뿐 아니라 동아리 방이나 강의실 등, 학교가 갖추어야할 기관들이 온통 들어서 있다. 계단이 복잡하게 지그재그 형식으로 되어 있어, 처음에 온 사람은 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지 거의 1년이 지나서야 건물의 패턴을 파악할 정도였다. 사방이 막혀있었고, 창문 대부분은 바깥쪽이 아니라 중앙의 광장 쪽으로 나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놓아도 통풍이 되지 않아 수업하기가 고역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언제나 창밖은 고요했다. 학생들이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어 버리기 때문에, 짓궂은 녀석들은 그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재떨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 광장은 잔디가 무성히 나 있고, 상록수나 단풍 등이 몇 그루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학생들에 대한 배려로 여기저기에 벤치도 놓여있다. 주변에는 트랙이 둘러쳐져, 학생들은 그 가장자리로 조깅이나 도보 혹은 데이트나 수다 등으로 계절을 보낸다. 수업이 지겨워져 바깥을 보면 그런 풍경들이 잔잔히 들어온다.
언제부터인가 그 잔디 광장에는 낙타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떤 필요에서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여기저기에 똥오줌을 싸 놓아 (냄새는 말할 것도 없이) 푸르렀던 광장을 온통 황갈색으로 물들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시끄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저 지저분하고도 무례한 동물이 학교에, 더구나 강의실이나 연구실이 직접 보이는 광장에 존재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학생과 선생들에게서 당장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아무도 저 동물에 대해 항의는커녕 당국에 문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면서 저 동물은 이 학교에 엄연히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더 이상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녀석이 가엽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또 창 밖에서 진풍경을 자아내어 즐겁기도 하고, 나중에는 학생들끼리 공모를 하여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어떤 학생들은 그 동물의 팬클럽까지 만들었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녀석들은 수업시간 내내 창밖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낙타는 학교 공동체의 일원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누구도 낙타를 보살펴주는 사람은 없었다. 먹이를 주지도 않았으며, 집을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별로 넓지 않은 광장의 잔디와 많지 않은 나무 열매를 가지고도 녀석이 오랫동안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거의 1년 반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녀석에게는 등에 나 있는 봉(峯)에 자신의 음식을 비축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니까, 초목이 무성한 봄여름에 잔뜩 비축을 해두고, 초목이 없는 늦가을과 겨울부터는 비축해 놓은 것을 반추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초봄에는 큰 혹이 작아지거나 없어지다가, 초가을이 되면 다시 그 혹은 몸집보다도 커져서 대체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일생은 두 패턴으로 나뉘게 되었다. 초봄이 되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주변의 식물들을 먹어치우고, 늦가을이 되면 비대해진 몸으로 자리를 잡고 엎드려 아무 하는 일 없이 칼로리를 소비해가면서 살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그의 몸이 커져가면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봉 속에 조금 씩 조금 씩 쌓아놓는, 인생 전체에 걸친 어떤 이름 모를 비축 때문이었다. 이 동물에게 비축과 반추는 거의 본능이 되어가고 있었으며, 저축과 소비에 관한 그 본능적 계산은 경제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의 본능이 이렇다보니 신체에도 변화가 일어나, 처음에는 하나였던 봉이 지금은 둘이 되었고, 세 번째 봉이 조금씩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흔히 이 동물의 종을 단봉과 쌍봉으로 나누어 분류하지만, 내 소견으로 그 봉의 개수는 정확히 그의 성장 일반과 일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축과 반추의 반복은 이 혐오스런 동물에게는 일종의 자본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봉이 하나 더 생긴 것은 이 광장에 매여 있던 때부터라고 알려졌다. 그가 한 번도 광장 밖을 나가지 않고도 그럭저럭 이 생활에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저 봉의 신비 때문일 것이다.
저 동물이 잘 견딜 수 있었던 생물학적 수단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사회학적 이유일까? 정신분석적 이유일까? 아니면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이유일까? 아니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적 이유일까?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적 냉소주의적 해체주의적 아방가르드의 분열증적 주체의 욕망의 이유일까? 아니면, . . . 어쨌든, 그 동물의 목에는 두꺼운 밧줄이 매여 있고, 그 밧줄은 광장 한 가운데에 박혀있는 묵직한 말뚝에 고정되어 있었다. 줄이 꽤 길어서 제법 자유롭게 광장을 활보할 수는 있었다. 다만 트랙을 넘지 않는 길이였으므로, 그에게 허용된 자유는 반지름과 π의 계산만으로도 정확히 가늠이 되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낙타의 운동 범위가 대체로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녀석은 가운데 쪽으로는 절대로 가는 일이 없고, 그렇다고 매어진 밧줄이 팽팽해 질 때까지 나아가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풀이 무성한 지대와 그렇지 않은 지대가 마치 토성의 띠처럼 어떤 무늬를 자아내고 있다. 그 무늬는 석양이 질 때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는 그 동물도 그 무늬를 사랑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간혹 그가 인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신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의 등에 솟아오른 봉과 상호 결합하여 광장을 하나의 유기적인 소우주로 만들고 있었다.
간혹 무슨 이유에서인지 녀석은 화가 나서 날뛰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온 후로 약 6개월 동안은 그 정도가 심해 모든 사람들이 싫어했다. 우-워-억, 우-워-억 . . . 소리를 지르며,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그 밧줄이 끊어져라 팽팽해 질 때까지 트랙 밖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밧줄은 그의 분노와 욕구보다도 강했으므로, 곧 화를 누그러트리고 기진맥진하여 다시 평균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 나서는 편안하고도 행복한 신음을 내며 사지를 뻗고 잠이 들었다. 트랙 밖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는 분명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심지어는 욕구가 있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헷갈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트랙으로의 외출은 말하자면 체조나 운동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그도 그 환경을 만족스러워하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 번도 말뚝 자체를 문제제기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말뚝이 여전히 아무런 쟁투의 흔적 없이 저기에 저렇게 우뚝 솟아 있으니 말이다.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 영원히 거기에 있다는 듯이. 그 동물은 자신의 목에 길게 매여 있는 밧줄과 그 영원한 말뚝이 너무 멀어서인지, 아니면 말뚝을 아버지로 여기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현기증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한 번도 그 거리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질문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반복해서 광장의 끝에만 갔다가 머리를 숙이고 되돌아올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짓을 반복하던 세월도 다 지나가고, 그 밧줄이 끊어질 듯 팽팽해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이젠 아무도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를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저 혐오스러운 동물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말하는 사람도 없다. 사실 아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 . . 그가 이 광장의 일원이 되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그 자신이 스스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후 부터일 것이다. 그를 위해 울리는 것은 아닌데도, 이제 그는 1시간에 2번 울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긴장하고 이완하고 긴장하고 이완하고 . . . 뭐 이런 범 우주적인 반복의 운동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잘 살고 있다. 모든 수업이 끝나 방과 후가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 동물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저녁 이후엔 그가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해가 다 진 저녁이 되고, . . . 밤이 되고, . . . 새벽이 오면, 자신이 새겨 놓은 무늬, 아름다운 반복의 무늬가 펼쳐진 넓은 광장에, 혼자 서 있거나 잠이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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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인 관찰로 시작해서 자신의 궤적으로 끝나는 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6/04/24 11:50
재미있군요.... 2006/04/24 17:23
실제상황인가요? 은유인듯도 하고.. 2006/04/25 10:53
예..실제 상황입니다. 2006/04/25 19:41
루이16세와 그왕비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사람들은 말뚝의 존재를 알아챈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래서 프랑스사람들은 좀 다르다는 생각도 듭니다. 2006/04/27 17:31
그렇게 보니 또 그렇군요 . . 너무 거칠게 뽑긴 했지만 말이죠?! . . . 흥미로운 말씀이십니다^^ 2006/04/28 08:48
제 생각엔 루이16세나 그 왕비랑 결부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 같은데요? 2006/04/30 13:46
어떻게요? 2006/04/30 19:42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일은 지나친 일반화나 균일화를 시도하면 항상 오류를 범하게 되니 말이죠.... 2006/05/01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