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된 자의식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본질을 변형시킬 수 있게 한 최초의 과오(?)였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개인은 자신에게 속한 본성을 다른 본질에 속하는 이미지로 변질시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히 자신의 본성을 표상적 대리물로 치환하는 과정을 따른다. 이 대리물은 다른 개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종의 기호가 되어 특정한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교환된다. 부끄러움은 이제 두려움과 불안이 되고, 그는 사회적 놀이에 예속되어 자신에 속한 모든 본성적인 것을 이 교환에 맡겨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교환은 위험하지가 않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되돌아오는 놀이이며, 아무도 거기서 손실에 대한 책임이나 위험을 발견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해서 우리는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지 않고 교환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타자의 시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일단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을 보게 되면, 묵묵히 규칙을 따름으로써 들키지 않고, 자신이 속한 한 사회가 마련해 놓은 의식(儀式)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떼지어 사는 사교적인 무리들은 이와 같이 집단적 환영(幻影)에 사로잡힌다. 이들에게 관건은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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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생존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더군요. 단지 살아남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개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사회가 인간에게 의미있을 수 있는것은 생존저 너머의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현실과 거리가 먼것 같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지 살아남는 것만이 관건이라면 인간에겐 사회는 정말 무의미 한 것일 지도 모르겠더군요.... 2006/03/15 15:39
고립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겠죠..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렇게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해서 지칭하는 겁니다..먹을 것이 없어도 죽지만, 고립의 공포도 역시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최소한 윤리적 죽음 말이죠...그러나!! 사르트르 말마따나("타자! 그것은 지옥이다!"
, 사회는 인간을 타자적 존재로 생존하게 합니다. 제 생각인데,.. 미적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죠. 사회를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미적 죽음으로부터의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2006/03/15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