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디즘과 매저키즘이 하나의 실체로 보이거나 혹은 두 가지 상이한 본능이 하나의 메카니즘 안에 공존하면서 서로 전이되고 변형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새도-매저키즘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가설들이 있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가설을 세가지 범주 속에서 다룬다: 상반성, <경험의 동일성 43>, <변형 44>.
(1) 상반성 - 상반된 본능이나 충동이 동일한 인물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 그래서 고통의 유발로 쾌감을 느끼는 개인은 고통의 경험으로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디스트는 동시에 매저키스트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에는 상반적인 두 영역을 연결해 주는 만족스러운 고리를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와 고통을 경험하는 행위의 두 경우로부터 어떻게 유사하고 동일한 쾌감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자연스런 설명이 부족하다.
(2) 경험의 동일성 - 공격과 지배의 새디즘이 매저키즘적 고통을 경험한 후에만 다시 쾌락으로서의 새디즘이 가능하다는 가설. 이것은 프로이트가 새디즘을 두 부분으로 구분한 것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새디즘이며,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쾌락지향적인 새디즘이다. 그러나 새디즘의 이 두 영역은 서로 단절되어 있는 독립적인 경험이 아니라, <투사와 퇴행(projection and regression) 44>이라는 기제들을 통해 서로 연속성을 띠고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 연속성이 매저키즘이라는 상반된 경험으로써 유지된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새디스트가 고통을 통해 쾌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과거에 그가 체험한 고통과 그에 따른 쾌감간의 관계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43> 다시 말해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쾌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고통과 쾌감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나 연결고리 혹은 상관성을 경험해 보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쾌감을 느낀다는 것, 바로 매저키즘적 경험인 셈이다. 새디스트는 매저키즘을 본질적이든 혹은 부수적이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매저키즘적 경험은 새디즘이 단순한 폭력에서 고차원적 쾌감을 도출하는 단계로 승화하고 지양되기 위한 상관적 매개인 셈이다. 매저키즘은 여기서 새디즘의 전개과정에서 하나의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새디즘이 첫 번째 새디즘에서 두 번째 새디즘으로 변이된다고 보았다. 단순히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새디즘(첫 번째 새디즘)에서 쾌락을 추구하고 망상하는 새디즘(두 번째 새디즘)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받음으로써 쾌감을 느낀다는 매저키즘적 경험이 매개된다. 이런 식으로 프로이트의 논의에는 다음과 같은 연속성이 유지된다: <단순한 공격적 새디즘 43> ⇒ <자신에게로 역전된 새디즘 44> 즉 고통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경험 ⇒ <매저키즘적 경험 44> 즉 고통으로부터 쾌감을 경험 ⇒ <투사와 퇴행에 의한 쾌락지향적 새디즘 44> 즉 고통에서 쾌감을 경험하는 매저키즘을 새디즘의 피해자에게 제공하고 투사하면서 다시 새디즘으로 되돌아가는 퇴행적 연결고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투사와 퇴행이다. 이 기제들은 새디즘이 변이되는 전 과정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고통을 가하는 새디스트는 자신에게 고통을 투사하고 매저키즘을 경험하면서 다시 이 경험을 피해자에게 투사하고 자신은 새디즘으로 퇴행한다. 이러한 메카니즘의 연쇄과정 속에서 결국 새디즘의 피해자는 매저키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 과정을 운영하고 구현하는 새디스트로부터 피해자는 당연히 고통 속의 쾌락을 경험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며, 또한 새디스트는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똑같은 방식으로 쾌락의 대상을 감동시키고 있다고 상상 44>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새디스트의 피해자는 매저키스트인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앞서 논의했듯이 타당성이 없었다.
(3) 변형 - <목적과 대상에 따라 성 본능들이 서로 합치거나 변형된다는 가설 44>. 본능들의 기제로서 변형에 관한 프로이트의 논의는 혼동스럽다. 그가 본능들을 커다란 두 집단(Eros/Thanatos)으로 분류했을 때, 이 두 본능 군(群)의 요소들은 직접적으로 변형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소들의 직접적인 변형의 결과로서 서로 다른 본능의 구분이 완전히 모호해 지기 때문이다. 변형이란 직접적이고 유효적인 방식으로 발생하는 경우와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둘로 구분된다. 간접적 변형은 이분법적 체계 내에서 상반성이나 부정적인 매개를 통해서 발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형태의 변형이란 언제나 매개적 기능을 갖는 이분법의 다른 항을 요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실질적 변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외양적이고 형식적인 양적 변형만을 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본능들의 변형가능성이 직접적인 것으로 발생한다면, 프로이트의 구분은 모호한 것이 된다. 목적과 대상에 따라 반대성향의 본능으로 역전하거나 혹은 원래 자신의 본능으로 회귀하면서 성 본능들이 서로 합치되고 변형된다는 논의는 프로이트 자신이 구분한 본능들의 제한적 변형가능성에 모순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프로이트 자신의 전체적인 체계와는 모순되거나 불일치되는 논의이며, 스스로 자신의 일관성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본능들의 변형가능성을 이분법적 체계로 제한하고 있으며(에로스/타나토스), 이러한 제한적 변형가능성은 결국 직접적인 변형가능성이나 변형의 다양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사랑과 미움이라는 본능의 요소들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본능들(에로스/타나토스)에 속한다는 사실을 통해 서로 직접적인 변형이 이루어진다는 가설을 완전히 부인한다. 44> 프로이트가 방어기제들을 설명하면서 아이러니나 역설 등과 같이 반대적이고 상반적인 요소의 항을 요구하는 언어 체계들을 주로 이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투사, 반동형성 등. 따라서 그에게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차이는 외형적이고 양적인 차이이지 실질적인 유효적 차이가 될 수 없다. 직접적 변형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본질과 실체로부터 외형적이고 부정적인 매개를 통한 양적 변형만이 가능하다. 또한 이것은 변태성을 <고착과 퇴행 44>의 기제로 이해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일치된다. <고착과 퇴행의 핵심적 개념은 조푸르와(Geoffroy)의 기형학(발달의 정지와 퇴보)에서 유래되어 직계를 이룬다. 조푸르와의 관점은 변형에 의한 모든 진화를 배제한다. 44> 따라서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변태는 실질적인 변형으로부터 발생하는 진화론적 전개과정이 아니라, 이미 개인의 발달단계에서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한 지점으로 남아있는 시기인 것이다.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경우에는 고착의 형태로, 다시 이 단계로 되돌아갈 경우에는 퇴행의 형태로. 이런 의미에서 변태성은 생물학적 개인의 발달과정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변태가 되기(becoming) 보다는 단지 유아기의 변태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44> 그러므로 <단지 가능한 유형이나 형태의 계층들이 있을 뿐이며, 이 계층들 속에서 발달이 다소 초기의 단계에서 멈추어지거나 '퇴행'이 다소 심하게 나타날 뿐 45>이라고 말하는 조프루아의 개념과 <두 가지 유형의 본능들이 서로 복잡하게 결합하여 전체적인 어떤 형태들의 계층을 이루어내며, 개인들은 이 중 어느 한 계층에서 고착되거나 퇴행한다. 45>는 프로이트의 논의가 완전히 일치한다. 이러한 식으로 프로이트는 고착과 퇴행의 단계적 변화와 발달에 따라 개인을 설명하지만, 또한 변태성을 특징 짓는 다른 부분들에서, <진화와 직접적 변형 가능성들을 가진 다형적 체계를 인정하는 듯하다 - 그러나 또한 신경계와 문화적 구성체의 영역에서는 수용되기 힘들다고 간주한다. 45>
본능들의 복합-결합과 같은 새도-매저키즘적 종합의 원리에서는 이미 보았듯이 몇 가지 특징적인 메카니즘이 발견된다: 대립적이고 상반적인 두 요소들의 필연적 관계, 또한 이 두 요소들을 포함하는 보다 상위의 종합적 실체, 그래서 이러한 실체 내의 모든 요소들의 변형가능성의 제한. 이 특징들은 상반성과 종합 그리고 제한적 변형으로 요약된다. 더욱이 전체-종합의 메카니즘에는 동일성의 본질이 내재한다. 상반적이거나 반대적인 두 요소를 제시함으로써 전개되는 논의의 결과는 언제나 맨 처음 정립된 문제로 되돌아온다. 왜냐하면 두 요소들의 기원이 동일하기 때문이며, 두 번째 제시된 요소는 언제나 맨 처음 정립된 문제로부터 설정된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모순과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드라마가 작동하는데, 모순이든 통일이든 어떤 경우든지 동일성을 그 본질로 갖는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상반적이고 반대적인 두 요소를 포함하는 하나의 실체(새도-매저키즘)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고통이나 쾌감이라는 단일한 실체가 요구된다.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새도-매저키즘적 실체 또는 <고통-쾌감 콤플렉스>로 설명하는 것은 기원의 동일성을 상정하는 것이며, 기원의 동일성을 통해 전혀 다른 두 신경장애의 메카니즘은 공통적인 하나의 물질로부터 파생된 제한적인 변형의 부산물로 환원되는 것이다. <새도-매저키즘, 복합본능 … 등은 성적활동 유형의 특이성을 간과 … 주체의 사용가능한 모든 에너지가 그의 특정한 변태성을 위해 동원된다는 사실을 간과 …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는 완전히 자족적이며 개별적인 드라마를 연출 … 내적으로 외적으로 이 양자의 의사소통은 불가능 … 공통적인 리비도 물질이 여기저기 형태를 바꾸어 흘러 다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45> 공통적인 기원을 설정하는 분석은 언제나 개별적 대상들의 특수한 맥락을 놓치기 쉽다. 변형에 관한 논의들이 언제나 이러한 분석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경험은 동일하지 않으며 각자 경험의 주체에 적합한 특수한 개별적 메카니즘을 갖는다. 그러나 새도-매저키즘 논의에서는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경험을 서로 동일한 하나의 메카니즘으로 설명함으로써 이 둘의 경험은 동일한 것으로 중화된다. 왜냐하면 가학으로부터 나오는 쾌감과 고통을 통한 쾌감 두 경우 모두 동일한 주체로부터 나오는 동일한 경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주체가 경험하는 서로 다른 쾌감의 질은 단지 하나의 원리로 설명 가능한 상반적인 효과일 뿐이다. 그러나 모든 진화과정과 변형의 메카니즘을 하나의 원리나 술어로 설명 가능한 심층적이고 공통적인 하나의 실체나 물질을 전제하는 것은 추상적인 유추에 불과하다: <새디스트의 매저키즘적 성향이 매저키스트의 그것과 같지 않으며, 매저키스트의 새디즘적 성향이 또한 그렇다. 46>
새디스트나 매저키스트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 둘의 개별적 경험의 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새도-매저키즘적 진단은 두 개별적 경험을 하나의 명칭으로 양화(量化)시키는 경우이다. 질적으로 전혀 다른 두 신경장애를 하나의 술어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하나의 물질이나 실체가 요구되는 것이며, 연속적인 진화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상이한 요소들은 하나의 메카니즘과 원리 속으로 제한된다. 여기서 개별적 존재들의 질적 차이가 헐렁한 옷에 의해 덮혀지거나 강제적으로 재단된다. <두개의 다른 기관들이 서로 유사해도 반드시 그 사이에 진화론적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 상이한 요소들로 구성된 단일한 일련의 연속적 결과들을 연결시키면서 '진화론'에 빠져서는 안된다. …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같은 기원을 가지며 동시에 병존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유추에 근거할 뿐이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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