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5/05 트위터 (8)
  2. 2012/05/05 관계의 중독 (11)
  3. 2011/03/20 강요된 네트워크: 사회적 생산(혹은 노동)에 상응하는 미래의 사회적 소비 (10)
트윗의 묘미는 글쓰기나 글 읽기가 아니다. 애초부터 그 목적 자체가 글과는 무관해 보인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트윗을 한다. 영리하게도 회사는 사람들의 이 무언의 요구를 허용되는 글자 수를 제한함으로써 정당화 한 것처럼 보인다. 블로그와는 전혀 다른 목적과 형식의 소셜미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블로그와 달리 트윗은 순수관계를 지향한다. 교환이 아닌 순환의 형식으로, 팔로잉과 팔로워 수치의 반복되는 기하급수적 확산으로, 표현능력이 아닌 제청능력만으로도 앙가주망의 효과를 체험하며, 막연하지만 거대한 어떤 세력의 주체가 된 것 같은 환각이 형성된다. 이 환각이 트위터리안들의 활력을 지탱하는 질료이다.

Posted by huun

어찌되었든 살아가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물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은둔 속에서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라기 보다는 삶으로부터의 초월을 지향하는 것이다. 먹고 살려면 만나야 하고, 관계의 그물을 짜기 위해 두툼한 수첩을 준비해야 한다. 인터넷에는 살아가기 위해 부벼대는 관계의 몸부림이 즐비하다. 물리적 의미에서의 육체를 점점 잃어가는 이들은 다른 육체 속으로 기생하여 숙주들의 안에서 섹스를 하고, 울부짖으며, 사유를 한다. 공허와 무의미로 다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기기들을 부여잡고 파워-스위치를 줄을 모르며, 손과 눈을 뗄 줄을 모른다. 너저분함으로부터의 초월에 실패한 나, 아주 많이 화가 나 있던 나 역시 결국은 속으로 나와야 것이다. 기괴하게도, 관계로부터 고통 받지 않기 위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불나방처럼 다시금 관계속으로!

Posted by huun

대중 미디어는 거의 매일 소셜네트워크니 사이버스페이스니 해가며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의 접속관계에 대한 보도로 울부짖는다. 미국에서 온 트위터, 페이스북, . . .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 양상, 파급력, 기능, 효율을 과장해가며 소셜미디어 네트워크의 열광을 창조해낸다. 이 과장으로 공허한 미래-현대인이 창조된다. 소셜네트워크라고 하는 열광적 공허의 접속양태가 창출하게 될 많은 것들 중에, 그 중엔 물론 긍정적인 것도 있을 것이고 부정적인 것도 있겠지만, 최후의 승자는 무엇일까? 바로 접속단말기(또는 그 생산자)가 아닐까? 그리고 그에 부수적으로 기생하는 자질구레한 업자들. 화려하게 치장한 무대위의 모든 무희들이 최종적으로 지시하는, 이 과장의 한 가운데에서, 울부짖는 보도들의 스크립트와 동영상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우연을 각색하면서까지) 빠지지 않고 항상 등장하는 매체. 스마트폰 혹은 무슨 무슨 "탭", 무슨 무슨 "패드"로 불리는 미학적 기기들. 일찌기 산업을 토대로 성장했던 영화 제도와 마찬가지로(위대한 고다르가 <경멸Le Mepris>에서 그 역학을 잘 보여주었듯이), 앞으로 언론사의 기사와 보도에는 반드시 글을 쓴 해당 기자의 이름 뿐만 아니라 보도의 후원자(스폰서)--연예인을 뒤에서 놀아가며 보호해주는 사람도 스폰서라고 부른다--가 누구인지도 기록해야 한다는 조항을 입법화 했으면 좋겠다. 보도의 주체를 그 막연한 객관주의적 얼버무림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서.

스폰서: 화대를 대주는 쪽.
스폰시: 화대를 받으며, 스폰서에게 다른 가치를 주는 쪽. 쾌락을 주거나 선전을 해주는 쪽.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