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4/06 언어 속물 (9)
  2. 2010/11/19 속물 (9)
  3. 2009/01/10 어떤 아버지

아래의 구절은 한국의 영문학과에서 나온 한 학위논문의 구절이다. 우연히 접하게 된 구절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아무데서나 발췌한 구절이다. 그러니 발췌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는 없다. 논문들을 찾아서 읽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이러한 식의 논문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 구절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정치적 현실인지, 역사적 현실인지, 문화적 현실인지, . . .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머리 속을 채운다. 속물의 욕망을 포부로 들이마시는 한국인들은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잘 적응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삼으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이 고작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바다 건너로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되돌아오기 위해 그러한 포부를 꿈꾼다. 위에 보이는 언어 속물이 그 예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민족의 문화사 아니 한반도의 역사 전체는 어떤 역설을 형성한다. 주로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그것은 바로 언어에 있어 "단절의 연속"이라는 역설이 아닐까 싶다. 그 역설 속에서 한국인들은 지식과 사유와 감성과 기억 자체의 파편화된 분열을 경험한다. 이 분열을 역동이라고 불러야 할까?

Posted by huun

속물

note_fragmentary_aporism 2010/11/19 01:51

속물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부지런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속물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자고, 맡은바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일상을 채운다. 속물의 행동강령은 부지런이다. 방탕하거나, 게으르거나, 자신의 의무에 의구심이 강한 사람은 속물이 되기 어렵다. 한 사회에서 좋은 직업군이나 상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속물로 채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강령 속에 녹아들어 있는 뚜렷한 목표가 바로 그들이 현재 처해있는 사회적 위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속물의 가장 최악의 덕목 또한 이 부지런에 있다. 속물은 마주보고 서있는 앞사람 그리고 함께 앉아있는 옆사람에게 자신과 마찬가지의 목표의식과 부지런을 강요한다. 자신만이 힘들게 사는 것 같아 억울해서인지, 아니면 그러고 사는 것이 너무도 좋아 전도를 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열등한 영혼을 공유해서 분산시키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사실은 배가하지만), 어쨌든 부지런한 그들은 부지런을 강요한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가 말했듯이, 속물근성은 "행동을 자극해서 바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사회는 "마치 벼룩이 잔뜩 묻은 개처럼" XX 발광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상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헉슬리에 따르면, 예술속물 혹은 문화속물도 있으므로)의 개인사는 속물과의 투쟁사, 아니 희생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illiam Thackeray가 편집했던 잡지 <펀치>(Punch)의 1892년 어느 날 삽화에는 뿌리깊은 '상처'를 안고 '열등감'으로 살 수밖에 없는 속물의 내적본질을 잘 담은 한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삽화에서 한 신흥부르주아 여인은 딸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와 사귀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만한 사람들이 아니란다. 우리가 사귀어야 할 사람들은 오로지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뿐이란다!"

Posted by huun

그는 대화를 즐겼다. 대화는 언제나 그의 높이를 확인시켜주곤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쌓아놓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대화는 그러한 재산목록을 확인하고 세어보는 만국 박람회와도 같았다. 모두들 관객처럼 그의 앞에 모여 그가 자랑하는 전리품들을 구경했고, 그러한 것들을 소유하지 못했거나 소유하길 염원하는 그들은 찬사를 보냈다. 그는 흡족해했다. 그는 책을 꽤 읽는 편이었지만, 대부분은 그 박람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열된 목록, 이국적인 이름, 새로운 명칭들이 그의 입에서 쉼없이 암송되었고, 옆자리의 관객들은 그것에 의아해 했지만, 그의 취향으로볼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대상을 소유하고, 윤곽선을 분명하게 해 놓아야만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아무도 부른적이 없거나 이름이 없는 것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혼을 해야만이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던 알베르트처럼, 그는 모든 것과 결혼하고 싶어했다. 심지어 그는 음악조차도 다른 장식물들처럼 선반 위에 놓아두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터져나오는 음악은 견디질 못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그 점을 지적하자, 그는 마치 자랑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항상 음악한테 미안해!" 그는 언젠가는 그 소유물들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음을 느낄 것이다. 늙어가고 있는 그는, 아니 이미 많이 훌쩍 늙어버린 그는 그것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점점 허기가 지고, 뺨이 야위고, 추해진 몰골에 허리가 휘어, 더 이상 대상 조차 바라볼 수 없게 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 말이 많아졌다. 내뱉은 그 모든 단어들이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냥, 식사나 술자리에 앉으면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말이 많았다. 이상한 것은, 그 많은 소유물을 확인하는 절차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많아질수록 허기는 더 깊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가 늙어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와의 식사는 언제나 빨리 끝났다. 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깃국물 속의 고기가 쉽게 동이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고기에서 국물이 흘러나올때까지 기다릴 만큼 그와 우리는 느긋하지 못했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국물을 떠 먹는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윤곽선도 분명치 않고, 그 출처조차 분간할 수 없어 보이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 국물을 너무나도 싫어했던 사람이 바로 그 였으며, 그에게 찬사를 보내던 우리들 역시 감염이 되어, 어느새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액체 자체가 그에겐 일종의 파괴였으며 침략이었다. 그냥 두었더라면 국물이 되었을 고깃덩이를 얌체들처럼 빼가는 바람에, 더 이상 국그릇엔 육수가 없었다. 조미료 향내만 진동하는 김빠진 맹물만이 고여있을 뿐이었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