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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1 엘리베이터

내가 주로 생활하고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하나는 사방의 벽이 거울의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엘리베이터 1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해보라. 낯설고, 멋적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이 엘리베이터의 벽은 사방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면을 보면 그 사람의 정면이 보이고, 측면을 보면 그 사람의 측면이 보이고, 또 모서리 어느 부분을 보면 그의 뒤통수가 보이기도 한다.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나 역시 타인의 눈을 통해 보이게 된다. 이 타인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시선을 피해 이러 저리 눈을 돌려보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상대의 시선과 내 시선의 교차로 위에서 헤맬 뿐이다. 어린 학생들 중에는 이 강요스러운 상황에 어쩔줄을 몰라 노골적으로 심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문 앞에 바짝붙어 있다든가, 애써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 한다든가, 건방지게 딴청을 피운다든가, 핸드폰을 꺼내 구조의 전화를 걸려 한다든가, 여학생과 함께 단 둘이 갇히는 경우엔 아주 고역이다. . . 어쩌면 이 고약한 환경은 설계자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선을 회피해가며 서로를 지옥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교정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일부러 우리의 상황을 의식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강요된 환경이 우리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설계자가 그런 의도였다면, 소외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엘리베이터 앞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문이 열리려면 한 참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서로를 피해 다른 문 앞에 서거나, 아예 뒤로 돌아가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른 하나는 엘리베이터 문을 여닫는 버튼이다. 이것은 설계자가 아니라 학교 당국, 즉 엘리베이터 운영자와 관련이 있다. 문을 여는 버튼은 정상으로 작동하는 반면, 문을 닫는 버튼은 그 기능이 정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문은 닫히지 않는다. 해당 층에서 문이 열리고 나면 미리 기계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몇 분이 지나서야 문이 닫힌다. 이 닫힘 기능의 정지는 대단히 불편하다. 목적층이 되어 사람이 나간 후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기계의 작동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급한 경우엔 더더욱 조바심이 난다. 건물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들은 문이 닫힐 때까지 버튼을 줄창 누른다. 재밌는 것은 기능이 정지되어 작동이 안 되는 닫힘 버튼이 다른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있는 버튼보다도 더 낡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엇에 긁힌 자국도 있다. 서울 사람들이 얼마나 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인지(심지어 학생조차) 알만하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당국의 이 조처는 나름대로 합리적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문을 빨리 닫아버리면 여러가지 심리적 경제적 문제가 생긴다. 사람이 나가자 마자 문을 획 닫아버리면 나온 사람은 아주 불쾌해진다. 거부당한 느낌 같은 것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받았을 때, 크지는 않지만 작은 스트레스가 개인을 갉아먹는다. 쨉도 여러 번 맞으면 한 방보다 크다. 그러나 당국이 이렇게 세심하게 개인의 불쾌까지 고려해서 이런 조처를 내린 것은 아닐테고, 다른 분명한 이유는, 문을 보다 오래 열어두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기 때문에, 전기세 등 경제적 효율성이 올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생각해서,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그다지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이다. 더우기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에, 층에서 누가 나가도 서둘러 문을 닫거나, 문이 닫히기를 안달하지 않는다.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 밖을 바라보며 그냥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익숙해지다보니 이제는 어떤 점에서는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 1분 간의 시간이지만, 그 작은 틈 속에서, 막연하지만 인생의 뜻 깊은 어떤 순간을 갑자기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일어날 때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막연하지만 말이다.

p.s. 법의 세계는 이러한 막연한 희망조차 불허하는 것일까? 최근에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법원인지 검찰청인지를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현관문을 거대한 철제 구조물로 조성한 법대 건물의 엘리베이터에는 이 닫힘 버튼을 정지시켜 놓지 않았다. 따라서 이 건물 안에서는 마음대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닫을 수가 있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