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시회에 걸린 다양한 회화들 속에서 몇 가지 특징을 선별해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색조와 선, 운동감 없이 정지되어 있는 듯 한 대상들, 형상들의 단순함과 평면성,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아예 배제된 명암, 색채의 분명한 대조를 통한 강렬함과 섬세함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회화들 중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미키 스이잔(三木翠山, 1887-1961)의 “꽃의 여행[花乃旅]”(1939)이라는 작품이다(아래 각주1 참조). 그리고 이 작품은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일본 회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일본화들을 볼 때 공통적으로 갖는 느낌과 이미지를 이 그림이 단번에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여인을 감싸고 있는 공간과 그녀의 자태를 완전히 구분하기 위해 묘사된 굵고 검은 선. 그녀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신체 요소들(머리칼, 눈썹, 입술, 코, 목선, 시선, 귓불,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얼굴과 머리의 우아한 경계 . . .)과 장식들 그리고 옷 주름을 표현하기 위한 섬세한 필선. 운동감이 전혀 없는 형상. 화려한 색조에 담긴 단순함 그리고 명암의 부재에서 오는 평면성. 비현실적 구도와 제재.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흰색의 분명한 대조를 통한 강렬함. . . .
이러한 것들이 이 그림의 질료를 이루고 있으며, 이 질료가 발산하는 이미지가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키요에 풍의 미인화들을 이리 저리 찾아보았고, 그 작품들 속에서 유사한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통적인 이미지를 언어로 재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한 마디로 이 이미지를 이렇게 말해보자: 시체의 부패된 신체를 숨기기 위해 몸에 짙은 화장을 하여, 화가는 저 미인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내가 언어로 재현한 저 이미지는 일본적 감성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 요소들은 직접 말하기보다는 일본적 감성에 의해 언어로 재현된 다른 작품을 통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이쿠(俳句)이다. 예술적 독특함에 중독된 프랑스인들은 하이쿠를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는 사랑에 관한 한 저서에서 한편의 하이쿠를 인용하고 있다. 이 인용을 통해 그는 사랑의 감정과 그 슬픔의 관계를 하나의 묘한 형태의 사랑과 연결 짓고 있다(일본어로 된 하이쿠가 아니므로, 나는 여기서 영어로 인용해 보겠다).
The full moon this fall,
All night long I have paced
around the pond.(Barthes 97)
어느 가을. 보름달이 한껏 연못 속에 내려 앉아있다. 그 달이 저렇게 연못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온 밤 내내 연못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연못 주위를 서성이는 것뿐. 환한 달을 가슴속에 파묻고 내 손에 잡아보고 싶지만, 물가를 서성이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 애달픔. 아마도 바르뜨는 이 감정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애달픔이라고 말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래서 또한 다음과 같이 자신 스스로 하이쿠 한편을 지어 보인다.
This morning, the bay sparkling,
I stayed here, motionless,
Thinking of who is gone.(Barthes 97)
연인이 떠나고 난 후 처음으로 눈을 뜬 첫날 아침. 그/그녀가 배를 타고 지나가며 남긴 자취로 반짝거리는 바닷가. 나는 아무 동작도 없이 여기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본다. 가버린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허용된 구역의 끝자리를 서성이면서 밤새 혹은 온종일 말더듬이처럼 웅얼거린다. 이 옹알이의 반복은 마치 (마법의)주문이 그렇듯이 모든 에너지를 응축 또는 팽창시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너무나 많은 말을 해대는 반복. 그래서 바르뜨는 예술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글 보다 훨씬 거대하지만 동시에 글을 쓰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 . . 글 속에 이 모든 것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Barthes 98). 이때에 영혼은 불순해지고 이미지의 덩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온몸에 히스테리의 경련이 일기 시작하면, 나의 언어는 서서히 수다스럽고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영혼과 언어는 서로 채우거나 비우면서 시이소 놀이를 해댄다. 영혼이 수다스러워지면 나는 말이 없고, 내가 수다스러워지면 나의 영혼은 텅 비거나 침묵한다.
따라서 저 애달픔으로부터 비롯된 미학적 긴장은 우리의 능력을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과잉과 결핍의 충돌과 긴장은 우리로 하여금 초 감성이라는 영역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냉정하고도 가혹한 에너지의 응축의 결과가 바로 하이쿠에서 보게 되는 감성의 클라이맥스이다.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위한 주변의 모든 부수적 서사들을 배제해 버리고, 하이쿠는 그 자체가 하나의 클라이맥스가 되어 버린다. 마치 죽음으로써 자신의 아름다움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래서 우리가 저 17음절에서 보는 것은 체포된 순간, 즉 모든 우주의 에너지를 하나의 점(點)의 상태로 응축시켜버린 순수 이미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절정 속에 해소할 수 없는 역설이 있다. 감정의 과잉이 극한에 이른 너무나 커다란 영혼 때문에, 이제 예술가의 수다스러움은 점점 침묵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침묵은 우리 영혼의 강렬한 수다와 불순함을 품게 한다.
참고 문헌
Barthes, Roland. A Lover's Discourse: Fragments. english trans by Richard Howard. New York: Hill and Wang, 1999.
1) 이 작품은 우키요에(浮世繪)라고 하는 일본 특유의 스타일로 제작된 것이다. 우키요에는 일종의 일본식 풍속화인데, 16세기 후반부터 서민들의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物見遊山, 歌舞音曲 등을 다룬 초기 풍속화가 우키요에의 전신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작가나 감상 계급은 주로 귀족이나 무사계급이 주류를 이루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江戶(에도)幕府를 열고나서 사회적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전되어, 강호는 신개발지 혹은 신천지였기 때문에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로부터 강호의 서민들은 직접 그림을 제작하고 감상하는 미술의 주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서민 예술로서 우키요에가 발생한다. 우키요에는 주로 서민들의 현실적 생활(現世)을 소재로 다루었으며, 특히 향락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유럽과의 무역이 성행하면서, 일본 도자기를 포장한 종이에 그려진 우키요에를 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한 이미지에 매료되었으며, 인상주의 화가들이 이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미키 스이잔의 작품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우키요에라기보다는, 그것의 현대적 변형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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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님, hwp파일이라 제가 열면(저장해도) 글이 깨집니다. 다른 문서 형식으로도 올리시면 안되나요?
MS Word 같은 거...아니면 차라리 노트패드라도,,
읽을 수가 없으니 머리를 쥐어뜯고 싶음!
아.. 그렇군요 . . 역시 예상대로 속을 썩이네요..고쳐놓을께요^^
각주라든가 이미지를 편집하기가 좀 불편해서 한글파일로 했는데 . .한글 프로그램이 없으신거예요?
네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없습니다. ms word 만 있는데 hwp 파일은 깨져서 못 읽어요^^
글을 펼쳐놓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깨지니 더 궁금해 미치겠는거 있죠 ㅎㅎ
하이쿠와 우키요에를 한 번도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훈님의 글은 설득력이 대단합니다^^
감정이 극에 달하면 말을 잇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건만, 극적인 슬픔, 극적인 충격, 혹은
극적인 아름다움을 구구절절이 미사여구를 써서 풀어내면 원래의 팽팽한 긴장감이
파티 끝난 풍선에 바람 빠지듯 빠져버리는 감이 있다는 점... 충분히 수긍이 됩니다.
마치, 말을 잇지 못하는 것처럼 더듬 더듬 글 몇 자로 귀퉁이를 막아 놓은 하이쿠가 외려
극도로 팽창된 감정의 본래 모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담고 있는거구나..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네요^^
이 글을 읽은 후 제 카페(한겨레)에 가서 대문사진으로 올린 한국(구한말)의 미인도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옛 미인도가 다 그렇듯이 색조가 단순하지요. 단순하지만, 일본의 그 것처럼 강렬한 색의 대비가 없고
오히려, 배경색깔과 얼굴, 드러난 가슴, 치마의 색깔이 같은 계열의 색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 여인의 젖가슴이 드러난 걸 저는 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렸을 정도이지요.
원근감이 없이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치마의 풍성함과 잔주름이, 은근한 입체감과 생동감을 주더군요.
의도 했건 안했건 간에.. 물론 저만의 느낌입니다. 게다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지 않고 왼 손을 머리에 얹고 있는 여인의 자세도 일본의 흔한 미인도와는 (그래
봤자, 일본 식당에 걸린 그림이나 인터넷에서 본 것들이 전부지만) 구분이 되는 특성(?)으로도 보이네요
이마를 굳이 넓게 그리지 않는 일본의 미인도에 비해 얼굴의 삼분의 일이 이마로 배정된 것을 보면,
커다란 눈을 미인으로 치는 지금과는 달리 초승달처럼 작은 눈을 가진 걸로 묘사된 옛 미인들이지만
이마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른 것을 호상으로 보았나.. 추측도 해봅니다 ㅎㅎ
겨우 그림 한 장 가지고 비교를 하고,,게다가 전문 지식이라곤 돋보기를 대고 찾아도 없는 주제에
얼핏 겉보기만 가지고 나름, 얄팍한 비교감상을 해보았네요^^
훈님 글방이나 되니,,제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이런 헛소리도 지껄여 보지요 ㅎㅎ
링크해 두신 우키요에 인터넷 화랑을 둘러 보았습니다. 일본의 미인도,, 확실히 이마가 좁게 그려졌네요^^
그리고 이 그림을 함 보시길~
http://kr.blog.yahoo.com/pjs1329/61.html?p=1&pm=l&tc=13&tt=1160830661
역시. . 이마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 ^^
이마 하면 또 사과님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되는 부분이죠...^^
우리나라 옛날 여인들은 화장을 할 때에 대부분 이마를 넓히더라구요 . .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 . 그 이마의 모양에 따라 계급도 좀 달랐던 것 같아요 . . 또 고려시대, 조선초기, 말기가 이마를 넓히는 각도도 달랐던 것 같아요. 예전에 어디선 주워듣긴 했는데 . . 잘은 모르겠네요.
확실히 조선의 여인도하고, 일본 여인도는 다르네요 . . 아주 많이.
비교해서 연구한 논문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그리고, 한글프로그램이 없으면 아주 불편하시겠네요? 필요하세요?
그리구요, . . 사과님 글방을 가니까 . . 제가 글을 쓸수가 없네요. 쪽지도 보낼 수가 없고 . . 제가 글방을 접으면서, 회원탈퇴를 해버렸지 뭐예요 . . 로그인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 .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전 로그인을 안 하고 글방들을 다녀서, 문을 닫아놓으면 꼬리말을 포기하고 돌아온 기억이 몇 번 나네요 . .
그냥 대문을 활짝 열어 놓으세요 . . 저 같이 이상한 사람 들어와서 이상한 말 던지고 갈까봐 문을 닫아 놓으신 거예요? 그런 사람 별로 읎습니다. . 그냥 활짝 여세요. 난도질 해드릴께~ ^^
ㅎㅎㅎㅎㅎㅎㅎ 전, 이마 빼고나면 더 이상 그릴 말이 없다는 걸 훈님도 잘 아시네^^;
그래 그런지 한국의 미인도에 이마들이 시원하게 넓은 것이 너무나 맘에 들더라구요
ㅋㅋㅋ 눈이 안 큰 것도 흡족하고, (전 눈이 작은 건 아닌데 눈두덩이가 쓰잘데 없이 두툼해서 눈의 반이 가려지지요 ㅠ.ㅠ) 그런데 한 가지,,, 아뿔사~
한국의 미인도의 여인들,, 입술(입)이 정말 앙증맞게 작네요...이건 아닌데 정말 -.-
조선과 일본의 여인도 비교논문을 찾을 것도 없이 훈님이 직접 쓰세요. 회화전문가가
쓴 글보다 훨 나으리라 장담합니다 제가 ㅎㅎ
위에 알려드린 (조선 미인도)야후 블로그에 보시면 미인도가 꽤 여러 장 있으니
왠만큼 비교가 되실겁니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도 있고요..
한글프로그램 없어서 불편합니다. 읽지 못하는 파일이 많으니,, 보내주실래요?
그리고 한겨레 제 글방..<==이건 훈님 방명록에 쓸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