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7/28 존재의 시간, 푼크툼 (11)
  2. 2007/05/31 우정과 진실

예전에 나는 바르뜨(Roland Barthes)가 쓴 사진에 관한 몇 가지 단상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사진과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을 별로 알아내지 못했으므로 곧 그 책을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그러나 한참 지난 후에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겨났다: 사진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는 왜 사진의 이러저러한 지식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까? 아는 것이 없어서?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랬다면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책을 통해 사진을 하나의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미지에 의해 사물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방법으로 보는 것. 이는 결국 사진 뿐 아니라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며 동시에 그로부터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 전체를 다시 훑어보면서 사실은 특정한 주제에 향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바르뜨 역시 이 주제를 가장 흥미롭게 혹은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제는 의외로 단순한 구분에서부터 출발하는데, 그것은 사진이 발생시키는(혹은 우리가 발견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감정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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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눈을 감아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의 결점과 오류들을 이해해 준다. 친구는 내가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실상을 들추어내거나 따져 묻지 않는 자이다. 그는 나를 덮어주고, 망을 보아주고, 곁에서 시름과 고통의 위안이 되어주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우정은 사랑처럼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사랑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위안을 받기 위해 찾아가는 환상의 귀의처이다. 그리하여 우정은 우리를 고립되지 않은 존재, 고독감을 떨쳐버리게 해줄 존재, 대면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가장 무시무시한 상태와 맞닥뜨리지 않아도 세상 사는데 별 문제가 없음을 일깨워주는 존재, 우리를 사회적 존재이게끔 해준다. 그리하여 사회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섬이 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정은 우리의 고립과 외로움을 편안한 관용으로 덮어준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진실이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사이좋은 우정과 조화로운 통일로 만들어진 진실이 도대체 무슨 효력이 있단 말인가? 나의 무능력을 치유하고 위로해줄 친구의 그 칭찬 한마디는 나를 더욱더 화나게 할 뿐이다. 그의 위로가 실연의 고통을 잊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렇게 마련된 진실이라면 너무나 초라하고도 왜소하지 않은가? 들뢰즈에 따르면 우정의 철학이란 바로 협잡과 합의의 철학이다. 그것은 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애써서 그것을 외면하는 길임을 뜻한다. 진실은 가혹하지만 엄밀한 어떤 것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무엇도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나가야할 시간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베르그송이 직관의 비판능력이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이 귓가에 속삭이며, 우리를 아포리아(aporia)의 상태 속으로 밀어 넣는 무시무시한 시간이다. 실재는 난입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성을 강요하고, 지성의 잘못을 질책함으로써, 지성의 굳은 몸체들을 대기 속으로 흩뿌리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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