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Starbucks) 커피숍. 다방도 아니고, 카페도 아니고, 레스토랑도 아닌 곳. 90년대 혹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서구 특히 미국 소비문화의 전형.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는 대학가 주변, 셀프서비스, 아무렇게나(casual) 놓여져 산만하고 비좁은 의자와 테이블 혹은 미국식 자유, 어딘가 도시적인 취향의 인테리어, 오렌지색 실내등, 난삽해 보이면서도 뭔가 일관된 깔끔함, 냉소, 등등.
그러나 정작 영화나 TV에 나오는 미국인들을 간혹 보면 스타벅스 커피는 그러한 자유나 낭만과는 무관해 보인다. 아침 출근시간에 커다란 스타벅스 종이컵을 양떼들처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말이다.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의 영화 <버블>(Bubble)에서 아직은 기름 때가 덜 타 학생처럼 뽀얗게 생긴 풋나기 공장 노동자들이 점심 시간에 간이 테이블에 앉아 양손에 쥐고 먹는 햄버거와 콜라(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자세로 햄버거 한 입과 콜라 한 모금을 빨대로 빨지만, 식사라기 보다는 주로 별미 혹은 흥겨운 간식으로 먹는)처럼 말이다. 미국식 자유는 오히려 한국의 대학가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주목할 것은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와 앉아 공부를 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숙제를 하고, 작업을 하고, 필기를 한다. 책을 읽을 때, 도서관이나 공부방 보다는 지하철이 더 편할 때가 있듯이, 스타벅스에는 현대인의 임기응변과 냉소가 짙게 배어있다. 젊은이들은 거기에 익숙해 있다.
외대(한국외국어대학) 앞 스타벅스 2층.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왼쪽 옆으로 돌아 열 발자국 정도를 걸어간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그 사이에 놓여진 테이블 두 서너 개를 지나간다. 한 백인 청년과 한국인 중년 여성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중이다. 청년은 붉은 혈색이 도는 피부에 갈색 구렛나루를 하고 있었고, 여자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다. 그녀는 화장실이 마주 보이는 방향으로 앉아 있고, 백인 청년은 계단 쪽 방향으로 앉아 있다. 화장실에 가는 동안 그 백인이 정면으로 보인다. 여자는 느린 속도의 영어로 더듬거리며 무슨 말을 하고 있었고, 남자는 무릎 위에 공책을 올려놓고 고개를 숙여 붉은 펜으로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토론? 설교? 꾸지람? 부탁? 구걸? 아니면 이것저것.
화장실에서 나와 청년의 뒤쪽으로 걸을 때 그의 노트가 보였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뭔가를 적고 있었지만, 여자는 말이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 멋쩍은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걸음을 늦추어 그의 노트를 잠깐 본다. 노트에는 그녀의 말을 옮겨 적은 흔적도, 정리를 한 것도, 그렇다고 간단한 메모를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거기에 적힌 것들은 필기라고도 할 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노트 여기저기에 강박적으로 붉은색을 칠해가며 낙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도 그렸다가, 글씨도 썼다가, 그런 것들을 남김없이 지워버린 파선들이 신경질적으로 삐죽삐죽 거렸다. 그녀는 다시 말을 하려는 듯, "Frankly speaking, yesterday, I go to . . ." 하며 우물쭈물 거리지만, 그는 여전히 그러고 있다. 문법 탓이었는지, 따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무례함에 불쾌해서였는지, 그는 계속해서 그 요란한 붉은 펜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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