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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19 베르그송(Henri Bergson): 예술과 현실 (1)

우리는 매 순간 현실의 다양성에 직면한다. 가령, 아무데에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보라. 그 안에 찍힌 현실의 다양성에 놀라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그 아래에 강아지 한 마리도. 강아지는 보도 블럭 위에 흩어져있는 수 많은 서로 다른 낙엽들을 밟아가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줄지어 있으며, 바람 때문인지 가지들이 한 곳으로 쏠려 있다. 나뭇잎의 색을 보니 가을이다. 청명하지만 싸늘해 보이는 날씨이다. 그 두 사람은 대화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열심이 말을 하고, 한 사람은 화가 나 있는 듯, . . . 이 사물들 뿐만 아니라 그 사물들에 깃든 감정들, 정서들, 힘, 특질, . . . 한이 없다.


그 사진 안에는 무하하게 많은 존재들이 들어가 있으며, 그것들을 셈하려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은 너무나 다양해서, 그 어떤 것도 똑같은 것이 없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한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그 다양한 현실 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을 선택하여 사물들을 지각한다. 그 두 사람과 강아지 그리고 그 주변에 펼쳐진 무수한 존재들은 엄연히 내 앞에 있는 것이지만, 나 자신과 무관하다면 나는 그들을 알 수가 없으며 알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저들의 외형만을 알 뿐이다. 우리의 지각과 그 지각기능이 만들어 놓은 지식이란, 다양한 현실 중에서 어떤 특정 부분, 그것도 나를 위해 필요하다고 가정된 잘려진 조각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팽개쳐 버린다. 우리는 현실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삶이 요구하는, 그리고 신체의 한계가 요구하는 고정된 관점으로 변형된 일부만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비극이다. 무식하고 편협하게도 우리는 무한하게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 삶 그 자체를 자의적으로 잘라서 박제시켜 놓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 삶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오해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지각 능력, 감각 능력, 오성 능력, 이성 능력, . . . 이들을 보다 많은 것으로, 보다 높은 것으로, 보다 탁월한 것으로 확장시켜야만 한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 보다도 더 많은 실재를 지각하고 느끼도록 노력하고 훈련해야만 한다. 그 전문가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삶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의 놀라운 지각능력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예술가들만큼 현실적으로 중요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역설처럼 다가온다: 예술가들은 삶으로부터 초연해지면서, 비로소 삶과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이 문제에 대해 짧지만 매우 아름다운 구절들로 표현하고 있다.

". . . 그러나 우리의 실제적 관심이 그것을 옆으로 치워놓는다. . . . 현재의 생활을 유용하게 조명하고 완성시키는 부분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 . . 이러한 선택을 유발시키는 데 한 몫을 하는 것이 두뇌이다. 두뇌는 유용한 기억을 현실화시키고 쓸모없는 기억들은 의식의 보다 낮은 층 속에 간직한다. 지각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행위의 보조수단인 지각은 실재 전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을 분리시켜낸다. 지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각은 미리 분류하고 미리 명칭을 붙인다. 우리는 거의 대상을 보지 않는다. 단지 그 대상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가를 알면 족하다. 그러나 때때로 다행스럽게도 그 감각과 의식이 생활과 보다 덜 밀착해 있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자연은 그들의 지각기능을 그들의 행위 기능에 덧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사물을 볼 때, 그 사물 자체로 보며 자신들을 통해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행위를 목적으로 지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각하기 위해 지각한다―다른 목적은 없다. 오직 즐거움을 위해서다. 그들 자신의 어떤 측면을 통해서, 즉 의식을 통해서건 아니면 감각을 통해서건 그들은 초연히 태어난다. 그 초탈이 어떤 감각의 초탈인가 아니면 의식의 초탈인가에 따라, 그들은 각각 화가가 되고 조각가가 되며, 음악가가 되고 시인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 예술에서 보는 것은 좀더 직접적인 실재의 상(像)이다. 그리고 예술가가 더 많은 수의 사물을 보는 이유도 그가 자기의 지각을 이용하는 데 관심을 보다 덜 갖기 때문이다."(앙리 베르그송, 『사유와 운동』, 문예출판사, 2001. pp. 165-167)

<문예 노트>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