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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7 애도문: 젊음의 살해 (11)

내가 쓴 글을 칭찬해주시고 직접 추천까지 해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내겐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당시로서는 학업을 지속하는데 많은 동기를 주신 분이다. 지금은 은퇴를 하시어, 모 신문에서 종종 칼럼을 통해서만 뵐 수가 있을 뿐, 직접적으로 뵙기는 쉽지 않은 분이다. 대내외적 지명도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지성의 폭과 깊이, 그리고 흐트러짐 없어 보이는 인격 때문에,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학생들의 노트에 그대로 옮겨졌다. 그가 개설한 수업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작은 식사 모임에까지 가고 싶어하는 이도 있었다. 그의 견해는 우리의 부산스러운 판단력에 일종의 좌표 같은 것이었다.

그분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분명히 알게 된 일화가 있다. 우리는 가끔씩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특정 정치가들에 대한 그분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그 분은 정치의 의미에 대해, 삶과 정치에 대해, 현역 정치가들에 대해, 혹은 옛 세대의 정치가들에 대해 가끔씩 논평을 하곤 했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정치가가 궁금했다. 당시로서는 예상치도 못하게 대통령이 되어 있던 터였고, 지금 기억으로, 검찰과의 불화 때문에 검사들과의 토론이다 뭐다 해가며 미디어가 시끄럽던 때였다. 그 분은 물론 권위주의나 파쇼정치를 반대했지만, 흔히 중도라는 이름으로 자신도 (알게)모르게 보수주의적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중도란 속물의 혹은 미안한 마음의 말장난일 뿐이다), 노무현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강도가 쎘다. 단어선택이나 어조는 점잖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낯설어하는지, 얼마나 신뢰하지 않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유는 많았다. 그는 대체로 노무현이 상징적으로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 자유, 특권 없는 평등, 권력타도, 불의에의 비타협, . . . 이러한 구호들이 노무현의 발언에 자주 남발이 되었고, 그는 이를 구체적이지 않은 상징들의 결합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깊은 얘기를 오랫동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마디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눈에는 노무현의 정치적 발언, 행보, 판단, 타협하는 방식, 열정, . . .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정치적 쇼맨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노인인 그가 볼 때(그는 정말로 노인이었다!), 노무현은 치기 어린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고 드러내는 그 가시적인 열정이 그로서는 지속력도 없고 의미가 덜한 외침일 뿐이라고 말이다. 길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그 견해는 그 동안 내가 그 분께 존경심을 가지면서도 왠지 모르게 한편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던 뭔가를 폭로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돌이켜보건대, 그 깊고도 탁월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항상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아니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듯 모를 듯 믿음을 감추고 싶어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혹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아니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내부에 깊이 들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거나. 그는 믿음조차 심미적 형식을 갖춘 하나의 윤리이기를 바랬던 것 같은 의구심이 든다. 젊은 청년의 열정을 무모함에 기반한 서툰 낭만주의로 보고 싶어 했거나, 아니 그 열정이 사악한 제스처일 수도 있다고 의심한 것은 아닌지. 불의의 위험에 몸을 내던지는 행위를 믿지 않거나, 아니 그 전에 우선 팔짱을 끼고는 불의가 무엇인지, 열정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믿는 아름다운 선비이자 우아한 햄릿처럼. 그는 구체적인 인식과 판단을 주장했지만,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것이 어디선가 주어지는 것으로 본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그것이 명확한 경험적 형식의 사물로 출현하기를 기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그와의 대화는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질문을 나로 하여금 항상 품게 했다: "춤을 추시겠다는 겁니까? 말겠다는 겁니까?" 아름다움에 대한 일본인들의 놀라운 열광과 탁월한 심미안을 접할 때, 감탄의 배후에서 간혹 느껴지는 허기가 혹시 이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는지. 믿음이라고 불러야 할지 열정이라고 불러야 할지 욕망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불신에 사로잡혀 근간을 잃은 냉소적 지성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그러한 지성이 할 수 있는 일이 결국은 이미 만들어진 질서 위에서 근엄하면서도 소심한 권위를 치열하게 지키는 것 외에 그 무슨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우러러보았던 것은 다름아닌 깔끔하게 살균되어 완벽하게 정리된, 냉랭한 몇 권의 책 뿐이었다.

르네상스 플랑드르 화가인 브뤼겔(Pieter Brughel the Elder)의 대단히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제목은 <The Procession to Calvary>(1564)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은 십자가 처형을 위해 예수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골고다 언덕 중턱에서 일련의 군대가 그의 고난의 길에 채근질을 하며 동행하고 있고, 저 위쪽으로는 시커먼 까마귀와 검은 먹구름이 자욱한 처형지가 모여든 인파로 인해 둥근 원 모양으로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인류에게 있어 가장 비극적이고 슬픈 사건으로 알려진 기원적 순간의 현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바램이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슬픔의 현장 주변에는 시장판 혹은 난장판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슬픔과 탄식에 빠진 마리아와 몇 몇 신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시비가 붙었는지 서로 싸우고 있는 패거리들, 모처럼 생긴 구경거리에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철모르는 아이들과 강아지들, 언덕 여기저기에서는 말 타기 시합, 남의 보따리를 훔쳐 달아나는 도둑, 공놀이, 왁자지껄한 구경꾼들, 풀 죽어 있는 광대,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땅을 바라보는 노인, . . . 이 광경에서는 도무지 비극적 슬픔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무지막지하게 모든 것을 휩쓸어가며 이행해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단지 한 조그만 동네에서 벌어졌던 스캔들 혹은 구경거리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희생과 인류의 구원이라고 하는 기독교적 열정에 도리어 찬물을 끼얹어 조롱하듯, 십자가 희생이라는 거대비극은 중심 테마가 되지 못하고 주변부의 일개 소요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브뤼겔의 이 그림에는 한 열정이 현실의 삶에서 어떠한 위상을 갖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인류를 구원하겠다, 인간의 죄를 희생으로 상쇄하겠다고 하는 이 종교적 열정. 그러나 무지막지한 현실의 "다양성"은 이 위대한 열정이 실은 세상 모든 것을 대변해 줄 수 없다고 찬물을 끼얹는다. 언덕 끝까지 한 발 한 발 걸어가며 느껴지는 땅의 굴곡처럼, 세상은 너무나 무겁고 두터운 중층 지대로 축적되어 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철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이상한 취향, 별난 성격, 전혀 다른 본성의 소유자들이 너무 많다, 따라서 한 두 마디의 혈서와 다짐 혹은 목청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을 뿐더러, 저 산만한 세상을 단숨에 집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어떤 점에서 그 야심과 기획은 망상이고 오만일 수 있으며, 한 마디로 말해,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이다. 혹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죄를 갚기 위해 저렇게 피를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가? 지쳐 쓰러진 저 열정에 물 한잔 아니 고개를 좀 돌려 관심을 줄 수는 없는가? 완전히 혼자가 된 인간을 생각해 보았는가? 어떻게 당신들은 그리도 철이 없는가? 그가 죽고 나서야 후회하며 우상을 섬기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당나귀들인가? 라고 말이다.

브뤼겔이 이 그림에서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구원에의 열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철없는 세상을 조롱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죄 많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자기확신에 사로잡힌 열정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는지는 꼬집어내기 어렵다.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모두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세상은 하나의 목소리로 대변될 수 없으며, 브뤼겔의 그림에는 단숨에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의 다중성이 있다. 거기서 한 두 명의 가멸찬 열정이 해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젊지만 얼마나 아마추어적이고, 뜨겁지만 얼마나 무모한가? 어떤 점에서 그 위대한 정신과는 반대편에 서서 세상을 삼켜버리려는 정치적 음모와 파시즘이 그러한 열정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니었는가? 하늘을 보라! 당신의 바램과는 달리 임박한 처형 위에는 두렵고 슬픈 먹구름만이 드리워져 있지는 않다. 그 뒤에는 따사로운 햇살의 푸른 하늘이 있고, 또 그 옆에는 짙게 드리운 뭉게구름이 시야를 가리고, 하늘 지평선 저 끝으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와 집들과 초목이 현기증 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열정과 계시가 우리를 대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불행이다. 우리는 이미 미디어의 의식으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고, 누군가의 눈이 되어 우리의 창을 열 수 밖에 없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내내, 그리고 그가 자살한 오늘까지, 그를 생각하면 항상 브뤼겔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가 십자가를 졌다는 말이 아니라(비슷한 용어를 써서 동일한 열광으로 오해 하지는 말자), 한 열정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는 저 그림에서처럼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이 배어있다는 말이다. 열정이 그의 생각처럼 그렇게 잘 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뜨거운 견해가 수많은 소요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토록 원했던 민주주의란 바로 그 자신의 열정이 단숨에 쉽게 먹히는 것을 방해하는 두터운 다중성에 있음을, 아마도 이것이 정권 말엽에 그가 깨달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는 물론 인류를 구하겠다는 망상은 없었다. 그의 열정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었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의 열정이 좌파의 특정 이론이나 당정 차원의 노선, 혹은 집단적 형태의 정치체로 현실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것이 정치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직화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를 과소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의 의지와 열정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좌파의 과학적이고 정교한 이론을 잘 알았는지는 따져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81년 부림사건 이후 노동운동, 6월 항쟁 등 좌파적 경향이 본격화 되어갔다. 그럼에도 좌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은 대단히 의아스러운 일이며, 어쩌면 이것이 한국 좌파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의 열정이란 조직적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순수한 것, 비유컨대 때묻지 않은 한 시골청년이 우연히 보게 된 세상의 부당함에 대한 자발적 분노와 패기 같은 것이었다(그렇기에 그 지속력이 경이롭다). 그에게서 풍기는 아마추어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청년의 열정에 기인하는 것이지, 흔히 말하듯이 전적으로 능력의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혹은 사회물을 먹으면서 사그러들기 쉬운 그 분노와 패기는, 다행히도 그가 법조계에 그리고 이어 정계에 진출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정치적으로 현실화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정치가 야합이나 협잡 음모 혹은 비굴한 타협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는 품위와 위엄을 포기한 그러한 악착스러움이 없이도 성공적인 정치와 삶이 가능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아니 진정한 정치와 삶 그 자체가 바로 그러한 것들을 배제하는 과정임을 말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정치는 의로움(義)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도덕성이란 그 결과 혹은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그의 죽음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이유는, 반드시 한번은 청년이었을 우리 모두가 가졌던 그 무엇, 그러나 뒤틀린 삶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굴복하고 비굴해질 수 밖에 없어서 이미 너무 멀리 떠나와 버린 그 무엇,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부당함에 직면할 때 강렬히 떠올리지만 아쉽게도 침묵하고 있었던 뜨거운 그 무엇을, 이제는 그 마저도 완전히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청년이었던 우리 모두는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비통하다.

참여정부는 기업이나 언론을 막론하고 특권을 가진 소수와의 싸움, 즉 그들의 부당한 힘과 이익을 약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점철된 시기였다(성패여부를 떠나서). 따라서 어떤 점에서, 노무현은 상징적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상징과 투쟁을 한 것이었다. 왜냐면 상징을 만들고, 상징을 유포하고, 상징을 은폐하는 쪽은 항상 그 특권소수였기 때문이다. 특권소수는 자신들의 이익이 커지지 않도록 훼방을 놓는 그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모르긴 몰라도 노무현 정권이 계속되었다면 밥그릇에 재를 뿌려대는 그를 능히 암살까지 음모했을 만큼 그들의 증오심은 컸다. 이 기간 동안 특권층은 자신의 이익에 닥칠지 모를 심각한 손해가 생존에의 위협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들의 싸움은 일종의 생존투쟁 같은 성격을 취했고, 그 만큼 대립은 악랄한 형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환으로, 그들은 그의 품위를 훼손시키고 싶어했다. 말투라든가 출신이라든가 심지어는 두 부부의 학력까지 운운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천한 근성을 드러내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도덕과 탐욕에 대한 그의 혐오에 찬 비난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고, 똑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되돌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 아무리 잘난척하는 노무현도 결국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일개 탐욕의 모리배일 뿐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천박한 루머를 퍼뜨려가며 악인의 소설을 쓰고 증거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정치라는 것이 원래가 의롭지 않은 것, 탐욕에 기반한 것, 다들 그렇게 하는 부당함의 질서 자체라고 만인에게 설파하고 싶어했다. 결국 우리는 정치가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그 만큼 우리가 보고 싶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노무현에게서 찾고 싶어 했다. 자신들이 만든 루머를 스스로 믿고 있었던 특권층은 노무현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을 믿지 않았으며 의아해했다(탄핵이 좋은 예이다). 그건 그의 권모술수와 쇼맨십이 먹힌 결과라고 생각했다. 어떤 측면에서 그들은 도덕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리낌없이 내뱉는 그의 당당함(그들은 오만이라고 불렀던)에 질투심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유럽의 정치가들처럼 마치 스포츠 게임의 한 역할로서 다시 언제든지 화해가 가능한 공(公)적인 상대로 그를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죽일지 모를 적으로, 증오를 품은 사적인 원수로 간주했다. 정치가 당사자들의 이익관계를 대변해주는 활동이 될 때, 다시 말해 정치가가 이익관계의 당사자가 될 때, 정치는 사정없이 악랄해진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가 아닌 생존 전쟁을 벌였던 특권소수는 결국 그 악착같음으로 인해, 그리고 칼을 쥔 몇 몇 심복들의 무의미한 오바로 인해, 그의 죽음을 이루어냈고 일견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특권소수의 승리는 그들 자체의 힘보다는 많은 조력자들의 힘이 컸다. 그들은 수적으로는 소수였지만, 그 힘은 다수였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이미 그들의 조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제모델도, 잘사는 나라의 뚜렷한 모델도 없이, 그 특권층을 선망하고, 그들이 선호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들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강남에 살고 싶어했다. 개미든 벌레든 아니면 단순 은행고객이든, 우리는 주주가 되어 그들처럼 대박의 신화를 믿었고, 치고 빠질 기회 즉 스캔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양복을 어색하게 걸친 채 흉내 내며 뻐기고 싶어했다. 이를 부추긴 또 다른 조력자(아니 그 주체)는 바로 언론 미디어였다. 그들 역시 경제를 제1가치로 내걸고(경제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전국민적 캠페인까지 기획하여, 모든 이의 뇌리 속에 경제, 돈, 부자, . . 이러한 특권층의 강박을 공유하게 했다. 마치 그들의 강박이 아니면 경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굶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그들의 말과, 인생관, 생활습관은 책, 잡지, 미디어에 출판 방송되어 귀감처럼 다루어졌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든 이의 행동모델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콤플렉스를 형성하면서 우리를 설득했다. 현재의 정치 경제 권력은 이 콤플렉스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미디어의 주체가 이미 그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눈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창을 열었던 것이다. 이 창을 통해 본 우리의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조차 실패한 부자였고, 집값의 하락을 사형선고로 받아들인 집 없는 집주인들, 즉 잠재적 강남인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노무현에 대한 증오까지 흉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무현이 특권소수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은, 그가 특권소수를 일부 계층이나 일부 지역으로 혼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는 국민 전체였는데도 말이다.

결국 특권소수와 최근의 검찰이 창조한 것은 무엇일까? 반추동물의 되새김질처럼 반복적으로 파고든 집요한 조사로 결국 그들이 창조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절망과 허무와 무기력이다. 젊음의 살해! 그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들은 우리가 정치가들로부터 보고 싶어했던 어떤 것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 해도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믿는 냉소적 현실주의를 행동으로 증명했다. 아마추어리즘이든 무모함이든 서툰 낭만주의이든, 청년기에나 어렴풋이 품고 있다가 상실해버리고 마는 것으로 간주했던 그것이, 그래도 혹시나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속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기 나름이 아닐까? 라고 망설이고 있는데, "그딴 것은 존재하지 않아!"라고 쏘아붙이며, 경험은 많지만 한 없이 미루고만 있는 쇠잔해진 한 인정머리 없는 노인의 일축처럼. 그들은 한국인에게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망쳐놓았다. 정권을 창출한 것도 아니었고, 정치인의 부패를 막은 것도 아니었고, 정의를 수호하거나 도덕성을 지키거나 부도덕을 고발한 것도 아니었다. 위협을 느낀 생존을 위한 투쟁도 아니었다. 손에 든 칼이 진짜로 잘 드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니면 뭔가를 해낼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법 절차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 이전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장하게도 또 한번 불신과 냉소를 창조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힘이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고, 정말이지 지겨워진다.

누군가가 죽자마자 모든 대결과 명분들은 철회된다. 마치 한쪽의 죽음이 대결의 고지였다는 듯이, 명분이 마치 살아있는 동안에만 유효한 생물체인 것처럼, 도덕성이나 정의가 마치 싸움의 무기였던 것처럼, 그가 죽고 싸움이 끝나자 심장의 멈춤과 함께 명분도 매장되어 버린다. 머리를 숙이고, 애도를 표하고, 증오의 감정을 풀고, 모든 악착스러움을 접은 평화로운 상태이다. 그러나 죽음 즉 침묵 앞에서는 근본적인 무언가가 드러난다.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 동안 고귀하다고 쥐고 있던 가치들을 떨구고, 잠시겠지만 모든 합리주의적 믿음을 철회하며, 잠시 서서 하늘을 보는 순간 잊고 있던 무언가를 깨닫는다. 우리는 젊음을 잃었다!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정치? 약자를 위하겠다는 정치? 정규직 노동자를 만들겠다는 정치? 우주를 구원할 이론으로 중무장한 정치? 정치는 약속이 아니다. 장황한 약속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며 냉랭하고도 까칠한 능력을 앞세우는 정치와는 본성이 다른,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주는, 정치 이전의 정치를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정치가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것을 육화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김구 운운하며 오버하지 말자!).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것은 지성이 아니다. 게으르고 늙어빠진 소심한 지성은 항상 처져있지 않은가? 돈 버는 수완도 역시 될 수 없다. 돈은 우리가 버는 것이지 대통령이 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들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힘을 쫙 빠지게 하고, 무엇보다도 지겹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젊음을 육화한 정치가를 만날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우리조차 덩달아 젊어져 그의 무모함마저 믿고 밖으로 나가게 될까? 아니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한 건가?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