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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3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에 관한 노트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에 관한 노트(주1)



개요

이 논문은 문화연구에서 비판적 초국주의(critical transnationalist)관점을 현 '호주'의 지엽적인 문화와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전개하고자 한다. 비판적 초국주의는, 국제관계들 속에서 호주의 위상이라는 지배적인 담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소위 'push into Asia'라는 이슈들과 아울러, 최근 호주 민족국가의 지리 경제적, 지정학적 관심사들을 다룬다. 특히, 이 논문이 목표하는 것은 '아시아'와 '서구'간의 이분법적 분리를 탈구조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분리는 호주의 '아시아 화'라는 공식적 담론 속에서도 여전히 구성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세계는 상호 연결되며 의존하는, 그러나 또한 변별적 근대성을 가지는 집합체로 이해되는 것이 필요하다. 식민지 팽창을 통해 보편화되고 있는 서구의 근대성 기획이 성공하면서도 패배하고 있음을 동시에 암시하는 근대성 말이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아시아'와 '호주'는 더 이상 절대적 이분법의 대립적 항들로 나타나지 않으며, 또한 유럽의 식민지/근대화 기획의 역사적 산물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 논문은 따라서 공식적 국제질서뿐 아니라 문화연구의 측면에서, 호주의 특권적 위치를 비판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는 민족국가의 구심성을 근대적  세계체제 내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호주 민족국가의 위상은 초국적 틀 속에 놓여진다.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유동적이며 역동적인 힘들 속에서 강조되는, 호주의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역할에 기인한다. 이 힘들은 바로 최근 '호주'와 '아시아'의 대립적 친선을 구성하는 힘들이다. 그러나, 이 친선―희망하면서도 이론(異論)이 제기되는― 은 분명 그에 상응하는 맥락을 수반해야 한다. 즉 백인 정착 식민지로서의 '호주'와 그것과는 다른 '아시아' 둘 모두가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르게 갈라진 (탈)식민지라는 역사적 사태들의 배경 속으로, 이들을 포함시키거나 혹은 부정하는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 초국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연구들과 탈 식민주의 이론간의 교차지점들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 핵심용어 *

문화연구; 아시아; 호주; 탈 식민주의(postcolonialism); 민족(nation)/민족주의(nationalism); (전)지구화(globalization)


최근 유행하는 '문화연구'에 대한 최근의 한 논문에서, Fredric Jameson은 '공간적 차원의 문화연구'의 중요성이 필연적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관심은 ―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이론과 문화적 실천의 공간적 결정에 대한 관심 ― 문화연구가, 그 실무자들에 의해 점점 국제적 기획의 일환으로 인지되고 경험되고 있는 지금, 매우 절박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문화연구의 이러한 국제화에 대해 초국적 문화연구는 총체적인 의문들에 봉착하게된다: 즉, 문화 연구를 통해 어떠한 세계적 질서가 구성될 것인가? 문화연구가 추구하는 세계는 어떠한 종류의 공간인가? 그리고 그것은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논문이 시도하려는 것은 문화연구의 비판적 초국주의적 관점을 위한 하나의 지형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결코 공간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만들어 질 수는 없다. 실제로, 우리의 주요 논지의 하나는 비판적 초국주의가 언제나 특수한 공간적/문화적 맥락으로부터 분명해 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정치적 특수성, 필연성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단정적이고 제압적인 또 다른 형태의 초국주의의 재생산을 피할 수 있다. 호주에서 이 논문을 쓰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비판적 초국주의 관점을 전개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관점으로부터 비로소 특수한 역사적 국면을 맞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이 나라의 위치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 생산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 예증이나 표본을 통해 이루어 질 것이며, 이 논문의 문맥 속에서는 부득이 잠정적이고 도식적으로 남게될 것이다 ― 우리는 비판적 초국주의적 실천이 어떻게 문화연구에서 도출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주2)

호주의 문화적 위치를, 호주의 관점에서, 초국적 틀로 이론화하는 작업은 먼저 지리적 특수성과 공간적 결집을 이루는 민족국가로서의 호주와, 다양하면서 때로는 양립 불가능한 담론영역의 무제한 확산에 의해 절합하는 담론적 지명으로서의 '호주'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정체되지 않으며, 변화와 논쟁의 주요 테마를 이룬다. 다시 말해, 거기에는 '호주'의 묘사를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호주라는 민족국가와 등가성을 지닌, '호주'라는 지명은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항상 능동적으로 구성되며 또한 재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로서 '호주'의 구성은 민족국가 호주의 행정정책들에 대한 지원과 비판에 유용한데, 필연적으로 이것은 '호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기반에 역행하는 일련의 차이들과 관련 된어 일어난다. 이 차이들은 국가의 (상징적)경계들을 넘어선 초국적 영역에 위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두 가지 관심영역이 국내의 지적논쟁들을 불러일으키며, '호주'가 초국적 틀 속에 담론으로 위치해 있는 뚜렷한 두 가지 행로를 반영하고 있다. 첫 번째로, 최근 공공담론 내에서 끊임없는 요청들이 있다. 이 요구들은 주로 정계, 그리고 재계인사들에 의해 제기되는데, 호주가 '아시아의 일부'가 되거나 혹은 그렇게 인식하(되)도록 하는 요구이다. 두 번째로, 이것은 때에 따라 첫 번째와 뚜렷한 대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호주의 역사적 뿌리를 대영제국의 정착 식민지로 여전히 보는 관점이다. 호주의 문화연구에서 이 같은 관심은 '탈 식민성'에 대한 비판적 안목으로 표현되며, 호주를 '탈 식민국가'로 부르자는 경향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이 논문이 처음에 발표되었던 회의에서 그러한 경우를 볼수 있었다. 이들의 상이한 담론영역들 속에서, 각각의 입장들은 초국적 맥락 속에서 '호주'에 대한 제각각의 선별적인 이해의 공간을 열어놓고 있다. 후자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호주'에 대한 상상력에, 확고한 역사적 시각을 끌어들이는 것이며, 또한 (대영제국)식민주의 역사와의 밀접한 의존관계의 궤적을 소급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탈 식민주의 담론은 과거에 대해 속죄 내지는 상환이라는 관점으로 이해가 쏠리게 된다. 반면에 전자는 급진적인 성향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미 설정된 '호주'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는 점을 표방하는 한에서 그러하며, 또한 '아시아'를 호주의 운명으로 간주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전자는 세계 속에서 호주의 위치를 미래지향적 담론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두 관점을 현저하게 대립되는 담론으로 병치시킴으로써, 우리는 비판적 초국주의 관점이 어떻게 호주 문화연구에 생산적으로 개입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정교화 하고자 한다. 보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공공 정치담론 속에서 '아시아적 방향전환'의 선례들을 따르려 하며, '아시아적 방향전환'의 개념이 ― 즉, 호주가 '아시아의 일부'라는 주장이 더 큰 함축된 내용을 가졌다고 보려는 비판적 이해 ― 비판적 초국적 문화연구에서 호주가 하나의 '탈 식민국가'라는 주장이 갖는 몇 가지 한계들을 노출시키고 그것들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거기서 오는 그물효과(net effect)는 '호주'의 위상에 대한 이해를 점점 다양화하고 복잡하게 할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의해 창출된 최근 새로운 세계의 질서 혹은 무질서 속에서 말이다.

역사적으로, 호주 내 지배적 정치담론은 이 지역을 북아시아 이웃들과는 전혀 다른, 그리고 때로 이들에 대한 위기감에 기인하여, '서구' 혹은 '유럽'과 동질적인 나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자리잡아 왔다. 이 대립적인 관계구성은 본질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서구와 동양(지금은 아시아라는 용어로 환원된다)이라는 이분법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서구'와 '나머지'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서구 중심적 동양주의자들의 구분에 의한 '호주'설정의 결과와 효과들은 최근 미국 정치학자인 Samuel Huntington에 의해 다시 다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권위 있는 잡지인 Foreign Affairs에 실린 그의 논문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이 주목할 만 하다. Huntington의 관점에서 세계는 '일곱 혹은 여덟 개 정도의 주요 문명'으로 분리된다(1993:25).(주3) 그는 냉전종식과 함께 이데올로기 갈등의 종식이후, 국제적 분쟁은 점점 문화적 차이들로부터 비롯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논의를 개진하는 가운데, 그는 한 나라가 어떠한 '문명'으로부터 다른 문명으로 변화하려는 시도가 ―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지하면서 호주에 대해 경고성의 발언을 한다:


Owen Harries는 호주가 결국 분열된 나라가 되기 위해 (그의 관점에서는 현명치 못한)기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록 서구뿐 아니라 ABCA 군, 그리고 서구의 지식집단(intelligence core)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최근의 그 지도자들은 실제로는 서구로부터의 이탈을 획책하고 있으며, 자국의 정체성을 아시아 국가로 재정의 하고 이웃국가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장려하고 있다. 호주의 미래는, 그들이 주장하기를,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경제적 발전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지적해 왔듯이, 긴밀한 경제적 협조체제는 자연스레 보편적인 문화적 토대를 조건으로 한다는 점이다. (Huntington 1993:45)


그러한 문화적 토대는, Huntington에 따르자면, 호주에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시아'와 '서구'는 본질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문명'이기 때문이다. (Huntington의) 확고부동한 이데올로기적 권고에도 불구하고, '호주'를 '아시아화'하려는 생각은, 정치적 위기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비판적 담론을 획득할 수는 있다. 만일 그것이 서구중심주의적 일반론 해체의 가능성을 담보해주는 이유라면 말이다. 즉 '아시아'와 '서구'를 서로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범주로 환원함으로써, 위험하게도 유럽 중심적 동양론의 유산을 재생산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는 일반론의 해체가능성 말이다.

지난 10여년간 호주의 공식적인 대중설득은 변해왔다. '아시아로의 진출(push into Asia)'에 대한, '아시아 끌어들이기(enmesh with Asia)'에 대한, 그리고 '아시아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part of Asia)'가 되기 위한 요청들이 있었다. 이러한 극적 변화의 동기는, 호주 민족국가 스스로 북쪽으로 진출하려는 달아오르는 지역으로 자리 매김 하기 위한, 경제적 필요의 인식에 기인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적 '아시아화'라는 표류는, 지금까지 '호주'가 가지고 있던 문화적 상상 속에서 보다 포괄적인 변화와 교체들을 수반해 왔다. 이것은 호주 내 사업가들이 아시아를 무역대상으로서 혹은 시장으로서, 이 지역의 다양한 특이성과 감성에 대해 민감하다는 것으로 예증된다. 아시아 지역언어 교과과정 반영이 점점 강조된다든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서 '아시아적 정서'를 고양시키려는 노력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바꿔 말해, 거기에는 확고한 욕망이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 '아시아화' 뿐만 아니라 문화적 '아시아화'와 같은 종류의 욕망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향력 있는 수사력을 통한 호주의 '아시아화'는, 호주(회사) 그리고 아시아(회사)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끊임없는 (경제적)욕구 위에서, 다만 '호주'와 '아시아'라는 담론의 이분법적 대립을 종식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호주의 '아시아 끌어들이기'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 James Mackie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매우 곧, 우리는 그들(아시아인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조건에 의해서 말입니다. …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계속 등을 돌린다면 … 우리는 고립될 것이며 하나의 국가로서 하찮은 존재가 될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Perera에서 인용, 1993: 17)


언뜻 보기에 자의식을 버리는 듯한 이러한 태도는 사실은 '아시아'가 '그들'의 왕국에 담을 쌓고 있다는 인식의 효과를 가져오는데,(주4) 수사적 설득의 취지가 아시아와의 만남을 겨냥했을 지라도,  동양론(Orientalism) 서 비롯되는 이분법은 결코 '아시아화'라는 그 실용적 담론으로부터는 전복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단순히 복잡함을 제시하거나 (진보가 아닌) 새로움만을 낳을 뿐이다.

초국적 담론이 보다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자기 입장만을 변호하는 이분법의 재생산을 재고해야만 하며, 또 이것을 넘어서는 '호주'와 '아시아'의 관계를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여기가 바로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 연구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다. 첫 번째 단계로, 근래 문화연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움직임, 즉 '서구'와 '아시아'를 담론적 구성들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 하여, 표상적 타자화라는 동양론자들의 진행이 중단되고 또한 그에 따라 아시아를 다시 친숙하게 하려는 움직임은, 더 이상 극단적인 둘로 구별되는 문화적 장―즉, '서방'세계의 일부로서 그러나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위치한―으로 묶여있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는 언제나 이미 서구화된 아시아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로서, 호주 민족국가가 겪게되는 국제적 경험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면서,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호주'로 위치전도 시키는데 용이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시아'와 '서구' 둘 다 개개의 구성요소로 그리고 같은 근대적인 세계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 자발적 근대성(Involuntary modernities)


만일 '아시아'가 더 이상 타자(Other)로 인식되지 않아야 한다면, 그것은 동양론적 담론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책임(혹은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시아라 불리는 그 지역이 현대 세계의 조건들 속에서 하나의 고유한 구성요소로서, 그리고 하나의 힘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식민 제국주의 역사 역시 여기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호주와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한가지 중요한 요소는, 그들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산물들 혹은 효과라는 사실이다. 그 역사는 바로 유럽으로부터 비롯되어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 수출된 근대성까지도 연루되어 있는 역사이다. 호주의 '아시아' 담론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이분법은 '아시아'와 '호주'라는 근대 유럽식의 구조설정과 병행하면서 동시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를 담론에 의해 동양으로 구성한 장소이며, '서구'가 자신을 정체화 하기 위한 타자로서, '호주'는 '서구'의 전초기지로 설정되었으며, 또한 유럽의 바깥 공간에서 유럽식 근대성의 원리에 따라 한 사회를 바라보려는 시도로 설정되었다. 이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관점에 의해서이다. 즉 지리적으로 북쪽에 가까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호주의 자의적 방식에 의해 극동아시아로 지정될 수 있었다는 관점. 그리고 그 지역에 대한 호주의 공식적 선입견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객담들(예를들어 ASEAN에 대한 외교적 초점에서 볼 수 있다)로 지배되고 있을 때, '동남아시아'라는 범주는 다만, Milton Osborne이 지적하듯, 2차 대전 중 '군사적 사태들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범주의 근거가 되는 것이 비록 '인류학자들과 역사가들이,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그 이외의 다른 (아시아)나라들의 지역들간에 발견되는 어떠한 유사성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던 시기, 즉 전쟁 전부터이지만 말이다(Osborne, 1990:4).' 다양한 귀족집단들이 행한 의례, 의식들 같은 여러 종류의 유사성들은, '동남아시아'를 (근대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것으로부터 호주를 배제하는데 확실한 설득력을 지녔을 것이며, 따라서 호주는 '서방'으로 분류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주'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는('아시아'와 마찬가지로 '호주'는) ― 현재는 자주독립체를 형성한 근대 민족국가들까지도 ― 유럽 식민팽창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유럽의 강국들에 의해 물질적으로는 식민화되지 않았던 나라들까지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Naoki Sakai가 일본과 관련지어 파악했듯이, '일본'은 담론적 구성체로서 서구의 외부가 아니다: '심지어 그 배타주의(particularlism)에 있어서도, 일본은 이미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서구와 연관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서구의 바깥으로 볼수 없다'(Sakai, 1989:113). 근대 세계 체제에서, 아시아는 자신의 존재성을 서구로부터 빚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Sakai가 명명하는 '비 서구의 비자발적 근대성'의 요체이다:


동양에서 근대성은 (…) 근본적으로 서구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통제에 복속 되었다. 근대의 동양은 침략 당함으로써만 탄생될 수 있었으며, 서구에 의해 굴복 당하고, 침탈 당함으로써만 가능했었다. 다시 말해 동양은 서구의 대상이 됨으로써만 근대시대에 돌입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비서구 국가들에게 근대성의 진리는, 그러므로, 서구의 반향인 것이다. (…) 물론, 동양은 서구의 팽창에 반응했으며 거기에 반항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반항의 과정 속에서 동양은 서구의 지배에 용해되었으며, 자신도 모르게 유럽 중심적이고 일원론적 세계역사의 완결에 봉사했던 것이다.(SaKai, 1989:114-15)(주5)


비자발적 근대성이라는 중요한 개념은 근대적 세계체제 속에서 아시아 사회구성체 합병을 위한 구성적 토대인 내재분열(inherent displacement)(주6)을 강화한다<또한 그로부터 나온다. 역주>. 그것은, 예를 들어 Miyoshi 와 Harootunian의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왜 '일본의 역사가, 지배적인 타자이면서도 스스로 변두리화하는 혼합된 감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1989:xi) 마치 호주의 탈 식민적 위상을 확보하는데 필수적인 근대성이, 파생적이며, 간접적이며, 인위적인 성질을 띠었듯이 말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의미에서, 호주와 일본은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더 태만한 태도를 취해왔다. 둘 다 유럽에 비해 그 보편적 근대성 기획의 출처와 관련해서는 중심에서 이탈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을 희석시키는 것은 '호주'가 제도적 담론적으로 '서구'의 내부에 위치했던 반면, '일본'은, 비록 주변에서지만 경제대국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낡은 핵심부/주변부 논리에 따라, 세계 헤게모니의 핵심으로 진입하는 문제에서는 여전히 '비서구'의 일부로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좀 다른 측면에서, R. Rhadakrishnan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분리는 지배적 보편세계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서구의 지도(指導)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동양의 정체성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불일치 한다는 전제 하에, 격차해소라는 영원한 게임에서 늘 따라와야 할 것이라는 그런 이데올로기의 유지 말이다(Rhadakrishnan, 1992:86)'.

이와 같은 이원론(二元論)의 재생산을 피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근대성(기획)의 강제적인 전유(專有) 가 주변부내에서 어떻게 복합적이고 토착화된 근대성을 출현토록 하는지 그 방식들을 전면 검토해 보는 것이다. 이 복합적이고 토착화된 근대성은 지금 옛 유럽-미국 핵심부들이 전망하는 '서구의 쇠퇴'를 초래할 위협을 가하고 있다.(주7) 일본을 필두로 하는 소위 아시아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세력의 부각은, 서구 근대성의 헤게모니에 대한 재점검의 필요성을 입증해 준다.

David Morley와 Kevin Robins가 관찰한 바와 같이:


일본의 중요성은 그 복잡성에 있다: 비 서구라는 점, 그러나 더 이상 서구가 보는 관점의 동양과 어울릴 수 없다는 점; 일본은 근대를 주장하고, 그러나 또한 우리와 같은 형태의 근대성에는 회의(懷疑)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Morley and Robins, 1992: 155)


그러나 '우리와 같은 근대성'이라는 이들 담론 속의 용어는 유럽식의(그 자체로 하나의 추상인) 근대성이지, 호주 근대성이 지닌 탈식민적인 상표는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호주인의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성은 서구에 대해 가져왔던 동일화를 호주가 문제시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따라서 또한 (탈식민적)탈중심성의 경험에 대해, 적절한 타협과 아울러 면밀한 관심의 초점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Chakrabarty, 1992를 보라). 서구에 대한 일본의 끊임없는 강박관념은 ― 특히 미국에 대해(미국 또한 자체 내에서 유럽의 근대성과 거리를 가지고 있다) ― 마치 주인과 노예(타자)의 관계처럼, 자신들의 차별성을 끊임없이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따라서, 적어도 경제적 차원에서의 소위 서구의 쇠퇴는, 그러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있어서는 여전히 서구가 지배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Yoshino, 1992; Iwabuchi, 1994를 보라). 하지만 탈 식민적 관점에서 보면, 호주 역시 이렇게 관념상으로 존재하는 '서구'와의 관계에서는 탈 중심화되어 있다(Gibson, 1992를 보라). 비 서구의 문맥에서 보면, '서구'는 정체성에 대한 조직적인 (진부한)표현으로부터, 지명된 타자로, 즉 (비 서구)민족 자아의 신체 대부분을 관통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타자로 변형된다.(주8) 그러므로, 서구로부터 배제된 일부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서구화'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호주 역시 자신을 '서구적인' 존재로 굳게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화/근대화라는 세계체제를 형성한 출처가 아닌 하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호주의 (체제)수립은, 처음에는 정착 식민지로서 그리고 후에야 비로소 독립된 민족국가로서, 따라서 결국 근대성이라는 유럽의 기획아래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비록 독립 후 점잖게나마 과거 유럽식의 식민화/근대화 기획을 모방했을지라도 말이다).(주9)

결정적으로, 근대화 기획은 실패했다. 유럽의 제국적 폭력이 어떠했는가는 중요치 않다. 혹은 감수성이 강한 비 유럽인들이 어떻게 새로운 방식들을 수용했는가 역시 중요치 않다. 또한 '근대화'와 '서구화'가 궁극적으로는 완전해 질 수 없다는 점 역시 그렇다. 왜냐하면 전체화된 '근대/서구'식의 삶의 방식이라는 관념은 그 자체로 삶과는 동떨어진 하나의 허구였기에 그러하다. 이것은 유럽자신에게 조차도 그렇다. 왜냐하면 유럽 내에서도 역시 전혀 다른 문화적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역사적 흔적을 근대성이라는 보편화 기획이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식민화가 '유럽' 내부에서도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긴 해도―예를 들어 프랑스에 의한 Breton 지역의 식민화나 영국에 의한 아일랜드 식민화처럼―서구의 외부세계(즉 비 서구적 타자)의 식민화 또는 정착 식민지와는 대조적으로 '유럽'내부에서 전개된 수사학에 의해 포섭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근대 팽창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지표들 중 하나는 식민지화와 비 식민지화(decolonization, 즉 자치가 부여된 식민지. 역주)의 경험이었다. 보편화된 세계의 근대성이라는 환상이 좌초되는데 기반이 된 암초는, 현실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였던 것이다. 이 차이는 바로 근대기획이 말살하고자 한 것이었으나 결국 불가능함만을 알게 해준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근대성 기획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구조적 틀과 기본적 토대를 생산해 냈던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구별된 (민족)국가들로 분할되었지만, 무역이나, '국제관계'라는 확고한 체제, 그리고 점점 더 비대해져 가는 복잡한 세계통신망을 통해 긴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근대적 세계체제 속에서, Immanuel Wallerstein의 용어를 빌리자면, 외부는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이미 체제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체화된 이 세계적 질서와 무질서 속에서, 적어도 구조적 차원에서, 더 이상 진정으로 서로 다른 문화란 없다는 것 ― 다시 말해, 좀 넓은 의미로 '서방'문화에 의해, 즉 자본주의에 의해 건드려지지 않은 문화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우리가 지금 '포스트 모던'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 하다. 단일화되었지만 그러나 뿌리깊이 파편화 된 세계체제의 생산 속에서 근대성의 성패를 동시적으로 경험하는 우리가, 이 포스트 모더니티를 전지구적 문맥에서 이해한다면 말이다. 즉, 근대성의 보편화기획의 실패에서 나온 효과가 특수화되고, 토착화된 근대성의 확산을 생산해 왔으며, 그것은 하나의 전지구적 스케일로 볼 때 포스트 모던한 경험으로 묘사될 수 있는, 미분된(differentiated) 근대성의 공존이며 또한 동시적(에) (비)통분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라는 점이다.(주10)



국가/국제적인 것에 대한 문제설정 (Problematizing the (inter)national)


문화연구, 특히 호주 문화연구에서 비판적 초국주의라는 개념의 몇 가지 제한범위들에 대해 윤곽을 그려 볼 수 있다. 비판적 초국주의 관점은 서구와 비 서구라는 이분법적 구분도, 근대성을 보편화하는 가설도 재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즉 병치되고, 모순되고, 그리고 언제나 이미 끝났지만 또한 여전히 전개해 나가고 있는 근대성을 중복된 하나의 장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문화연구는 포스트모던하며 분과학문을 넘나드는(transdisciplinary) 재구성을 통해, 인류학과 사회학을 하나의 세계 속으로 결합시키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통합된 세계에서 근대적 분과학문들간의 구별은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만일 사회학이 과거 '우리자신'으로서의 '서구'사회 즉, 재현의 인식론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혹은 '우리와 같은'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인류학이 '우리와 다른', 혹은 '우리가 아닌' 타자로 구성된 문화에 관심을 가져 왔었다면,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는 모든 문화가 '우리'(같은) 또한 '우리'(같지 않은) 하나의 세계를 반영하며, 그 세계 속에서 활동한다. 그것은 또한 이론적 도구를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세계 속에서, 허물없는 차이(familiar difference)의 실천들을 타진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라는 개념이 이제 어디에나 있는 그런 세계에서, '우리'가 이제 더 이상 근대 이데올로기가 원하고 있는 자기 동일화된 존재가 아닌 그런 세계에서, 심지어 계몽주의 전통의 핵심부인 미-구라파 지역에서조차 말이다.

따라서 초국주의적 '차이'의 확산은 문화연구의 과제들을 복잡하게 한다. 이것은 최근 문화연구의 영미 계 지배에 대한 저항들에서도 입증된다. 이들은 대부분 캐나다와 호주의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Morris 1992; Blundell, 1993 을 보라).(주11) 그리고 이 문제제기는 문화연구를 사회학이나 인류학 같은 지배적이고, 보편화된 근대적 분과학문들과는 다른(different) 하나의 담론구성으로 윤곽을 그리는 전조가 된다. 또한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철학(계몽주의 분과학문의 최선봉인), 심리학 혹은 경제학에까지 확산될 것이다. 논의를 확대시키자면, 여기에는 하나의 문화연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문맥에 따라 특수한 문화연구 전통의 다수성만이 있을 뿐이다. 이 다수성은 민족국가들의 특이성을 근거로 하는 경향을 띠어왔다. 이것은 독특한 호주 문화연구에서 요구되는 토대들을 구성한다. 따라서 호주 문화연구는 이론적인 관심들과, 실질적 이해관계들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특수한 '호주'의 근대성을 통해 정교화 될 것이며, 아울러 그 근대성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맞서게 될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 민족적 차별성에 대한 강조는 중요하며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Graeme Turner는, 국수주의적(nationalist) 문화연구가 아닌 민족적(national) 문화연구의 지형을 정교화 하면서, 영국과 호주의 민족문화를 구별한다. 그에 따르면, 영국 민족 문화 내 텔레비전 광고 등에서 'Britain'을 거의 호명하지 않는 것은―즉, 탈 호명―'영국을 묘사할 때, (영국인의)국적은 매우 당연한 것이며, 이미 언제나 적절하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에 '호주의 재현 양식들에서는, 이미지화된, 신화화된 민족으로 분명히 묘사되며, 그것을 조회함으로써 거리를 갖는다'는 것이다.(Turner, 1993:8)(주12) 터너가 여기서 지적하는 핵심은 호주의 민족적 조건의 특수성과 관련이 깊다: '새로운 나라에서 사는 것은 특히 구체적이고, 변화무쌍한 그러나 강압적인 국가형성 과정 속에서 파생되는 사태들과의 부단한 만남이 될 것이며, 또한 그것들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다'(8). 그는 더 나아가 언제나 이미 문제가 되고 있는 민족정체성 경험의 효과는, '하나의 층위뿐 아니라 다른 층위들과의 연관 하에 다루는 것이 불가피한, 호주의 컨텍스트 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연구작업에 많은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9). Turner는 이점을 이용해서 호주문화 연구자료 모음집 속에 있는 자신의 많은 에세이들이 왜 그토록 호주의 민족정체성을 문제시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민족정체성에 대한 이와 같은 관심집중은 그에 상응하는 비판적 자기인식을 필요로 한다. 반성하지 않는 민족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이다. 곧 밝히겠지만, Turner가 일깨워주는 것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호주의 특수한 민족정체성이 영국과 관련이 있으며, 나아가 세계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탈 식민 이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우리는 탈 식민이론이 '호주'―아울러 다른 여러 나라들―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중요한 용례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민족정체성 기획 자체는 문제삼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개념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많은 것들을 생략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우리는 계속 논의를 진행시켜 개념적으로 진행되는 생략들을 다룰 것이다. 그러나 잠시 실천적인 생략의 예를 언급하는 것 역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호주 문화연구는 지금까지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질문에 소홀해 왔다. 예를 들면, 입장을 분명히 하는 장소로서의 민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의 초점으로 인해, 다른 정치적 단위들―예로, 신 남부 웰시(New South Welsh)정체성, 혹은 서구식 호주 정체성 같은―과의 연관 하에서 진행되는 정체성의 논의에는 관심이 적었다.(주13) 이 문제에 대해서는 또한, 시드니(Sydney)와 멜버른(Melbourne)의 문화적 차이에 관한 오래된 논쟁들이 최근의 호주 문화연구 담화들 속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나며(Docker,1974를 보라), 브리스베인(Brisbane), 아델레이드(Adelaide), 케언스(Cairns), 퍼스(Perth), 혹은 그 밖의 다른 도시들과 관련지어 추가로 다루어지고 있는 않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발전시켜왔던 단초는(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John Frow와 Meaghan Morris가 자신들의 저서 '독자들을 위한 호주문화연구(Australian Cultural Studies reader,1993)'의 서문에서 '장소의 실제(The practice of place)'라고 표현한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그들은, 정체성이 확고한 장소들 속에서 얻은 경험의 특수함, 그리고 거기서 나오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역적 경험'의 해석학적 설명들은,  '위치'와 '지식'간의 친밀한 연계라는 인식경험을 상술하려는 의도였는데도 불구하고, Turner에 의해 개괄된 '민족적 선취(national preoccupations)'와의 구체적인 연결을 전체적으로 도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호주공간에서의 이들 두 가지 차원의 경험이(지역적인 것과 민족적인 것; 해석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 비판적으로 병치되고 그것이 다른 하나에 효과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면, 그에 잇따른 연구들은, 호주의 문화연구에서 보다 반성적인 '민족적' 발화입장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단일화된 민족국가 호주의 담론과 보다 유동적이고 이질적인 '호주'의 담론들간의 관계를 문제설정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념적 수준에서, 민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탈 보편화를 위한 장치에는 중요한 반면에, 만일 역사적 문맥뿐만 아니라, 공간적, 초국적 정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민족의 개념은 이들과 함께 문제제기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문화연구는 대부분이 본질적 혹은 체제 내부적 이성에 해당하는 민족적인 것(the national)의 개념에만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민족이란 하나의 상상된 공동체라는 점만을, 민족적 '정체성'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기보다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만을, 모든 민족의 '단일성', '단결'은 다만 소수집단의 강제된 동화와 그들에 대한 억제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점만을 계속해서 지적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문제의식만을 가져왔던 것이다. 위에서 우리가 언급한, 지역적인 것(the local)과 민족적인 것(the national)을 병치시키는 것은 민족정체성의 구성에 대한 내재적 비판이라는 바로 이 목적에 유용할 것이며, 또한 인종, 성, 그리고 계급 등과 같은 내부적 파편화라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들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민족에 대한 이러한 내재적, 역사적 탈 신화화 뿐 아니라 국제적 공간질서 속에서 민족주체라는 특권화된 수사학적 위상의 개념을 구조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보편화된 근대성을 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우선 특수성의 공인된 지표로서,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그 타당성이 인정되었던 '민족국가'이다. Wallerstein을 인용하자면, '근대적 세계체제 내에서, 민족주의는(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지방(배타)주의의 제 1원리로서, 가장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며, 가장 오랫동안 자리잡은 힘이며, 가장 정치적인 영향력이며, 그 지속력에 있어 가장 육중한 무기이다'(1991:185). 이렇게 공식적으로 재가된 보편주의적 배타주의로부터 나오는 국제주의는―이것은 UN에서 거의 구체적으로 제도화된 것이기도 하다―전지구적 문화를 위한 하나의 모델을 구성하는데, 이것은 서로 구별되고, 상호 배타적인, 단일한 민족 단위들간의 상호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국제주의가 선언하고 있는 이 요소들간의 동등한 지위나 위상이라는 의미는 매우 형식적인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게 부조리 하지만 그러나 매우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내포하는 동등함의 개념이 목표하는 것은 '다양성 속의 상상적 단일체'의 수립이다. 전지구적 '상상 공동체'는 형식적으로는 등가의 단위로, 원리적으로는 상호 교환적이지만, 실제로는 구성요소들로 분할된, 상호 배타적인, 단일화된 민족적 상상 공동체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참가에 가장 큰 의의(?)가 있는, 올림픽 경기에 참가한 개별화된 팀들처럼 말이다. 분명히 이러한 보수적 다원주의의 국제/국가간의 '차이(difference)'에 대한 견제는 근대성 기획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지표들 중 하나인데, 비판적 초국주의 관점에서는 묵과할 수 없는 개념이다. 민족국가의 이데올로기와 그 실천은 가장 미시적으로 편재하고 있는 유럽근대성의 수출품으로서, 그것에 대한 정치학은 우리가 인식해야 할 과제이며, 민족국가 그 자체에 대한 개념, 그리고 그것의 합법화를 위한 수단으로 채택되는, 민족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한 전략상의 의존들은 문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호주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결국 호주 민족국가가 부분적으로 또 하나의 성공적인, 그러나 동시에 매우 특수한, 유럽근대성의 지대 내에 있다는 최종적 이해 속에 던져져야 한다. 비판적 초국주의 관점에서, 개별 민족국가들의 서로 다른 만남들과 이들의 토착화로부터 흘러나온 (탈)근대적 특수성, 그리고 이들 민족국가들의 존재를 생산하는데 일조 했던 근대성은 충분히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의 정치학은 민족적인 것(the national)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매우 쉽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며, 때로는 권력을 갖지 않은 민족국가를 위해 전략적인 본질주의로 옹호되기도 하는데,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으로서, 그 민족국가의 역사적 특수성을 망각하면서, 특정한 민족국가 구성체들의 일면적인 역사 문화의 특질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호주와 '호주'담론 둘 모두를 초국적 틀 속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데 이론적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제안하는 것이다. 그 후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이 초국적 틀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로의 진입(Entering global capitalism)


'아시아적 전환(the Asian turn)'이라는 슬로건 이면에 감춰진 경제적 요구는, 비판적 초국주의가 문화적 동향(東向)과 상호관계들을 구체화할 때, 자본주의적 질서의 구조적 추이들(trends)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일 근대성 기획이 '형식적'으로 구별된 '민족국가'들로 이루어진―주로 분리된 경제체제, 특수한 민족문화 그리고 민족의 운명에 대해 자주적인 요구들로 이루어진―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가정 하에서도, 이 특이성들은 점점 초국가적 통신 기술체계(transnational communications technologies)와 같은 많은 발전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초국가적 자본의 힘과 그 효과들로 인해 민족적(국가적) 경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Robert Ross와 Kent Trachte가 지적하듯이,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체계는 지난 20년 동안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1990: 6). 즉 1960년대 말 이후로부터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Manual Castells 역시 '모든 경제적 (생산)과정에 있어 가속화된 국제화'를 묘사한 바가 있다(1989: 26). 이것이 가능해 지게 된 것은 새로운 정보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며, 그로부터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실천을 변형시켜 왔던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팽창에서 한가지 근본적인 양상은 핵심부/주변부 구조의 재구성에 있었으며, 이것은 성장주의(developmentalism)와 근대화의 수사학, 그리고 독점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형을 위한 경제적 동기들은 매우 복잡하며, 이 글에서의 관심사는 아니다. 따라서 옛 주변부들의 부분적 공업화의 증가가 이 변화의 중요한 하나의 양상이 되어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에 대해 Ross 와 Tracht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독점 자본주의 시기에, 성장을 특질 짓는 지역적 패턴은 변해왔다. 제3세계 국가들이 제조업의 성장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선진 공업국가들의 경제보다도 더욱 빠른 성장을 해왔다. 유럽대륙 내부에서의 최근의 성장패턴 역시 같은 것이 사실이다. (Ross 와 Trachte, 1990: 96)


잘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성장이 가장 괄목할 만 했던 지역은 '동아시아'였다. 1965년에서 1981년 사이에, 홍콩, 대만,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그리고 태국과 같은 나라들 모두가 제조업 부문 실질성장률이 10%를 넘어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과 1980년 사이 7.9%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1970년과 1981년 사이에는 13.9%로 증가했다. 같은 시기동안에 주변부가 아닌 핵심부 국가들 중 아무도 10%이상을 넘지 못했으며, 일본은 세계 경제체제 내에서 구조적으로 변화한 위치에 있는 나라로, 1965-1970사이에 16.3%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1970-1981년 사이에는 4.2%라는 급속한 하락을 보여주기도 했다(Ross and Trachte, 1990: 95). 이렇게 서로 다른 성장률로 가늠되는 제조업 현장에서의 변화는 값싼 노동력과 노동탄압(non-unionized labour)이라는 담보를 통해 부분적으로 촉진되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변화들은 '동아시아' 민족국가들에게 새로운 경제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 변화는 또한 권력과 종속이라는 사회 공간적 구축 망의 중복과 교차를 새롭게 설정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Arif Dirlik가 상술하고 있듯이, '자본주의라는 서사는 이제 더 이상 유럽의 역사 서사가 아니다. 비 유럽 자본주의 사회는, 처음으로,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요구나 주장을 관철시키게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1994: 51). 말하자면, 세계사적 규모로 볼 때, 비서구적 근대성을 취한 나라들은, Dipesh Chakrabarty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 유럽에서 파생된 제도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서 역사적 동일화를 구축해온 양식에 근거하는, 우리의 근대 역사에 '차이'라는 글자를 새겨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Charkrabarty, 1993: 30).

이러한 발전은 핵심부/주변부, 특히 '서구'와 '아시아'라는 관계설정에 동요효과(unsettling effect)를 가져오게 된다. 근대의 절정기에 주변부/핵심부라는 이분법은 확실한 신원보장의 틀이었다. 예를 들어 이 신원보장을 통해 각각의 민족국가들이 구분되는데, 제1, 제2, 그리고 제3세계라는 메타포로 환원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구분은 점점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Arjun Appadurai는 이에 대해, '세계의 문화 경제는 복잡하고, 중첩되고, 이접적인(disjunctive) 질서로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기왕의 중심-주변부라는 모델로 이해될 수 없다(이것은 또한 중심/주변부의 다수라는 설명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1990: 6).(주14) Appadurai는 핵심부/주변부라는 이분법적 구조 대신에 흐름(flow)이라는 개념적 도식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이론적으로 이 변화는 독점자본주의라는 고정성에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특징인 국경들을 넘나드는 대량의 움직임으로의 이동을 표현하고 있다. 전자는 민족국가들의 경계선 내부에서 법인자본과 국가경제간의 긴밀한 상호연결로 예증되고 있던 반면에, 후자에게 국경선 그 자체는 민족국가들의 주권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전지구적 문화흐름을 다섯 가지 정도의 범위로 제한하고 있다: 국민, 매체, 기술, 화폐와 지식의 범위가 그것이다. 이들은 '상상된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일종의 빌딩 블럭들을 형성하고 있다. 즉, 복합적 세계인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상황에 놓여진 전 세계의 사람들과 집단들의 상상력으로 구성된다'(1990: 7)

그러나 이들 복합적 상상세계는―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이접적 문화흐름들은―아무렇게나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움직임은 빈 공간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제나 그리고 이미 채워지며, 구성된 공간인 것이다.  사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들 흐름들이 가로지르는 공간들의 역사적 문화적 형세이며 특수성이다. 지난 시대의 유산들은―그리고, 우리가 잠시후 언급하겠지만, 특히 식민주의적 유산들은―문화적 흐름이라는 현재 궤도에서 강력한 결정소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마도 그 핵심/주변의 도식을 흐름이라는 구도로 완전히 대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지속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둘을 절합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맡아야할 이 전지구적 난제들을 구성하는 언제나 유동적이며, 다차원적이고, 이질적인 그래서 또한 모호한 관계성의 해몽을 말이다. 고정된 핵심과 주변이라는 개념으로부터 흐름이라는 개념으로 탈주하는 이론적 과도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확대를 통해, 힘의 관계라는 낡은 뿌리체계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는 점이며, 오히려 보다 새롭고, 보다 중층적인 지형을 되새기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힘들의 갈등 현장으로서 경제적 담론과 문화적 담론의 해체와 탈구(disarticulation)를 통해서 말이다.

일본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면, 지난 몇 십년 전 지배적 경제력을 가진 나라로서 일본의 급부상은, 계몽주의적 가치로 별문제 되지 않았던 자본주의 근대성의 본산, 즉 '서구'의 근대적 관념을 뒤흔드는(deconstruction) 효과를 가져왔다. 좀더 일반적으로 아시아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볼 때, 최근 '동아시아'에서 소위 유교적 가치관(Confucian values)의 눈부신 부상을 목도(目睹)해 왔다.(주15) 이것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Dirlik이 지적하듯이, 그것은 '본토(즉 비서구인)의 문화와 (서구)자본주의 서사의 절합'이라는 측면 때문이다(1994: 52). 그렇다고 해서 '서구'의 이데아(idea)가 이제 그 힘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Stuart Hall이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것은 '전지구적 힘의 관계라는 하나의 시스템 내부에서 작동하는 유기적인 요소이자 동시에 모든 사고방식과 발화방식을 조직화하는 개념이며 용어라는 점이다'(1992: 278).

이 두 경향들의 관계는 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실제로 존속하는 핵심부/주변부의 관계가 이제는 복수화되고 더 이상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전지전능한 핵심으로서  '서구'담론의 힘이 여전하다는 점이 그것인데, 이는 특히 호주에게 여러 문제점들을 암시하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기에서, 호주 민족국가는 점점 동아시아의 NIEs, 즉 신 공업경제(newly industrialized economies)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이러한 진전으로 이전의 위계를 전례 없이 전복시켰다는 사실에 대해 인식과 우려를 촉발 시켜왔다. 힘없는 타자(Other)로서의 아시아가 이제는 (경제적으로)주변화된 '호주'와의 관계에서 중앙통제의 역할을 하는 중심부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는 우려를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호주는 '서구'와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계층관계, 즉 여전히 주변부로 남아있는데, 따라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는 문화적으로 일부분으로만 남아있다는 점이다. '서구'는 '호주'에게 (문화적)힘이라는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는데, 이 힘을 통해 '아시아'와의 대결에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우월감은 우려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수상인 Lee Kuan Yew의 말을 빌리자면, 만일 호주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시아의 하얀 쓰레기'로 변해버릴 위험에 있다. 간단히 말해, 최근의 전세계 역사적 국면은 세계 속에서 호주의 재현에 관한 문제의 차원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탈 중심감의 고조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거나, 문화적 역량에서 옛 핵심부라는 위치가 위협 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는 호주는, Andrew Milner의 표현을 따르자면, '갑자기 표류하게된 유럽 정착 식민지로서, 이성으로도 상상으로도 생각지 못했던 아시아의 물결에 밀리는 하얀 쓰레기'로서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1990: 39).



탈식민적 난관(Postcolonial predicaments)


'탈 식민성'이라는 범주는 호주 문화연구에서 '호주'를 이해하는데 있어 지금까지 가장 두드러진 관심의 하나였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탈 식민주의가 하나의 이론적 관점으로서, 호주라는 나라를 초국적 틀이라는 역사적 결정 속에 위치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탈 식민이론은 짧은 역사를 가지지만, 여기서 자세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의 목적은 우선 '호주'를 이해하고, '아시아'와의 관계를 조망하는데 있어, 탈 식민적 관점을 수용할 때 어떤 효과가 가능한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다. 포스트 콜로니얼이라는 범주의 수용은, 지나간 과거의 특수성과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그 효과―대영제국의 정착 식민지로서의 호주의 역사―를 근간으로 하여, 뚜렷한 초국적 관계 구성을 강화한다. 이렇게 호주 문화연구에 있어 탈 식민주의 관점을 전유하는 것은 또한 동맹관계들을 결성하기 위한 전략을 제공해 오기도 했다―예를 들어, 캐나다와 뉴질랜드와의 동맹을 들 수 있다(주16) ― 이들은 모두 대영제국의 정착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탈 식민적 '정체성'이라는 수사적 전유는 하나의 민족적 자기정의(self-definition)의 행위이다. 그것은 고의적인 민족자아의 탈 중심화이며, 자기의식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며, 근대적 체제라는 옛 핵심부와의 관계, 이 경우에서는 영국과의 관계에서 자기 주변화를 꾀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Turner는 탈 식민성이 가지는 난제를 일련의 이중구속(double binds) 혹은 이중 접기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중구속은) 탈 식민국가(민족)와 그 타자인 식민지배 권력간의 복잡하고 모호한 관계로부터 나온다. 타자(즉 지배권력)와의 연결을 우선 깨어야하는 것이 탈 식민적 관점인 반면에, 호주인들은 자신들의 차이를 규정하려는 시도를 여전히 이분법 체계에 의존함으로써 그들(타자)과 다시 관련짓게 된다. ― 예로, 전통적으로 접힌 호주/영국의 구분을 이번엔 그 반대로 다시 접는다. 물론 탈 식민적 정체성의 여부는 식민주의적 틀을 뒤 업는 것에 달려 있지만, 그러한 전복이 효과적이었음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식민지배권력이 그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심지어 탈 식민성의 위상마저도 지배권력을 지닌 타자의 승인 하에 있음을 말해준다는 억지도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Turner, 1992: 426-7)


Turner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탈 식민성이 의미하는 것은 모순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비 일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들을 영유하는 것이다'(1992: 427). 그러나 탈 식민적 인식의 난관에 대한 이러한 설명이 시사하는 것만큼, 또한 그것은 호주의 초국가적 상황을 묘사하는데 있어 중요한 단초로 이해될 수 있는 탈 식민성을 어떻게 일반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Turner가 묘사하고 있듯이, 탈 식민 담론은 우선 제 식민지 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이분법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런 식으로 보면, 이 이론적 기획은 하나의 중요한 감성적 향수 속에 있는 것이다. Fernando Coronil이 적고 있듯이, 그것은 '식민경험을 벗어난 사회를 마치 과거 식민지의 배제의 결과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1992: 102). '호주'의 현재상황을 이해하려는 문화연구 관점에서, 그러한 도식화는 유용한 것이기는 하나 다소 한계가 있다. 탈 식민적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순진한 담론적 제스쳐가 아니다: 옛 식민지배권력과의 모순적 관계 속에서 탈 식민 민족국가의 분명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해도, 어쨌든 그것은 전략적으로 (민족)정체성의 응집력을 과도하게 강화하는 근거를 구성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탈 식민 이론이 비판적 초국적 문화연구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최근에 탈 식민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한 토론에서, Dirlik은 그것을 현대세계에 대한 맑시즘적 이해방식에서 동떨어진 것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견해로, 탈 식민 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것이 '삶의 물질적 조건, 즉 현대사회가 누리고 있는 '기본적'원리로서 전 세계 자본주의라는 조건을 자신의 인식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말한다(1994: 99). 실제로 그는 '탈 식민 담론이 주장하는 분열과 지역적 우연성에의 가치부여, 그리고 유동적 관계와 주체의 교차 가능한 입장들에 대한 단언들 속에서, 탈 식민 담론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부를 맴도는 삶의 묘사로 해석될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97). 『자본(The Capital)』이 19세기 공업 자본주의 하에서의 삶의 묘사로 해석되듯이, 거기서 탈 식민 담론은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물론 『자본』은 탈 식민 담론에서 놓치고 있다고 Dirlik이 본 도덕적 비판을 포함하고 있었다.

탈 식민 이론의 효용은, 우리가 보기에, 확실히 그것이 근대적 질서라는 옛 고정성과 계몽주의의 도덕적 확신이 흔들리고 있는 현대세계와 절합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도덕적 비판의 상실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비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대두되고 있는 지금, 그것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들이 긴급히 요구되며, 그에 상당하는 맥락의 실체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탈 식민적 비판이―그리고 또한 초국적 문화연구도―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 식민 이론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급속도로 퍼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식민화와 정착 식민지라는 구조가 만들어 놓은 민족국가들이 이제 대중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과거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탈 식민이론이 발전하는 동기는, 경제적 차원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현재적 컨텍스트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문화적 세습을 이분법적 관계가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 검토하려는 요구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Bill Ashcroft, Gareth Griffiths 그리고 Helen Tiffin이 문학연구에서의 탈식민이론을 다룬, The Empire Writes Back(1989)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탈 식민이론은 작가들이나 지식인들의 새로운 능력, 즉 이전의 식민 지배하에서 진행되었던, 옛 핵심부인 서구의 논리와 아울러 '근대화'가 부여했던 식민주의의 파생물로서의 비평가에서 벗어난 새로운 능력의 결과라고 암시한다. 이러한 역사적 결과들은 세계의 질서 혹은 무질서 속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변형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것은 탈 식민 이론이 발전되어 왔던 그 세계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세계이기 때문이며, 이론적 개념들과 분석적 통찰의 대부분이―예를 들어, 잡종성(hybridity), 분산(diaspora), 흉내(mimicry)등과, 보다 일반적으로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이론의 문화 정책적 인식 등―탈 식민적 관심사들의 특수성을 넘어서는 잠재적 응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이 탈 식민 이론을 현대세계에 대한 비판적 초국주의의 문화연구와 연관지을 수 있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근대적 세계체제의 구조화에 '기초적인' 범주로서, 자본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Dirlik의 논의가 틀리지 않은 반면, 탈 식민 이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복잡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그 과정들을 통해, 식민주의의 종말이라는 사태에 직면한 모든 나라들이 타의적이며 동시에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다시 그 세계 체제 속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피 식민지배자는 다만 민족국가 건설의 필요성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관심만을 가지면서, 민족국가의 위상을 취함으로써만 근대세계의 일부로 인식될 뿐이었다. Turner에 의해, 일련의 이중구속으로 적절히 묘사된 이러한 역사적 문제의식은, 여전히 탈 식민적 민족국가들이 처해있는, 심지어는 국가 간의 경계들이 초국적 자본에 의해 무작위로 구분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이중구속들은 다만 역사적, (개념적으로)민족적, 그리고 지정학적 특수성의 문맥에서 구체적으로 작동될 때 비로소 효과가 있다. 비판적 초국적 문화연구가 할 수 있는 것은 민족내부에 놓여진 특수한 탈 식민적 경험들을 민족들간의 상대적인 문맥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 속에서 우리가 질문할 수 있는 것은 탈 식민적 민족국가들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균형 잡힌(혹은 그렇지 않은) 근대성들간의 관계들이다. 동시에 이들 민족국가들 자신은 근대성 기획의  성공과 패배가 공존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결론(Conclusion)


Ulf Hannerz는, 세계 자본주의가 핵심부/주변부 구조를 변형시키듯이, 이와 같은 발전과 관련되어 문화적 교체가 어떻게 해서 불균형적으로 일어나는지 지적해 왔다. 그는 옛 정착 식민지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혈족관계나 친족관계 그리고 조상이라는 역사적 끈들이 주변부를 특수한 중심부에 연결시킨다'(1989: 67)고 지적한다. 그리고 주장하기를:


탈 식민 시대에, 탈 식민 영토의 사람들이 영어와 불어, 그리고 포르투칼어를 계속 사용하면서, 옛 중심-주변의 관계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만약, 중심-주변의 관계들이 현재와 관련된,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힘의 구조와 관련된 문화적 지체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또한 일본이 세계 속에서 보다 큰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Hannerz, 1989: 67)


위의 인용은 오늘날 세계 속에서 호주가 처한 상황에서, 두 가지 중요한 중심 축을 뚜렷하게 설명해 준다: 하나는, 호주와 유럽의 연계에 대한 문화적 지속을 설명해 주며, 다른 하나는 문화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 영향력으로서 '아시아'의 중요성을 맥락화 한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실제와 상상간의 연속과 불연속이라는 복잡한 절합이 바로 이것인데, 거기서 우리는 비판적 초국주의가 이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식민적 관계에 대한 편협한 생각이나 강조는 현대의 세계적 질서 또는 무질서 속에서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다면적인 호주의 입장에 대한 올바른 통찰이 불가능하게 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 Suvendrini Perera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호주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탈 식민적' 조건에 대한 최근의 인식들과 그에 대한 찬미 어린 연구들은 때때로 옛 식민 지배자들이 버린 망토의 지방 상속자로서, 호주 자신의 민족적 자아-이미지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역사는 호주를 한쪽 끝에는 유럽(특히 영국),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아시아'와 불평등적이며 거슬리는 삼각관계를 낳게 한다. 이와 같은 관계는 계층구조의 지속적 재배열의 일종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우월감 ― 이것은 또한 시기적으로 '인종적'우월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이라는 현재의 조건들에서 비롯된다. (Perera, 1993: 16-17)


이 삼각관계에 대한 Perera의 강조는 특히 시사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영제국 정착 식민지로서의 특수한 역사, 그리고 '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면서 맞닥뜨리게되는 현대의 문화 정치 그리고 담론적 난관들 사이에서, 결정적인 연관을 도출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호주'가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유럽'과 동일시 해왔다는 그 사실이 이제 '아시아'로 방향전환 하려는 시도를 복잡하게 한다. 다시 말해, '유럽'을 '아시아'로 곧바로 자의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확고하게 자리잡은 역사적 과정들이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그것이 오히려 현대적 관계들을 굴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 캐나다 그리고 뉴질랜드(그리고, 남아프리카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와 같은 나라들이,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라는 보편적 역사를 갖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아직까지 그 의미가 이론화되지 않은 탈 식민성의 특수한 절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그 중요성을 다루어야 하는 긴급한 요구들이 생겨난다. Vijay Mishra 와 Robert Hodge가 주장하듯이:


(유색인종이 아닌)백인 식민지의 특수한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것은, 메트로 폴리탄적 중심이 분산된 후, 영국에 의해 매우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영국은, 이 식민지인들에게는 제국의 중심(즉 타자)이 아닌 모국(Mother Country)이었다는 점이다. (Mishra and Hodge, 1993: 39)


이들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메꿀 수 없는 간극'이 백인 정착 식민지(white settler colonies)와 유색인종 비 정착 식민지(non-white non-settler colonies) 사이에 존재했다는 것이다.(주17) 이 간극은 살펴볼 논쟁거리인데,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차이들을 창출해 내고 있다. 이 차이들은, 전(前)식민 토착문화 위에서 영국식민화와 이민의 영향력이 절합하는 가운데 보여지며, 현재 호주와 '아시아'의 친선을 복잡하게 하는 장벽들과 관련될 수 있다. '아시아'는 지금 민족국가들을 형성하고 있으며, 세계 자본주의의 배치와 배열들 속에서 경제적인 부각에도 불구하고 거의 호주만큼이나 '탈 식민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탈 식민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절합 되는데, 이들 민족국가들이 근대 열강들과 색다르게 맺는 제휴의 결과들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어떤 나라들은 균형 있는 또 어떤 나라들은 그렇지 않은 절합을 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위,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호주의 탈식민적 절합에 대한 초국주의의 비교적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말레이지아는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이주 식민지는 아니었으며, 지금은 독자적인 말레이 토착문화 위에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영국이 아닌 독일 식민지였다. 독일의 식민정책은 영국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이들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는 이미 공용어(Bahasa Malaysia/Indonesia)를 가지고 있다(이 둘은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이다). 그러나 둘다 자신들의 차이와 특수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서로 다른 특수한 식민경험이 두개의 탈 식민 민족국가들 사이에 영토상의 경계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 주 요인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것이 합법화되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탈 식민성을 재생산할 필요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싱가포르는 공식적으로 (영국령)해협식민지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독립된 민족국가로서, 민족 기질상 말레이지아와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주민들에 의해 압도적으로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서는 호주와 공유하는 점이 많다―싱가포르에서는, 말레이 민족이 아닌 중국계가 지배적 인종집단이다. 이들은 지금은 동남아시아 지역 내에서 자신들만의 팽팽한 긴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호주 탈 식민 역사의 한가지 중요한 측면으로 백호주의정책(White Australia Policy)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약 20년 전에 포기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말레이지아인들, 싱가포르인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해 호주 백인종의 우월함을 증명해주는 증거로 작용하는 상상의 세계를 품고 있다―따라서 그들의 관점에서, 호주는 절대 '아시아의 일부'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서로 교차되고 가로지르는 역사적 궤도는, 다양한 영역과 범위의 전(前)식민 문화들의 흔적들과 결합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 겹쳐지고 포개지며, 또 한편으로는 부조리한 탈 식민 근대성을 생산해 왔다. 이러한 양면적인 성격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접적인 세계문화 흐름들의 벡터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Appadurai가 지적한바 있다 ― 예를 들어, 수많은 말레이지아 학생들과 싱가포르 학생들은 호주인들이 경영하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 자체가 이미 세계자본주의라는 체제 하에서 고등교육이 갖는 상품화의 결과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러한 비교적 관점을 취하는 기획은 식민사업의 미분적(differential)효과들을 표면에 등장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적 질서 내에서 특수한 공간들을 절합하고 주조해 왔기 때문이며, 그 세계적 질서자체를 절합 하는데 도움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원적인 근대성으로 구성된 세계를 인식하는, 즉 이 근대성이 만들어 놓은 경계들이 더 이상 영토상의 민족국가들간의 경계와는 필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서구'와 '아시아'라는 근대적 이분법의 해체를 도모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근대성 기획이 식민화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다는 주제 및 전제가, 비판적 초국주의에 의해 촉발된 탈식민 연구와 문화연구에서 보편적으로 인지된 관심사라는 점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탈 식민 시기가 의미하는 것은 단일한 근대성 기획의 실패와 종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모순적이고 불일치 하는 근대성들간의 통분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비판적 초국적 문화연구가 가능해지는 인식론적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랬을 때, 호주 문화연구에서 전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로의 방향전환'은 근대 민족국가의 일부로서 '호주'라는 자신만의 용어처리를 상술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배제가 아닌 포함,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서구'와의 관계, 그리고 또한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아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호주의 '아시아화'라는 개념은 현재의 국소화된 지리-경제적 요구들과 (탈)식민적 '서구화'라는 과거의 역사적 유산 사이에서 포착된 발상으로, 적어도 '아시아' 자체가 아닌, '아시아' 속의 '호주'를 수용하는 개념, 다시 말해, Huntington교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이며 동시에 '아시아인이 아닌' 이질적인 (탈)근대적 존재로서의 호주가 가능할지 혹은 불가능할지, 그 의미에 대해 호주적 상상력을 배양하는데 일조 할 수 있을 것이다.


(주1)

이 논문은 호주의 Griffith 대학에서 1993년 7월에 열린 "Post-colonial Formations: Nations, Culture, Policy"라는 논의에서 처음 발표된 것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우리들은 원발표문들의 표시를 해두었다. 원본에 대한 자세하고도 날카로운 비평을 해준 Meaghan Morris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이 수정된 논문은 1994년 8월 하와이 호노룰루의 동서문화연구 센터(Cultural Studies, East-West Center)에서 함께 작업한 동료들을 방문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작업의 책임자인 Geoffrey White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Wimal Dissayanake에게 감사를 드린다. // 참고로, 이 글은 Stratton and Ang의 「호주의 아시아화: 비판적 초국주의의 문화학을 향하여」를 번역한 것이며, (『호주 문화학 입문: 문화 읽기와 쓰기』. 지구문화사, 2000)에 실린 내용이다.(역주)

 

(주2)

우리는 이점을 "Stratton and Ang" 에서 더 밀고 나갔다.(근간)


(주3)

Huntington은 '서구, 유교, 일본, 이슬람, 힌두, 스라브정교,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문명'으로 구분한다(1993:25). 이상한 것은 '아시아'는 여기서 적어도 네가지의 서로다른 '문명'으로 분리되어 왔다는 점이다.


(주4)

이것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말한다. 타협과 제휴의 필요성에 대한 성찰을 말하면서도 결국 그 생각에는 아시아와 제휴하기 위해서는 서구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며, 자의식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아시아가 자신들의 담을 쌓고 있다는 (비난의)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보기에 따라서는 자의식의 제거나 제휴에의 손길은 위선적인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위선적인 양면성은 서구의 우월감에서 비롯되어, 이 우월감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효과를 보여준다.(역주)


(주5)

물론, 이 여기서 '서구'와 '동양'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동질적으로(homogenizing use) 사용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문제를 거론하지는 않겠다.


(주6)

'displacement'의 개념은 단순하지 않다. 예를들어 탈식민 담론에서 이 개념은, 현실적으로 체험된 세계와 언어에 의해 묘사된 세계의 불일치라는 분열적 양상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특히, 정착 식민지에서 두드러질 수 있는데, 이민자와 원주민들간의 언어의 공유(영어를 모국어로써, 외국어로써 사용하는)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양식은 불일치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분열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철학적 개념에서, 언어와 세계의 관계가 보여주는 불일치, 즉 언어의 자기결여(self-need)는 그러나 끊임없이 대상을 지시하고, 대상으로 다가가려는 재현, 즉 자기 충족(self-sufficiency)의 욕망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들과 새로운 언어들을 계속 창조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대치(displacement)하는 분열과 자기모순의 작용을 하고 있다. 본문에서 예를들고 있는 일본의 경우는, 물론 언어를 통한 타자화를 적용할 수 없겠지만, 과거 근대성 기획을 내면화 함으로써 ― 물론, 일본의 경제적 발전은 이에 힘입은 바이다 ― 경제적 지배와 동시에 문화적 열등을 갖는 자기내부의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대체에서 빚어지는 자기모순과 분열을 통해, 근대성 기획은 그 지속력이 강화된다. 따라서 역자는 이 'displacement'라는 용어를 '불일치, 대체…' 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인 '분열'이라는 말로 번역했다. (역주)


(주7)

점점 확대되는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이라는 Huntington의 표현은, 이렇게 인식된 '서구의 쇠퇴(the decline of the West)'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다.


(주8)

이 부분에 대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 'Western' is transformed from an organic topos of identity into a powerful, explicitly named other ― an Other which has the power to penetrate the body of the (non-Western) national Self;…', 역자는 여기서 'named'라는 표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구절은 서구제국의 이데올로기 효과와 힘은 크게 두가지 단계를 통해 실현되며, 이러한 단계는 변형되면서 일정한 반복적 패턴을 가지게 된다는 뜻으로 변형해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신체로 부터 무의식, 하부구조로 부터 상부구조로, 물질로 부터 관념으로 등의 일련의 단계를 밟는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제도나 언어, 교육(이것은 그자체로는 제도를 필요로 한다), 신체적 억압 등의 단계는, 비로소 이데올로기나 무의식으로 변형되어 각인(interpellated)된다. 각인은 신체에서 의식으로, 그리고 무의식으로 새롭게 새겨진다. 따라서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제국의 행위들로 부터 수동적인 식민지의 개인들은(주체들), 단계의 변형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능동적인 개인들로 변형된다. 이데올로기의 구성적 특징은 개인이라는 구체적인 개인(주체)들을 통해 실현되며 표상된다. 따라서 식민지의 주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 관례(rituals), 양심 등의 실질적인 행위들을 능동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변형된 또다른 실질적 단계를 갖게 되며, 개인들은 항상 지명된 타자(named), 즉 '서구'라는 관념적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서구의 힘은 비 서구의 신체를 꿰뚫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역주)


(주9)

이런 문맥으로 보면, 훨씬 극단적이던 일제 식민주의 또한, 그 방식들에서, 유럽 제국주의의 계승으로 부터 자극된 것임을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10)

세계자본주의 체제내에서 각 민족, 국가들은 서로다른 생산형태와 문화적 차이들을 가지고 있으며, 생산방식, 생산관계들이 서로 미분된다. 이들은 차별성을 가진 관계들로 서로 상호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미분된 차이는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어떠한 공통분모나 공리로 인해, 서로 환원이 가능한 차이들이기도 하다. 미분된 통약성으로 부터 우리는 차이가 더 이상 본질적으로 차이가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차이들은 하나의 본질 ― 서구, 이성, 자본주의, 경제 등 ― 로 환원가능한 공리계 내부의 차이들임을 알 수 있다.(역주)


(주11)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Stratton 과 Ang(근간)을 보라.


(주12)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동일화의 기본적 행위이다. 따라서 호주를 객관적 관찰의 대상으로 제시하거나, 이미지화 하거나, 호명하는 행위를 통해서 타자화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역주)


(주13)

흥미롭게도, 1980년대 중반에 호주연구에서 불거진 퀸스정체성(Queensland identity)의 특수함에 대한 작은 논쟁을 볼 수 있다(Bulbeck 1987 을 보라). 그러나 이것은 호주 문화연구의 관심들중 하나의 요소로만 인식되어 왔다. '호주'와 관련된 북쪽 지역(Northern Territory)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Stratton(1989)을 보라.


(주14)

여기서 Arjun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global cultural economy has to be seen as a complex, overlapping, disjunctive order, which cannot any longer be understood in terms of existing center-pheriphery models…'.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관사 the에서 t에 괄호를 묶음으로서 he 라는 남성대명사를 지칭하는 이중적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서구 근대성의 보편화, 동일화체계는 남성중심적임을 나타내는 효과를 보인다. (역주)


(주15)

동아시아, 특히 싱가포르에서 유교적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중요성의 비판적 논의에 대해서는 Chua<1990>을 보라.


(주16)

이 논문의 초판(early version)이 나왔을 때 가졌던 회의에서, 뉴질랜드, 캐나다 그리고 호주의 참가자들은 '탈식민 구성체(Postcolonial Formations)'라는 기치아래 회합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주17)

여기서 '백인(white)'이라는 범주를 단순히 인종적 용어의 차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근대', '유럽식' 그리고 '서구적'이라는 매우 역사적인 용어들과 연루되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