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축축했던 올 여름 날씨처럼, 8월 들어(특히 지난 주와 이번 주) 유난히 내 일상과 주변이 끈적거리고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끔히 건조시켜 잊어버리기 위해 광릉수목원을 다녀왔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고, 친구 H와 점심식사 메뉴를 토론하다가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다. 광릉 근처에 유명한 불고기 집이 있다며 H가 부추겼고, 나는, 고작 불고기 때문에 그 멀리 가자고? 그렇게 해서 핑계거리를 급조한 것이 수목원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것이 이유였다. 이곳은 1주에 단 하루만, 그것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을 허용한다. 서둘러 인터넷으로 입장 예약을 하고는 H의 차에 올라탔다.
구불구불 찾아가지 않고 주로 대로로 다녔기 때문에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초행길이었지만, 갈 때는 내가 운전을 했다. 광릉 지역의 숲에 이르자 국지성 호우가 쏟아져 시야를 가렸다. 숲길이 구불거려 스릴감이 있었다.
수목원 안에 나 있는 숲길과 호수가 차분했다. 비가 내려 습기를 머금은 숲이 여기저기서 안개를 뿜어댔다. 호수의 물안개는 신령스럽기까지 했다. 숲길을 걸을 땐 땀이 났지만, 잠시 앉아 냉커피를 마시는 동안 우람한 나무의 시원한 입김이 몸을 서늘하게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내쉰다. 습한 대기에 실린 깊고도 은은한 숲의 냄새들이 뒤섞여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잔잔한 호수, 노니는 물고기, 안개에 젖은 검은 산, 푸르고 푸른 나무와 숲, . . . 모두가 완벽한 하나의 정물(still life)처럼 보였다. 항상 똑같아 보이고 특별할 것 없이 진부해 보이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도시의 진부함이 줄 수 없는 보편적 해방감을 준다. 잠시만이라도 그 안에서 그들 곁에 있다 나오면, 우리는 어느새 그들처럼 무심해지고, 초연해지고, 혼란스러웠던 동요가 가지런해져,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감을 느낀다. 우리를 포함하고, 우리 안에 있는 이 자연으로부터 워스워즈(William Wordsworth)와 같은 몇 몇 낭만주의자들이 "가장 완벽하고도 순수한 이성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앉아 잠시 동안 작은 토론을 벌였다. 나와 친구는 서로 반대의 성격이었다. 나는 항상 욕망에 차있고,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며, 먼 곳을 주시하는 쪽이었다. 나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주장했지만, H는 결핍감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H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고, 큰 욕망에 이끌리는 일이 많지 않으며, 또 쉽게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줄 알았다. 쉽게 쾌활해지는 법도, 그렇다고 쉽게 우울해지는 법도 없었다. 표정에 큰 변화가 없는 H는 미간을 구기며 먼 곳을 주시하기 보다는 평온한 모습으로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을 생각하는 편이었다. 불규칙적인 나의 일상이 항상 "왜?"라는 질문으로 밤을 새우며 허우적거리는 동안, 규칙적이고도 무미건조해 보이는 H의 삶의 관건은 주로 "무얼 할까?"라든가 "어떻게 가야 할까?"에 있어 보였다. 광릉까지 가기 위해 수목원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던 나와는 달리, H는 불고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어디든 갈 위인이었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연연해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사람이 가벼워 보이기까지 했다. 부질없는 큰 욕망을 포기하면 현재의 작은 욕망들이 중요해진다며, 이렇게 부질없는 욕망을 중화하는 법은 유년기부터 터득한 것이라고 H는 자부했다. 나는 그것이 지혜의 결과가 아니라 좌절과 포기의 결과라고 말해주었다. 희망이 실현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될 때(특히 유년기에), 우리는 절망감의 충격을 다시 맛보기가 두려워 욕망을 애초부터 피할 때가 있다. 결국 욕망의 중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쾌락이라고 믿고 있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욕망을 중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욕망이 너무 큰 것이 아니냐고 덧붙이면서. 그러나 H는 채울 수 없는 것을 다 채우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자신이 에피쿠로스(Epicurus)라도 된 것처럼 역설했다. 그것은 마치 메뉴에도 없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식당 주인을 불러 불평하고 타박하거나 요식업소가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를 연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베켓(Samuel Beckett)의 두 인물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처럼, 우리는 다소 진부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욕망에 관한 기본적인 두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포즈로 잠시 동안 서로 대립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두 입장이 정말로 우리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로 블라디미르의 욕망을 대변하는지, H가 정말로 에스트라공의 욕망을 대변하는지, 심지어는 나와 H가 정말로 대립하는 캐릭터인지조차 명확히 말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오히려 저러한 문학작품이나 철학이나 인류사를 통해 익히 알려진 욕망들을 H와 내가 역할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토론은 중단되고, 우리는 빗방울이 퍼뜨리는 동심원으로 가득한 호수의 표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폐간 시간(오후 6시)이 다 되어 수목원을 나와 바로 그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멀지는 않았지만 지도를 보고 찾아야 했다.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지도가 정확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식당의 간판이 없었다! 식당을 지나쳐 한 참을 더 가서 막다른 길이 나오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았다. 다시 뒤돌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더듬어 찾아야 했다. 결국 우리는 한참 동안 헤맨 끝에, 주변에 피어 오르는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의 진동으로 식당을 찾을 수가 있었다.
식당주인은 우리더러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엄포를 놓았다. 더구나 식사도중에 추가로 주문이 안 되기 때문에, 미리 여유롭게 식사량을 주문하라고 권고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한끼 식사를 하기 위해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이 허름하고 지저분한 재래식 고기 집에서의 한끼를 위해? 예약을 하려면 빨리 하라며 다음 손님을 부르는 주인 때문에, H는 일단 예약을 하고 보자고 서둘러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그냥 가기에는 아쉽다며. 식당 안에서는 변변히 앉아있을 곳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쫓기다시피 예약을 한 후 밖으로 나왔다.
1시간 반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당연히 나는 불평을 했다. 식당주인을 비롯하여, 그 식당을 과장해서 홍보하는 풋내기 블로거들이 음식문화를 망치고 있다고.
흔히 맛집이라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을 가보면, 대부분 식당주인의 오만방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은 손님들의 사랑에 겨워 아무렇게나 해도 사랑이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저 고기집의 주인은 간판조차 붙이지 않고, 멀리에서 그곳을 찾는 손님들을 애먹이며 즐거워한다. 애먹는 동안 그 배고픔과 결핍감을 보상하기 위해 손님들이 더 크고 많은 욕망을 자신에게 쏟아 부어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그렇듯이 배짱을 전략으로 내세운 건지도. 추가주문을 받지 않는 것 역시 터무니 없었다. 그것은 마치 부족한 자원을 호들갑스럽게 선점하려고 달려드는 부동산업자처럼,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과장해서 예측하고 해석하도록 부추긴다. 심지어 소비의 강요이기까지 하다. 결국 멀리에서 온 손님의 대부분은 평소보다 많은 양을 주문할 수 밖에 없다. 또 식사를 위해 식당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그 식당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식당 주인의 비양심적인 상술을 보여줄 뿐이다. 그 시간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만큼 손님이 많다면, 식당의 수입은 매우 높을 것이고, 손님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매상의 일부를 투자하여 매장을 넓혀 그들에게 갚아야 한다. 그러나 식당은 수 십 년 전에 지었을 법한 판자집 형태 그대로이다. 바닥이며, 화장실이며, 그 모든 것들이 무허가 건물처럼 허접스럽다.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딱히 앉을 곳도 없는 상태 속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부류의 인간이 과연 음식재료는 제대로 쓸지. 욕망을 과장하고 강요하는 주인의 역겨운 얄팍함을 생각 없이 홍보하고 묵인하면서, 사진을 찍어가며 선전하는 블로거와 이를 또 기다리며 참는 일에는 이골이 난 우리들. 모두가 힘을 합쳐 입맛을 떨어지게 하고 있다고.
이 합리주의적 분노와 불평에 대해 H는 결과론적 낙천주의로 일축했다. H의 생각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했다. 맛있다고 하니까,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먹어보자. 아무리 고치려고 해 봐야 고쳐지지 않는다. 힘들게 왜 내가 그걸 비판하고 괴로워하나.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안 오면 된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왔지 요식업소 감찰을 나온 것은 아니잖아.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한 표정으로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 애피타이저(appetizer)라며 오렌지 주스 한 병을 사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H의 낙천주의는 대식(大食) 취미로 뚱뚱해진 회의론자(agnosticism)의 아이러니를 조금 닮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H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고기는 식어 있었고, 양도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식당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맛을 음미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며 앉아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지저분한 행주를 들고 쟁반을 쨍그렁 거리며 눈치를 보며 부지런 떠는 종업원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뭐가 좋은지 애를 안고 식당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가정적이고 행복한 아버지-남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오버쟁이들 . . . . 기대하던 고기 맛도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직접 식당 측에서 구워서 내 왔는데, 얇은 돼지고기를 살짝 양념을 하고 구워 불에 그을린 맛이 약간 특이하긴 했지만, 너무 달았고, 또 웬만한 고깃집이면 맛볼 수 있는 흔한 맛에 불과했다. 된장찌개가 조금 맛이 있었지만 그 역시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수시간을 기다리면서 기대할 만한 그런 음식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서둘러 배설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식어빠진 식사는 10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나고 말았다.
짜증이 난 쪽은 내가 아니라 H였다. 이미 식당 당국의 모든 처사들에 대해 실망한 나는 음식 맛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에, 이 좌절된 욕망이 오히려 통쾌하기까지 했다. 식사가 끝나고 평온한 욕망의 중화상태로 앉아 있던 내 앞에서 H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식당을 둘러 보았다. 수목원에서 H와 내가 서로 대립되어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익숙하게 알려진 욕망의 대변인이 되어 논쟁을 벌였던 것 처럼, 사람들은 누군가가 말로 전달해 준 맛을 이 식당에 직접 찾아와, 터무니 없는 기다림과 음식 맛에 대한 자기 암시를 되뇌며 손수 몸으로 미디어를 재연하고 있는 듯 했다. 감각조차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포만감은 커녕 허기를 느끼며,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말이 없어서 그랬는지, H는 차선도 자주 바꾸어 가며 평소보다 거칠게 운전을 했다. 비는 그쳤지만 축축해진 아스팔트에서 바퀴소리가 추적거렸다. 서울에 다 올 때 쯤 우리는 그 고깃집을 이미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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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사실은 두 분이 그 식당에 대한 실제 욕망의 총량은 서로 비슷했던 거 아닌가해요 ^^
소개를 한 사람과 따라간 사람으로서의 입장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합니다. 소개한 사람으로서는 자기 자세를 끝까지 유지해야하고 비판적 자세를 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감정을 표면화 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해요.
제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저도 훈님처럼 약간 삐딱하고 비판적인 눈 때문에 못마땅한 걸 숨기고 있었던 반면 일찌감치 기대감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별로 실망을 하지 않았는가하면 상대방은 억지로 실망감을 감춘 만족감을 표현하더군요.거기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하고 못들은 척 넘어간 적이 있었는데 딱 그 광경이네요.^^
위에 합리주의적 비판과 불만이라고 쓰셨는데 저는 요즘 그 것 때문에 상당히실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입니다.저는 평소 잘 알던 선배와 한 팀으로 어떤 일을 하는 중인데 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합리적 불만이 수위를 넘어 입에 담게 되었는데 그것들을 단순한 불만쯤으로 여겨버리고 나를 까칠하고 여유없는 인간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에 말 꺼내기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일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요.게다가 저의 사적인 환경적 불만의 정서가 유입된것으로 상대가 자의적인 해석까지 해버리고 보면...^^ 그래서 지금은 이일을 계속할 수 있을 지 원칙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왜냐면 상대방의 일 방식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감내가 힘든 많은 소모성 피로를 가져오는데(요즘 나와 상관없이 이미 비합리적으로 기획되어 벌려져있는 일의 진행에 투입되어 좀 지독하게 치뤘습니다.계속 이런 식이라면 도저히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는데 정작 책임 소재가 있는 상대방은 그런 척하는 건지 실제 그런 건지 너무 태평스러워요.ㅎ) 합의가 어려워서...^^ 진정한 의미의 여유와 낙천성이란 뭘 의미하는 지 모르겠어요~~제 경우엔 합리적으로 일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나오는 시간으로 여유를 찾아야하는 것 같은데...ㅎ
다행히 훈님은 수목원이란 넓고 좋은 환경에서 그걸 맞으셨으니 짜증이 많이 상쇄되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알수없지만 실제 친구분은 낙천주의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분은 나름대로 자기 위안의 방식을 대별되는 욕망들의 포기를 통해 고안해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여기서 제게 생각나는 것은 우리들 습관의 문제인데 관점을 어디로 돌리는가 어떤 방식이 길들여지는가에 따라 욕망 충족의 문제(쾌감도의 문제)도 함께 가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오는 수목원 가보고 싶네요.^^
^^ 미루님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흔하게 겪는 일이지요.
사실, 한시간 반이나 기다렸던 이유는 자동차 때문이었습니다. 위에 쓰지는 않았지만, 식당을 찾기 직전에 차가 갑자기 퍼져서 카센터에 맡길 수 밖에 없었거든요. 카센터를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근처에 그 식당이 있더군요. 과묵하고 불친절한 카센터 직원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겸사겸사 기다렸던 겁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기다리지 않았겠죠.
사실 제가 불평했던 것은, 소비자들이 단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기업이나 상인의 횡포를 개인적으로 묵인하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런 곳은 구매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럴려면 윤리적 단결 같은 것이 필요하다 . . 뭐 그런 것이었죠. 너무 먼 곳을 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친구의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주어진 메뉴에서 고를 수 밖에 없는 거죠.
결국, 현실과 이상이 균형있게 공존하는 것이 문젠데, 이상주의자나 합리주의자들의 대부분은 종종 현실을 잊어버려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향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도 사실은 현실적인 존재이면서 말이죠. 책임있는 이상주의와 합리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많은 부분에서 타협적이 되었는데(특히 미국을 다녀온 후), 혹자들은 변질이라고 했지만, 그 보다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인식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많은 재야 정치가들이 그렇듯이, 책임없는 이상주의와 합리주의는 결국 비합리적이고 비이상주의적이 됩니다.
때로는 현실적 타협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타협을 굴복이나 변질이라고 생각하고 핏대를 올리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그 만큼 의지에 대한 자기불신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비오는 수목원 괜찮습니다. 뭐 특별한 건 없었지만요. 원래 숲은 비가오거나 습기가 있을 때 가면 좋더군요. . . . 앞으로는 게시판에 가볼만한 곳을 좀 찾아 올려야겠네요. 러스킨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은 글쓰기나 읽기보다는 데생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어쩌면 책 보다는 자연이나 공원이나 뭐 이런 곳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네. ^^
전 대체적으로 참을성이 상당한 편에 속하는데 비합리적으로 벌려놓은 일의 뒤치닥거리하는데는 정말이지...^^(사실 웃는게 웃는 게 웃는게 아닙니다.허리가 휘는 줄 알았습니다.정도의 문제라는 게 있어요.)친분이 개입되어 있어서 일을 선택하자면 사람을 잃을 것 같고 사람을 선택하자면 일을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제가 무슨 사건 처리반도 아니고. ^^ 왜냐면 습관적으로 일을 무심하게 준비해서 연속에러를 터트리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자면 끝없이 지적과 같은 논의를 해야하고 그러자면 사람을 잃는 것은 한국적 정서 속에선 뻔한 일이거든요.^^타협이란 어느 정도의 수준일 때 가능해요.뭐 그런 의미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우리나라가 시민사회로의 진입을 맛보기한 경우 였다는 생각을 합니다.전 진보신당을 좋아하긴 하지만요.그리고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재기 때문에좀 들떠보이는 사람이긴 하지만 진중권이 한 말이 기억에 있어요. '무슨 이데올로기를 패키지로 가져야 하느냐'라는 것인데 그건 저도 그건 그렇게 여기거든요.^^ 예를 들어 진보주의자들이 가진 생각중엔 소수자 문제 같은 경우엔 자유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캐치프레이즈가 상당량되고 복지 국가 개념에 대해서도 약간씩의 차이는 가지고 있다고 보거든요.^^
예전에 어떤 외국인이 너희나라엔 왜그렇게 다방^^이 많으냐고 해서 도시에 녹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응급으로 둘러댄 적이 있었는데 말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말이지만 일리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얘기가 나오다보니 정치(?) 얘기로 빠졌네요^^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뭐라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화를 내거나 하지 마시구요,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시는건 어떨지. . .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반은 해결된 것 같은데. . . 하기야 대화의 의지가 없거나 대화가 안 되는 사람도 있긴 하죠. 일이든 뭐든 기본적으로 관계가 가능하려면 의지가 있어야겠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위계가 필요한 이유가 그런데 있지 않을까 싶네요. 기업이 아무리 효율성 어쩌고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군대식 위계구도를 고수하는 것도 . . .
서로 안 맞는 경우도 있겠죠. 어떤 사람과 함께하면 기분이 좋거나 편안한데 반해, 어떤 사람과 함께하면 불쾌하거나 불안하거나 화가나거나 질투심이 생기거나 할 때가 있습니다. 기질이 안 맞아 같이 일하는 것이 껄끄러울 때도 많구요.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안 맞는 것이겠죠. 이런 경우라면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것이 정답이다"가 제 주의입니다만. . . 깊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얕은 관계만 유지해야할 사람이 있는 것 같더군요. 잘 판단하시길 . . .
앞뒤 구분을 하든 안 하든, 낙천주의자와 함께 공존하는 법은, 제 경험상, . . 함께 낙천주의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던데요. . .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 .
결정권이 없으시면 오히려 더 유리하죠.
수목원이라면 아마도 이번주 토요일이나 가능하겠네요. . . 예약은 잊지 마시구요^^
ㅎㅎ, 그래서 그만두고 놀 때나 낙천주의적으로 함께 하려구요.^^
바람이 아우성이네요. 모처럼의 태풍이라 그런지 저 소리가 후련해요.
가을 맞이 하는 것 같습니다.숲에 부는 비바람 생각도 나고...
학기 초라서 바쁘실텐데 건강 잘 챙기세요.^^
새벽에 바람이 많이 불어 근처 나무가 송두리채 뽑혔습니다.
아침시간 알람을 맞추어 놓았는데, 아침에 울리질 않아 늦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오늘이 첫 수업인데, . . . 확인해보니 시계가 꺼져있네요. 아마도 바람 때문에 정전이 되었었나 봅니다. . . 어쩐지 잠에서 깨었는데, 충분히 쉰 것 같은데도,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아 의아해 했습니다. 알람은 원래 불청객이어야 하는데, 오늘은 기다려지니 횡재다 싶었죠.^^ . . . 웬걸! 서늘한 아침에 진땀 뺐습니다.^^
아침에보니 덩치 큰 프라타너스들도 가로에 쓰러져있더군요.
대단한 새벽이었어요.
일하다가 혼자 남게 되었어요.자정 넘게 있었던 적이 없는데...그런데 그만 갈까하고 잠시 화장실 다니러 나온 새에 문이 잠겨버렸네요. 오도가도 못하고 이 심야에 누굴 깨울수가 없어 부르지도 못하고... 독립건물이라 관리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ㅎ,별일이 다 생기네요.^^
다른 방 문을 혹시하고 밀어봤더니 열려서 들어와서 컴퓨터 보고 있어요. 참 하릴없는 기분입니다.^^ 빨리 빨리 뒷정리 좀 하고 그만두려고 늦게까지 있었더니 이 무슨 복인지...앉아서 밤새게 생겼어요.후~유!^^
그런데 재밌는 것이 사무실 문이 잠기고나니까 이상한 해방감 같은 것이 한편으로 느껴지네요.중압갑이 컸었나봐요. 강제로 쉬게된 그런 기분입니다.
갇힌 김에 푹 쉬셨습니까? ^^
저도 그런적이 있었습니다. 방법이 없더군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미리 체크 안하고 그냥 문을 잠근 죄로 새벽에 보안직원을 깨웠습니다. 그 후론 꼭 와서 체크를 하더군요.
그 때 이후 이미 출입보안카드를 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체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는데도요. . .
죄송하단 생각이 들어요 ^^
요소요소에서 머리에 잡혀드는 생각들을 마땅히 어디서 토로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렇게 됐네요. 아는 사람들 범주안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 그 일터나 사람들에 대한 흠집으로 들릴 수도 있어서.
이젠 그만 이 얘기 접겠습니다 ^^
^^ 모르겠어요.
뭔갈 썼다가 지웠어요...
굳이 비판적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도 자신의 시간, 체력, 노력들이 과부하와 소모성으로 날아가게 하는 무계획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에 화가 났겠지요.
안하면 되지만 제 성격상 일단 발을 들였는데 눈앞에 쌓인 일을 못본척 하진못합니다. 실은 지금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안하고 넘어갈 방법이 없는데 그걸 감당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 단체나 사람이야 좋겠지요만 일을 하지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보면 이건 무슨 재난입니다.만일 시간이나 상황이 촉박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중간에 저도 도망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었어요.누가 감당해도 감당해야하는 상황이라서...
객관적으로 보아도 역시 윤리적인 문제를 좀 느낍니다.
아무리 내 성격이 개입되어 있다하더라도(저는 실제 구멍 투성이 인간입니다.남의 일을 할 때는 책임감 때문에 좀 까칠하지만) 역시 일종의 피해의식이 생기거든요 ^^ 누가 과연 주체인가라는...^^ 자신을 주체로 하고 살 때 감당해야할 책임의 선은 어디까지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의 문제를 그렇게 쉽게들 생각하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뭐 그런저런~~~ ^^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뭔가 또 떠오르겠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무너가 좀 다른 생각이 들면 덧글 또 남기겠습니다.^^
이야기 마감해드리겠습니다. 좀 쓸쓸해요.
내가 그만두겠다고 한데 대해서 선배는 배신감과 상실감 후련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이지 말고 적당히 지내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실제 그런 천한 말들을 입에 올리더군요) 아무런 답을 하지도 않았고 누구의 탓을 하지도 않았어요.그것은 아마도 심리적으로 그녀에게 곤란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무의식은 느끼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최후로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유는 우연히 지나며 듣자니 내가 그만두는 문제를 여럿이 둘러앉은 회의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그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녀 이야기인즉슨 내가 힘든 이유는 일을 나눠 할 줄 모르기 때문이며 독단적으로 자기를 월권을 하기도 하고 완벽주의자라서이고... 뭐 그런 요지였어요,^^ 열려있는 문 바로 옆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않나더군요. 그녀는 아마도 내가 그녀 때문에 그토록 더 힘들었던 것과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대외적으로 자신의 연이은 과실들에 대해 말하지 않으리란 걸 제 성격을 통해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심지어 판매가격조차 잘못알아서 단체에 실제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하기까지 했지만 그것조차 적당히 해결해 주길 바랬고 그래서 저는 그 상황을 밝히지를 못했습니다.하지 않았습니다.(이 지점에대해서는 저도 도덕적인 문제를 느낍니다.하지만 제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남아있는 서류들 때문에 언젠가 그것이 문제될 경우 제 책임이 되겠지요.이제와선 후회가 됩니다.그녀가 그 때가서 자기 과실이었다는 걸 말할 것 같진 않기 때문입니다.그 순간까지 그녀에 대해 최소한의 어떤 지점을 저는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그녀에게 내 존재가 점점 힘겨워졌으리란 걸,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 변명을 만들어냈어야만 스스로도 위안이 되었으리란 걸 이해합니다만,
씁쓸했어요.완벽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습니다.아무 기대감이 없어졌고 가엾음이 느껴지고 상대하기가 싫어졌어요.그녀는 한두시간 내게 낯가림을 하더군요. 그러고나니 스스로도 무의식중에 어색하고 불편해진 거지요.자신을 간파하는 건 늘 스스로이니까요. 제가 없으면 그녀는 다시 탄력적인 사교성인지 (정치성인지)를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발휘할 수 있겠지요.간지와 처세술의 발달. 천박한 생존술의 발달.그런 실체를 이전엔 알지 못했습니다.
이게 이 이야기의 끝입니다.
쓸쓸해요^^.
그래요 . . .^^
잘 알고 지내던 선배님을 그렇게 적을 묘사하듯이 하시는 걸 보니 힘드셨나 보네요. 이제 끝났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다 끝났으니 더 이상 탓을 하거나 나쁜 감정은 버리시길 . . .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완벽주의자들 밥맛임~~ 완벽하게 일하는 사람 거의 없어, 그들도 어딘가 한쪽이 헛점이 있지. 이들은 괜히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에 불과해!! 혼자 잘난척 완벽한척이면서, 자기가 잘못할때는 어찌나 정당화를 해대는지... 서로 서로 부족한 사람들. 힘빼고, 서로 도와가며 일해야 하는 것 아니것소!
사족: 누가 한 말인데, 주변 사람 3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하고 안 맞으면.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거라고. 내가 바껴야 한다고.
네...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그러니 열은 식히시구요...^^
ㅎㅎ, 크렘님은 누구 아래서 일하거나 책임을 감당해 본적이 없는 분 같군요.
님께서 누군가의 구멍을 허리가 휘도록 마구 메꿔주지 않으면 안될 때 어떤 기분이 될 지 궁금하네요.님의 애인이라도 감당이 될 지 모르겠군요 ^^ 이 세상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늘 따로 있는 것이고 적당한 순간에 적당히 좋지 않은 사람이란 없는 법입니다.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발견해 본적이 거의 없으니 날 바꾸어야할 필요는 전여 없겠군요 ^^
크렌님은 적당히 도와가며 적당히 위로하면서 적당히 가축적으로 잘 사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하도 씁쓸해서 어쩔까 했는데 마침 잘됐습니다. 댓글 좀 지웁니다. (바로 위엣 것이 안 지워지네요. 패스워드를 잊어버렸어요. 훈님께서 가능하시면 바로 위 제 댓글 좀 지워주십시오)
죄송합니다 훈님.
쓰셨던 댓글을 그렇게 모조리 지우시면, 함께 댓글을 단 사람이 낙동강 오리알이 됩니다...^^
거의 10개에 가까운 글을 지우셨네요?! 신중하게 쓰시길 권합니다...^^
결국,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고 합당한 근거가 있다해도,
화와 충동은 모든 것을 지우고 부수어 원점으로,
완전한 무(無)로 되돌리는구나!
그 근거와 합리조차도...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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