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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31 힘들이지 않고, 심지어 즐겁게 글을 쓰는 방법

글의 실체는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 혹은 계획 아니면 비젼? 흔히들 글을 쓰는 일이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자연과의 투쟁에서 오는 농부의 고달픔에 비유하기도 하고, 겁없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에 견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쓴다고, 그래서 위대한 것이라고 말이다. 하기야 고통스럽지 않은 노동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컵을 잃어버린 액체의 긴장처럼, 불안한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어야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글쓰기를 고통스러운 행위라고 보는 이유는 글이 저자의 계획의 산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신처럼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갖추어야 할 흐름이 있다든가,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든가, 견뎌내어야 할 의무가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글의 본질은 그 보다는 조각난 생각들에 있지 않나 싶다. 머릿 속에서 언뜻 언뜻 들었던 통찰, 몽상적인 상태 속에서 떠올랐던 어떤 의미, 예기치도 않았는데 갑자기 우뚝솟아 오르는 본질적인 이미지, . . . 체계나 구조 없이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미는 부스러기 섬광들! 누구에게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든, 받은 사람이든,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증오하는 사람이든. 진정으로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들, 우리의 작은 관계와 행위들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해주고, 그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마음 속의 아포리즘들, 가령, "그에게 그런 면이 있었네?!"하는 식의 질문이나 통찰 말이다. 작가들은 이러한 섬광들을 기록해둔다. 단어 하나, 점 하나, 숨소리까지도. 노트 말이다 노트! 삶을 향유하지 않고 그러한 노트가 가능할까?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은 바로 이 섬광들로 채워져 있다. 섬광의 대가인 니체의 죽음은 질병이나 육체의 노쇠함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섬광으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혹은, 부지런한 노트가 펜을 쥔 손에 안겨준 심한 경련이 그 벅찬 가슴과 서로 장단이 안 맞았는지도). 작가들은 긴밀한 구성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신처럼 완벽한 어떤 구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본래적으로 타고난 체계화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 자그마한 섬광들에 민감하고, 그 작은 아포리즘을 잠깐 동안 앉아 노트할 정도의 근면이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는 나중에가서 그 조각들을 그럭저럭 짜맞추어가며, 그들 사이 사이에 아교와도 같은 통로들을 만들어서 책을 낸다. 그 노동은 의외로 쉽다. 섬광들만 제대로 기록되어 있다면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세계와 국가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글쓰기의 고통은 게으름을 한꺼번에 보상받으려는 헛된 욕심에 대한 자연의 처벌 같은 것이다. 그러한 조각들도 마련하지 않고, 삶 속에서 아무런 섬광도 느끼지 못한 채, 혹은 나타났던 섬광들을 강렬하게 만들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한 하찮은 점들로 소멸시켜버리는, 그렇게 성의없는 사람들에게나 글쓰기의 고통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당장에 백지를 올려놓고 펜을 들어보라.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먹물이라는 사실 밖에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처음부터 국가를 만들 수 없고, 처음부터 우주를 만들 수 없듯이. 만일에 신이 하루 아침에 세계를 창조 하였다면, 그의 필력은 정말이지 끔찍하지 않았을까? 글쓰기의 고통이란, 삶을 향유하지 않고, 예를 들면, 원고료와 생활고에 떠밀려, 혹은 시험을 보기 위해(논술이라고?), 삶을 빼앗긴채, 섬광도 없이, 그 작은 빛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어떤 질서와 국가와 체계도 없이, 갑자기 하나의 왕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망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향유를 배우라! 글쓰기는 재주가 아니라 태도이다. (베르칸트가 말했듯이,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노력을 해도, 속물들 속에서는 결코 진정한 글이 써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