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기사에 통계청의 한 리포트가 보도되었다. 앞으로 잘 팔릴 상품의 목록들이 그것인데, . . . "소비자의 욕구와 마음을 꿰뚫어 보는 상품"이라며 . . . 멋도 모르는 풋내기 기자들은 무슨 대단한 정보라도 얻은 듯, 라디오나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수회에 걸쳐 싣고 있다.
2007년 1월 23일자 KBS 뉴스 기사
http://news.kbs.co.kr/article/economic/200701/20070123/1288618.html
저 기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이렇다.
1. 사람들이 출퇴근 이동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므로 그 길어진 무료한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해주는 상품이 잘 팔릴 것이다(DMB TV, PMP 등).
2. 또 20대 인구의 절반이 아침을 굶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간단한 아침을 제공해 주는 상품이 잘 팔릴 것이다(샌드위치, 조각케잌을 파는 커피 전문점 등).
3.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므로 건강을 고려한 식품 상품이 잘 팔릴 것이다(지방을 뺀 우유, 칼로리 낮춘 면 류 등)
4. 이 외에도 아주 많은데, 가령 범죄에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을 위한 상품, 일하는 엄마를 위한 상품, 피곤한 직장인들을 위한 상품, . . .
저 내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떤 구조가 보인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 무료한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므로 DMB TV가 잘 팔린다.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졌다, 그러므로 건강식품이 잘 팔린다, . . . 이것이 상품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전모이다. 즉,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 현실인식 --> 대안. 기업주들이 상품광고를 통해 말하는 모든 메시지의 요체는 바로, "당신께 대안을 드립니다"이다. 그러나 그럴까? 어떤 대안?
좋은 상품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상품들도 있다. 어떤 상품들은 꼭 필요한 것도 있고, 어떤 상품들은 필요하지도 않은데, 필요를 강요하는 상품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품이 되었든, 상품에는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나쁜 성격이 있다. 기업이 상품을 만들면서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불편함이나 고통을 정말로 없애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불편과 고통을 미끼로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돈이 먼저이다 보니까, 잘 팔리지 않으면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 가령, 아침을 굶는 사람들은 도시에도 있고, 변두리 지역에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직장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 보다는, 멀리까지 움직여야 하는 변두리 사람들이 더 굶기가 쉽다. 하지만, 변두리에는 사람 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상인들은 아무리 사람들이 아침을 굶어도, 아침 대용 상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많이 몰려드는 도심지 사람들만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이 상품이다.
거기서 더 생각을 해보면, 상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성질이 있다. 상품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현실을 바란다. 아침을 굶는 사람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드는 상인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굶기를 바랄 것이다. DMB TV를 만드는 기업주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길 바랄 것이다. 심지어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화장실에서도, . . 온통 무료한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랄 것이다. 범죄에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을 위한 상품을 만드는 상인이 있다면, 그의 천국은 바로 범죄의 천국이 아닐까? 뼈빠지게 가사일을 하는 엄마들을 위해 어떤 상품을 만드는 이가 있다면, 그의 목적은 그 엄마들이 계속 계속 뼈빠지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상품의 이와 같은 나쁜 성질 때문에, 백신을 만드는 회사가 바이러스를 만들고, 보안회사가 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는 전쟁도 대신 해주는 업체들이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아! 자본과 상품의 아이러니여!
광고들은 자기네 회사가 만드는 상품이 우리들의 고통과 가려움을 긁어주고 쓰다듬어 줄 것처럼, 갖가지 교태와 입발림 소리들로 우리를 유혹하지만("삶과 행복을 드립니다~!"), 실상 상품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위선 뿐이다. 비유적으로 말해, 상품이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바로 코앞에서, 슬픈 표정을 하며 다가온 상인이 제공한 수의(壽衣) 같은 것이다. 그것은 결코 도움이 아니다.
상품은 우리가 맞닥드린 현실을 정말로 현실로 만드는 마력이 있다. 상품이 만들어지는 순간, 현실은 당연한 것으로, 기정 사실화 된다. 피곤한 직장인을 위한 상품은, 그 자체 이미 직장의 피곤함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범죄의 공포를 느끼는 여성을 위한 상품은, 그 자체 이미 범죄 사회에 대한 암묵적인 묵인을 선포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에게 수의를 구매하게 함으로써, 그에게 죽음을 선포하듯이 말이다. 그 뿐만 아니라, 기업은 상품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의 현실을 공고히 하고, 나아가 잘못된 현실의 공범이 된다. 업주들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러한 현실이 더 강화되기를 바라고, 또 그러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 투자까지 감행하는 인간들이다. 그 같은 냉소적인 현실인식 위에서 제시하는 대안이 치유나 약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바라보는 방식은 결코 현실의 직시가 아니라 현실의 악용이고, 현실의 거짓이고, 궁극적으로는 권력 관계가 만들어낸 왜곡된 현실의 기정사실화이다. 그러한 위선이 바로 상품이 출시되는 순간, 구매하는 순간, 그 교환 행위와 교환된 물건 속에 고스란히 현존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기자들은 이러한 실상을 똑바로 알고 제대로 판단해서 보도를 해야한다. 최소한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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