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주? 아니 수 개월 전 어느 날, 마치 헤롤드 핀터(Harold Pinter)의 난입극을 보는 것처럼, 개도 아니고 돼지도 아닌 기묘하게 생긴 두 명의 짐승들이 난입해와 꽥꽥 거리며 울부짖는 통에 잠을 설쳤다. 그 울부짖음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쌓여있던 무엇인가를 내 뱉는 성토 같아 보였고, 어떤 점에서는 애처로워 보였지만, 울부짖음의 덩어리가 가지런히 분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무지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는지, 무엇을 내뱉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카프카의 동물들처럼, 그 소리는 그냥 거기에 "어떠한 고통의 울부짖음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분절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동물들은 또한 분절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므로, 나 역시 그 울부짖는 소리에 아무런 응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시도를 해볼까 했지만, 그들은 들을 수 없을 것이고, 오히려 내 소리에 자극을 받아 더 꽥꽥 거릴 것 같았다. 단지 그 소리가 잦아들어 평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울부짖음의 본질은 그 동물 자신이 왜 울부짖고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울부짖음의 코믹함이란 바로 울부짖음 자체가 울부짖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 울부짖는 이유를 스스로 알게 될 때, 울부짖음은 멈춘다. 그것을 알게 될 때까지 울부짖음은 계속되거나, 아니면 몽둥이나 어떤 두려움 때문에, 혹은 대부분은 스스로 열기가 빠져 사그러들 뿐이다. 사그러들고 나면, 마치 발광을 하다가 꽁무니를 빼는 똥개나 이유도 없이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쳐버린 어린아이처럼, 머쓱한 표정으로 갈길을 가는 것이다. 울부짖음을 들으며 내가 혼란스러워지거나 정념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 할지라도, 울부짖음에 화가 나지는 않는다. 단지 성가시거나 당혹스러울 뿐이다. 고통이 있다면 어떤 크고 작은 상실감 이랄까? 그러니까 마치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고를 당해서 내 물리적 몸의 한 부분을 잃었다든가, 물건을 잃어버렸다든가, 하던 일을 방해를 받았다든가 하여, 돌이킬 수도 후회할 수도 없이 벌어진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종류의 상실감. 혹은 본의 아니게 어떤 고약한 소동에 휩쓸리고 난 후의 당혹감.
울부짖음을 듣고 있자니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다가 난데없이, 혹은 내가 어쩌다가 본의 아니게 개를 자극하게 되어, 개가 달려들어 나를 물었다고 가정해보자. 충동을 누를 수 있는 이성의 힘이 우세한 사람이라면 말을 하거나 달랠 수 있겠지만, 개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개의 충동은 오로지 몽둥이 외에는 막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몽둥이가 주변에 없다면, 혹은 몽둥이를 집어들 겨를도 없이, 막무가내로 달려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살기 위해 나 역시 개가 되어 악착같이 물어뜯고 싸워야 할까? 아니면, 힘이 닿는 한에서 적당히 피하고, 적당히 물리치고, 적당히 대응하면서 최대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할까? 아니면 개의 충동이 누그러질 때까지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할까?
분절 없는 정념에 사로잡힌 울부짖음은 어떤 덩어리처럼 나오기는 하지만, 항상 비틀려 있고, 가운데가 뚝뚝 잘려져 나가 있으며, 파편들이 나뒹굴고, 하나의 울부짖음이 다른 울부짖음으로 파고들어, 분절의 모든 가능성들을 차단해버리고, 중간과 중간을 뚝 잘라 부스러기들로 만들어 버린다. 정념과 충동은 모든 자연을 부스러기와 파편들로 향하게 하고, 또 모든 자연을 조각 내고, 그렇게 잘려져 나간 부분대상들에 모든 총력을 기울여 그 대상을 숭배한다. 그래서 분노는 맥주병이 되고, 원한은 칼날이 되고, 슬픔과 억울은 고층빌딩의 난간이 된다. 이것이 바로 충동이 이들을 소통하지 못하게 하는, 단지 직접적 가해, 공격, 상처들만 나뒹굴게 하는 이유이다.
생명에 위협이 느껴진다면 아마도 나 역시 본능적으로 악착같이 물어뜯게 될 것이다. 이 위협과 공포에 대한 본능적 반응 때문에, 화와 충동에는 항상 약자의 가련함이 있다. 저 동물들의 울부짖음 역시 어떤 공포와 고통의 산물이 아니겠는가?(그러나 궁금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모든 자연적 공포가 말살된 이 대도시에서!) 결국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을 때, 정념에 사로잡힌 혼란에 뒤섞이지 않으려면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는 수 밖에 없다. 소란은 반드시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정념의 혼란은 지속적이지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무게도 없다. 그것은 한 순간의 끓어오르는 수증기의 부글거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은 속을 비우고 난 공허감, 과거 오래 동안 삭힌 냄새를 풍기며 몸 밖으로 빠져나와 버린 질척한 국물, 충동의 소란이 휘젓고 간 후 잘려져 나간 부스러기와 파편들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소리가 아무리 애처로워 보이고, 당장에 임박한 문제가 그들의 고통을 누그러트리는 문제라고 해도, 결코 그들과는 뒤섞일 수도, 뒤섞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서둘러 도망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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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04 동물의 울부짖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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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각심이 다시 생기는 글이네요.개인적으로요.
저도 때로 게시판 도배를 해서 민폐드리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참 저 훈님 글 몇개 슬쩍 카피해 갔습니다.
이제 책도 좀 읽고 풀어진 머리속 테이프를 좀 당겨줘야할 거 같은데 노니까 참 좋아서 ^^ 잘 안되네요...
뭐하며 노시는지, 좀 가르쳐 주시는 건 어떨지요..
암기해놨다가 나중에라도 써먹게요. . .
노는거 하나만 잘 해도 성공한 인생 되지 않나 싶은데요^^
노는 시간의 반은 뒹굴 뒹굴 뭘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다 쓰구요. ^^ ㅎㅎ
그중 일부는 노래듣고 잠자고 동네 마실 다니고 인터넷 사이트도 뒤져보고요. 멀리 가지도 않아요.
근처로 온다고 하면(요게 중요하죠^^절대 멀리 안가요.장기 여행이나 가면 모르되) 친구도 만나죠. 그런데 그냥 재밌어요 ^^* 스스로 어떤 경지같아요. 뭘 할가를 궁리하는 것도 거의 놀이에요.특별히 뭐 재밌는 게 없을까 하는 궁리는 안해요.다 재밌거든요. 길에서 지나다 동네 호프집 (제 단골집인데요. 친구들 오면 그리로 가자고 해요. 번화가에서 살작 비켜있는 데다가 집에서 가깝거든요.대개 전형적인 작고 낡은 집인데 낡았지만 주인이 깔끔한 치킨 호프집이죠) 강아지한테 인사한거나 새로 바뀐 동네풍경이 뭐가 있나 본다거나... 그러면서 저거 담에 사진 좀 찍어야지 한다거나...
괜히 물어보셨지요? ^^*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모르긴해도 저 동물적 울부짖음들이 난입한 꿈을(제가 제법) 많이 꿔본 경험과 상관관계가 없지않아 있는 거 같기도 해요. 제게 강물같은 평화요~~^^
다시 정신들 날이 오겠죠 ^^
얘기를 듣자니, . . 환경이 좀 바뀌신 것 같은데요. . .
비용은 어떻게. . .^^
가로 놓였던 문제들은 청산이 다 되셨나보네요?!
그게 그러니까 ^^ 비용이란 것이 거의 들지 않아요.ㅎㅎ
가로놓인 문제들의 지속적인 청산을 위해 늘 '뭘할까'를 궁리하지만 거기 목매달진 않아요. 내가 문제풀이를 아주 잘 해치우^^리란 영웅적 의식도 없구요.일할 때 일하면 되고..
틈만 나면 자신을 잘 대접하는게 참좋아요.제가 믿음직해도^^보이거든요.
흐이구...쑥스러워서 글 조정 좀 했네요. ^^
분절없는 정념의 위험성이란?
과도하고 극단적인 상황설정을 동반하여
문제의 틀을 짜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침
자연스레 사후성(Nachtraeglich) 결론 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