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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4 화장과 아름다움

마술사의 눈속임에 당하지 않으려면, 두 눈을 크게 뜨고 그가 보여주는 보자기와 손동작을 뚫어지게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마술사는 더 수월하게 우리를 속일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마술이란 우리 믿음의 완고함과 지각의 편협을 이용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정 부분에 집중하는 동안, 마술사는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장기판을 슬쩍 바꿔치듯,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자연적 질서를 뒤바꾸어 버린다. 한쪽 손에 든 모자를 유심히 보는 동안, 어느새 비둘기는 다른 쪽 손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편향된 집중력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불균형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마술은 우리의 편협한 집중행위가 바로 우리 자신의 믿음에 뒤통수를 치게 함으로써 우리를 속인다. 지각의 편협이 더하면 더 할수록, 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뒤통수의 충격은 더 심해지고, 마술의 신비는 더 깊어진다. 그렇게 우리 자신의 속임수가 꾸며놓은 신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넋이나가 있는 모습을 신이 바라본다면,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진풍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외모나 미모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바로 그 마술과 유사한 어떤 속임수가 있는 것 같다. 화장이나 장식으로 외모를 연출하는 경우가 좋은 예이다. 얼굴과 몸 주변에 갖가지 장식을 붙이고 색을 칠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얼굴과 몸의 진상을 그 장식과 치장에 분산시켜 분배함으로써, 그 사람 자체가 짊어져야 할 자연적 부담을 그 도구들이 떠맡도록 고용 했다고나 할까? 가령, 목이 짧은 사람은 가슴이 패인 셔츠를 입는다든가, 엉덩이가 크고 처진 사람은 뒷주머니가 큰 바지를 입는다든가, 허리가 굵은 사람은 벨트를 늘어뜨린다든가, . . . 립스틱, 아이섀도, 헤어스타일, 귀걸이, 자극적인 색채들, . . . 그 모든 테크닉들은 마치 일군의 군대처럼 덕지덕지 몸에 달라붙어 그 사람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배열된다. 우리는 그렇게 고용된 자극제들에 눈을 빼앗겨 버린다. 틀림없이 전에는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예뻐졌다. 얼굴이나 몸을 성형으로 바꾼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화장법, 액세서리, 옷, 제스처, . . . 그것들이 한꺼번에 연대하여 그녀에 대한 나의 시선을 분산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그녀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과 달라졌을 뿐.

그녀가 장식을 붙이고 화장을 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모습이 구체적인 실제가 아니라 막연한 전체로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못생긴 다리의 그녀가 치마를 입고 와서는 이렇게 말한다: "다리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주세요!" 사실 우리는 사물을 막연한 전체로 보아야만 그것을 견딜 수가 있다. 질척거리고 끈적이는 수분과 갖가지 벌레들 그리고 기생충이 뚫어놓은 구멍들로 꽉 찬 섬유질 덩어리가 아니라, 그냥 막연한 하나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듯이, 혹은 음식물 찌꺼기와 박테리아로 가득한 잇몸이나 치아나 구강이 아니라 그냥 아름다운 연인의 입술에 입을 맞추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화장품이나 장식물은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반영한다. 장식물과 화장품을 통해 사람들은 산만해지며 막연해진다. 그것들에 주의를 빼앗겨 그 사람의 실상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리는 와중에 말이다. 어떤 점에서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산만함, 태만, 혹은 무성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종의 태만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조화로운 것, 보기 좋은 것, 균형이 있는 것, 따라서 힘이 덜 들어가는 것, 즉 쾌적한 상태를 유발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주는 쾌적함의 실체는 우리의 능력들(감성, 지각, 이성, 감정 등)이 조화로운 협력을 위해 힘의 안배를 고르게 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힘겨운 고통이 약화된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불규칙하고, 일그러져 있고, 균형이 깨져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두 눈은 항상 모양이 다르다. 몸의 왼쪽과 오른쪽 역시 균형이 깨져있다. 모든 사물들은 대칭적이지 않으며,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 그럭저럭 균형을 맞추어가며 힘겹게 버티고 살아갈 뿐이다(그런 의미에서 상품은 그 형식뿐만 아니라 실제 외양에 있어서도 관념의 구현체 혹은 추상물임이 분명한 것 같다). 르느아르(Pierre-Auguste Renoir)가 자신의 회화의 원리로 삼은 것이 바로 이 "일그러짐(irregularity)" 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 모습이나 눈동자는 초점이 뚜렷하지 않아, 마치 움직이면서 셔터를 누른 사진처럼, 어딘가가 비뚤어져 있거나 일그러져 있다. 그 역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일그러져 있다고 생각했다. 세변의 길이가 똑같은 존재라든가, 한 점에서 동일한 거리의 자취와 같은 존재는 현실 세계에는 없다. 색 대비 최대치의 선명한 존재는 우리의 패러노이드가 만들어 놓은 윤곽선에 대한 환상일 뿐이다. 모든 것은 매순간 변하고 있고, 어느 하나 정지되어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고르게 분포된 균형이나 조화나 대칭이란 원리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 일그러진 사물을 지각하고 이해하려면 우리의 힘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달리는 사자를 쏘아 잡기 어렵듯이, 곡선을 자로 재는 일이 힘겹듯이, 어딘가가 돌출되어 있거나, 비뚤어져 있거나, 움직이거나, 사선이 그어져 있는 사물들을 파악하려면, 매번 다른 방식의 척도가 필요하다. 또한 매순간 다른 체계와 규칙과 방법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러니 손쉽게 사냥을 하려면 그 실제의 사자를 가상의 점으로 찍어 좌표와 궤도를 설정해야만 할 것이다. 땀을 흘리고, 헐떡거리며, 근육 운동을 해대며, 매순간 변덕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저 일그러진 동물을 가상의 매끈한 그림으로 옮겨놓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 자신이 사자에게 짜증을 부리며 헐떡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실상을 아름답고 쾌적하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일그러진 실상들, 축 쳐진 엉덩이와, 주근깨투성이의 얼굴과, 땀구멍이 깊이 패인 주름들을 들키지 않도록, 사람들이 그 약점들에 집중하지 않도록, 화장품과 향수를 짙게 뿌려, 사람들로 하여금 태만을 유도해야만 할 것이다. 균형미라는 것도 이렇게 생겨난다. 조화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쾌적한 감정 속에서, 모든 돌출부는 집어넣어야 하고, 푹 꺼진 부분은 마름질로 고르게 펴져야 하고, 삐딱한 사선들은 정직선으로 바로잡혀야 한다. 그리하여 어느 것에도 특이한 시선을 보내지 않도록, 힘을 분산시키고, 연쇄고리들을 만들고, 부분들을 종속적 연대로 편성하여, 막연함을 유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beauty)"이다. 아름다움이란 적당한 외면이며, 냉소이며, 무성의이며, 무엇보다도 종속이다. 그것은 실상의 적나라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실눈을 뜨고 바라본 광경이며, 눈을 감고 외치는 열광이다.


불규칙하고 일그러진 사물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강요된 노력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불쾌하고 힘겹고 고통스러운 어떤 것으로 경험한다. 그에 대한 거부가 그 사물을 추하게 보이게 한다. 못생기고 추한 존재의 근원은 바로 실상을 대면하는 우리의 태도, 즉 그에 대한 우리의 태만과 무성의와 두려움과 무능력에 있다. 쾌적함에 대한 환상이 커질수록 불쾌한 것은 많아지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증식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삶은 견딜 수 없다. 균형 잡힌 신체, 안정된 삶, 질서가 잘 잡힌 사회, 조화로운 관계 등, 우리를 쾌적하게 해줄 것 같은 막연한 이상이 지나치게 커질수록 화장의 마술은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실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 우리 자신의 속임수와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뿐이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