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주 특별한 이모가 있다. 깊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연민과 같은 동요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이모와 내가 마지막으로 대면을 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이 단숨에 전혀 다른 것으로 지각되는 사춘기였으므로, 중학교 다닐 때 보았던 이모는 어린 시절 마음속의 이모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만약에 이모를 지금 보게된다면, 내 마음속의 그녀는 한꺼번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내 마음에서 끄집어내어 실존하는 것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다. 마음속의 이모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이후에 한 번도 만난적은 없지만, 아직도 이모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마 지금은 환갑이 넘어 할머니처럼 흰머리가 많아졌을 테지? 온 몸에는 세월에 긁힌 흉터들로 가득차 있을 것야.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생기에 찬 처녀이다. 나는 아주 어린 꼬마였고, 그녀는 그녀의 생애 가운데 가장 화사했을 처녀시절이었을 테니. . . .
그녀에게 쓰는 내 마음속의 편지는 이미 하나의 회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아주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쥐어져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일까? 이모가 가꾸어놓은 깔끔한 뒤뜰에서 함께 찍은 흑백 사진! 채송화가 많은 뜰에 대한 기억 탓이었는지, 그 사진은 흑백이었음에도 언제나 울긋불긋하다.
그 사진이 찍힌 것은 순전히 이모의 유혹 때문이었다. 그녀의 처녀시절에 나는 어렸으므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들을 더듬어 보면, 그녀는 언제나 외출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모습도 그랬다. 철모르는 나에게 그녀는 어린아이의 콧소리를 섞어가며 들뜬 어조로 말을 붙이다가, 갑자기 일어나 내 주변을 걷기도 하고,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 몸짓과 목소리는 연극배우처럼 가벼웠기 때문에, 나는 그 자태들이 내는 포물선 위에 실려, 그녀가 가리키는 이곳 저곳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내게 사진을 찍자고 하고서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한껏 차려입고 뒤뜰로 나서던 걸음걸이. 항상 보아왔던 걸음이었지만, 그 뒷모습은 언제나 달라 보였다. 나는 그 사뿐 거리는 뒷모습에 취해 현기증이 나면서도 괜히 신이 나서 따라다녔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내 생애에서 입을 가장 크게 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갸름한 얼굴. 안쪽으로 말아 접은 두 입술. 카메라 렌즈를 주시하는 얇은 두 눈. 멀리 있는 연인에게 선이라도 보일 듯이 다소곳이 기울인 고개. 그 사진 속에 있는 이모는 무엇인가에 도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보아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 답답한 시골에서 살고 있는 모든 처녀들이 가졌을 법한 마음속의 동경을 품으며, 이모의 막연한 봉오리는 하루하루 영글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동경은 일종의 경련(痙攣)이었던 것 같다. 어찌해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고압적인 기침소리와 나른한 시골생활 . . . 그 지루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비틀어가고 있는 나른한 경련. 그래서인지 이모의 눈 속엔 언제나 저 너머가 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할 때조차도 그녀의 눈 안에는 내 뒤에 있을 혹은 그 시골의 깊은 산 저편에 있을 어떤 곳이 들어차 있었다. 특별히 나갈 일도 없었음에도 그녀는 언제나 외출복 차림이었다. 불편하지 않은가 라고 물어보면, 들킨 사람처럼 살짝 화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모는 늘 내게 서울 얘기를 해 주었다. 서울에 가면 코스모스 백화점이라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계단이 저절로 움직인단다?! 너 커피라는 것 먹어 본적 없지? 아이스크림이 뭔지 아니? 그러다가 살금살금 다락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한참 뒤적이다가,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쵸콜렛 사탕을 집어들고 깔깔거리며 나를 활짝 놀라게 한다. 정말이지 신나는 날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 들뜬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달콤한 사탕이 아른거려, 너무나 무섭고도 싫었던 헛기침 소리도 잊은 채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하고는 하였다.
내가 서울로 이사오기 얼마 전부터 이모는 마치 자신이 이사라도 할 듯이 들떠 있었다. 우리는 답사를 핑계로 할아버지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고 서울로 나들이를 하였다. 맨 먼저 가본 곳은 코스모스 백화점이었고, 나는 거기서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 보았다.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 위에서 잔뜩 겁을 먹고 난간을 움켜쥔 채, 다른 한 손은 이모의 하얀 손을 꼭 잡았다. 지하철도 처음 타 보았다.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저절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고, 그 절정을 지하철에서 본 것이다. 버스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 녀석은 아무리 타고 있어도 멀미가 나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울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모 때문이었다. 서울에 온 이모는 그 분홍빛의 뺨이 예전보다도 훨씬 더 붉어져가고 있었고, 나는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고동색 작은 손지갑을 쥔 손, 얇은 팔의 하얀 살결에 돛아 오른 솜털, 잘 룩 들어간 허리선에 딱 맞게 재단한 짧은 치마, 밤색 구두, 향긋한 비누냄새, 금색 시계, . . . 어려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내 마음 속에서 일고 있었던 그 요동들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 연인과 함께 서울로 나들이를 갔던 것이다! .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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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올려주세요... 2006/01/04 00:22
풍부한 사색으로 윤기가 나는 글 읽으면서 내내 미소가...^^ 암튼 조숙하셨어요. 오옷, 계속 되는군요. 기대만빵 2006/01/04 04:15
단편소설 읽는 기분!! ^--^* 2006/01/04 07:13
헉 . . 사진도? . . . 지금 제가요 . . 저 글을 올릴까 말까 했거든요 . . 왜냐면, . . 뭐 그리 잘난 가족이라고, . . . 가족사를 공개할까?!! 라는 소리 들을까봐 . . . 그런데, . . 사진까지?
저 이야기는 사실 . . .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 . . 슬픈 이야기입니다. . . . . 이렇게 말하면 더 기대되겠다. . 2006/01/04 18:18
이런...오바쟁이...빨랑 올려 주세요옷~ 2006/01/04 23:42
오바가 아니라 . . . 정말 스캐너가 없어요 . . 있었다면, 이 글방 . . 진즉에 사진방 됐습니다. . . 저두 남들처럼 보란듯이 제 사진 올리고 싶어요!! 저 외모 되거든요!! . . 스캐너 핑계로 어렵사리 참고 있구마!! ^^ 2006/01/05 00:25
아뉘 제 말은 2편을 재촉하는 소리였습니다. 뭐 대략 감은 오구만은...
그리고 사진편...스캐너 드립니다.(거울 장착) 업뎃 잘 하시면...당근으로다가...하지만 지금은 채찍 뿐...찰싹찰싹!! 2006/01/05 01:43
당근 먼저!! (거울 빼고) . . . 힘이 좀 나야 손가락이라도 움직이든가 하지 . . . 2006/01/05 04:21
내가 몬살아요... 2006/01/05 11:33
흠 흠,, 오늘도 헛탕이군,, 발품 물어내쇼!! 2006/01/06 18:49
그 아득한 시절에는 화장실에도 가지 않던 여선생이 있지요.^^ 2006/01/06 20:41
제에게도 아는 친척언니가 있었죠. 가끔씩 소설이며 영화선데이서울 같은 3류 잡지들 이야기 어린 나에겐 어른들의 세계로 가는 미로를 살짝 보여준 언니 였죠
언니는 절 데리고 백화점엘 데려갔고 거기서 얼음 빵이란 내가 그ㄸ껏 먹어본 소라빵이나 곰보빵과는 좀 격이 다른 야룻한 먹거리와 20원짜리 머리핀도 사 주셨죠.
20년뒤 그녀는 한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2년전 그녀는 길고긴 여행을 혼자 가버렸습니다. 한 통의 유서와 그녀 나이 만큼 꽃다운 나이가 되어가는 예쁜 딸을 남기고
레이프 가렛과 올리바아핫세 그녀 벽에서 웃고 있던 왕년의 스타들과 프르디 푸른 그녀의 웃음과 늘 달그락 거리며 그녀의 곤색 가방속에서 뒹굴던 양은 도시락들
그녀의 홀연한 죽음 속에서 자꾸만 떠올라옵니다. 2006/01/06 21:47
많은 분들이 방문을 해 주시니 즐겁고, 반갑고, 고맙고, . . 모두들 새해에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화분님 몬살면 . . 전 어쩌라구?!! 새해엔 잘 사시기 바랍니다,^^. . .
사과꽃님 . . 새해에는 엄살 좀 줄이시구요!!(전 지금 뉴질랜드 갈라고 차비버는 중입니다^^ . . 대견하지 않아요? 가서 떡국 맛 없으면 . . .!!)
허접글쟁이님 . . . 처음으로 오셔서 용기를 내셨네요 . . 댓글을 써주시고, . . 이제 한번 오셨으니 . . 앞으로 발길 끊으면 . . 알쥐?!!
제비꽃나님 . . . 반갑습니다. . 선데이 서울이. . . 제비꽃님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지 않았길 바랍니다 . . . 언니라는 분은 어쩌다가 유서와 여행을 . . . 안타까운 일입니다. . 명복을 빕니다. . .
처음오셨는데, . . 우울한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그런데 님의 글방은 찾을 수가 없네요 . . ^^ 2006/01/07 00:46
이런, 아직도 2탄은 엄잖아욧! 진짜 제비꽃나님은 클릭이 안되네요.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품목들입니다. 선데이서울, 백화점, 곰보빵...훈님, 분발하세요 2006/01/07 05:50
당근이 없어서 . . .^^;; 2006/01/07 07:50
홋!^^ 이런 잰나는 소설의 시작이? 저는 말이죠. 어릴때 친구 이모가 생각나요. 아주 어린것도 아니고 중학생땐데 그 친구 이모가 간호사로 독일에 가려는 때 였죠. 마약을 호주로부터 밀매하다 잡혀 감옥게 살던 아버지등....머리는 뛰어나고 재주는 전교일등이었던 친군데, 집안이 어려웠죠. 그 친구 엄마가 바람이 나서 이혼되었으므로^^ (그 친구 새엄마의 말씀이긴 한데, 신빙성도..) 가족간 서로 만나지도 않는다 하고, 파독 간호사로 다녀온 그 이모는 아주 씨니컬한 분이었죠. 저는 남이 소설써놓은걸 보면 그제서야 거기다 뭔 군살^^을 붙여 상상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 님글을 보니 그런 군살을 붙일 생각이..^^ 이런건 어떄요? 인의 글을 제방에 옯겨다 놓고 저도 심심하면 님글을 바탕으로 군살 붙여놓고 서로 깔깔대기!^^ 님의 글 방향과 저와 아주 다를터인데 잼나는 놀이 같지 않으세여?ㅎㅎㅎ 2006/01/20 13:13
친구이모가 간호가로 독일에 이미 갔다온때였죠. 수정본!^^ 2006/01/20 13:16
반갑습니다. . odysse님 ^^ . . 님의 글방에 제 글을 옮겨 놓고 . . 거기에다가 님께서 군살을 붙이시겠다구요? . . 저야 뭐 상관은 없지만 . . 그러다보면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 . 오타 교정은 확실히 해 주실거죠?^^ . . 편지지 대빵큰거 붙여놓은 글방 맞죠? 가끔 들러서 제 글이 어떻게 증식하는지 확인해 볼께요. .^^ 2006/01/21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