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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7 이모와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1) (19)

내게는 아주 특별한 이모가 있다. 깊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연민과 같은 동요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이모와 내가 마지막으로 대면을 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이 단숨에 전혀 다른 것으로 지각되는 사춘기였으므로, 중학교 다닐 때 보았던 이모는 어린 시절 마음속의 이모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만약에 이모를 지금 보게된다면, 내 마음속의 그녀는 한꺼번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내 마음에서 끄집어내어 실존하는 것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다. 마음속의 이모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이후에 한 번도 만난적은 없지만, 아직도 이모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마 지금은 환갑이 넘어 할머니처럼 흰머리가 많아졌을 테지? 온 몸에는 세월에 긁힌 흉터들로 가득차 있을 것야.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생기에 찬 처녀이다. 나는 아주 어린 꼬마였고, 그녀는 그녀의 생애 가운데 가장 화사했을 처녀시절이었을 테니. . . .

그녀에게 쓰는 내 마음속의 편지는 이미 하나의 회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아주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쥐어져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일까? 이모가 가꾸어놓은 깔끔한 뒤뜰에서 함께 찍은 흑백 사진! 채송화가 많은 뜰에 대한 기억 탓이었는지, 그 사진은 흑백이었음에도 언제나 울긋불긋하다.

그 사진이 찍힌 것은 순전히 이모의 유혹 때문이었다. 그녀의 처녀시절에 나는 어렸으므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들을 더듬어 보면, 그녀는 언제나 외출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모습도 그랬다. 철모르는 나에게 그녀는 어린아이의 콧소리를 섞어가며 들뜬 어조로 말을 붙이다가, 갑자기 일어나 내 주변을 걷기도 하고,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 몸짓과 목소리는 연극배우처럼 가벼웠기 때문에, 나는 그 자태들이 내는 포물선 위에 실려, 그녀가 가리키는 이곳 저곳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내게 사진을 찍자고 하고서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한껏 차려입고 뒤뜰로 나서던 걸음걸이. 항상 보아왔던 걸음이었지만, 그 뒷모습은 언제나 달라 보였다. 나는 그 사뿐 거리는 뒷모습에 취해 현기증이 나면서도 괜히 신이 나서 따라다녔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내 생애에서 입을 가장 크게 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갸름한 얼굴. 안쪽으로 말아 접은 두 입술. 카메라 렌즈를 주시하는 얇은 두 눈. 멀리 있는 연인에게 선이라도 보일 듯이 다소곳이 기울인 고개. 그 사진 속에 있는 이모는 무엇인가에 도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보아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 답답한 시골에서 살고 있는 모든 처녀들이 가졌을 법한 마음속의 동경을 품으며, 이모의 막연한 봉오리는 하루하루 영글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동경은 일종의 경련(痙攣)이었던 것 같다. 어찌해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고압적인 기침소리와 나른한 시골생활 . . . 그 지루한 일상 속에서 서서히 비틀어가고 있는 나른한 경련. 그래서인지 이모의 눈 속엔 언제나 저 너머가 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할 때조차도 그녀의 눈 안에는 내 뒤에 있을 혹은 그 시골의 깊은 산 저편에 있을 어떤 곳이 들어차 있었다. 특별히 나갈 일도 없었음에도 그녀는 언제나 외출복 차림이었다. 불편하지 않은가 라고 물어보면, 들킨 사람처럼 살짝 화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모는 늘 내게 서울 얘기를 해 주었다. 서울에 가면 코스모스 백화점이라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계단이 저절로 움직인단다?! 너 커피라는 것 먹어 본적 없지? 아이스크림이 뭔지 아니? 그러다가 살금살금 다락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한참 뒤적이다가,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쵸콜렛 사탕을 집어들고 깔깔거리며 나를 활짝 놀라게 한다. 정말이지 신나는 날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 들뜬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달콤한 사탕이 아른거려, 너무나 무섭고도 싫었던 헛기침 소리도 잊은 채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하고는 하였다.

내가 서울로 이사오기 얼마 전부터 이모는 마치 자신이 이사라도 할 듯이 들떠 있었다. 우리는 답사를 핑계로 할아버지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고 서울로 나들이를 하였다. 맨 먼저 가본 곳은 코스모스 백화점이었고, 나는 거기서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 보았다.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 위에서 잔뜩 겁을 먹고 난간을 움켜쥔 채, 다른 한 손은 이모의 하얀 손을 꼭 잡았다. 지하철도 처음 타 보았다.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저절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고, 그 절정을 지하철에서 본 것이다. 버스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 녀석은 아무리 타고 있어도 멀미가 나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울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모 때문이었다. 서울에 온 이모는 그 분홍빛의 뺨이 예전보다도 훨씬 더 붉어져가고 있었고, 나는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고동색 작은 손지갑을 쥔 손, 얇은 팔의 하얀 살결에 돛아 오른 솜털, 잘 룩 들어간 허리선에 딱 맞게 재단한 짧은 치마, 밤색 구두, 향긋한 비누냄새, 금색 시계, . . . 어려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내 마음 속에서 일고 있었던 그 요동들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 연인과 함께 서울로 나들이를 갔던 것이다!  . . . <계속>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