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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9 동물원 이야기(Zoo Story)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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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n & Hardart, Lexington Avenue. 1954-55 / photograph by William Klein

고립된 현대인들 사이에서 누군가에게 선뜻 말을 건네는 일이 힘든 이유는,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생산을 위해 고안된 "욕망의 절약"이나 "욕망의 금지"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근대적 생산방식은 욕망을 매우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미국 작가 Edward Albee의 희곡 Zoo Story(1958)를 보면, 언어를 중심으로 욕망과 권력의 아이러닉한 관계가 어떻게 짜이는지 보게 된다. Jerry의 억지나 폭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에는 피해자의 어조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것은 언어가 욕망과 맺는 관계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게 손가락으로 어떤 사물을 가리켰다고 한다면, 나는 그 손가락이 지시하는 사물을 볼 것이다. 이것이 언어의 본질적 기능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설명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해도, 언어에는 그 자체 명령이 함축되어 있다. Austin을 비롯한 화용론(Pragmatics)자들이 그랬듯이, 언어란 말하자면 불가능한 것들간의 직접적인 가교(架橋)이다. 그래서 Jerry의 언어의 표면은 Peter를 압도하고 그에 대한 권력을 세운 듯 보인다. 단어들을 제시하고 거기에 자신이 의도한 기의를 숨김으로써, 주체는 암암리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표상과 상징의 울타리 안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인다. 마치 주인인 나의 배려에 의해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듯이! 혹은 내가 만든 규칙에 초대되었으니 당신은 이제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혹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이제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권리는 오로지 내가 숨긴 기의를 찾아내는 일 뿐이라는 듯이! 언어는 다차원적인 주름이 되어 우주 전체를  몇 마디의 소절들로 꼬깃 꼬깃 접어버린다. 그 중력이란! 그러나 만일 이 지시에 불응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에 벌어지는 파국은 단지 의미작용이나 지시 관계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만을 드러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 파국을 통해 언어의 본질이 출현한다. 명령과 지시는 거부되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명령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 욕망이 좌절되었다. Peter의 냉소(冷笑)가 계속해서 Jerry로 하여금 더 많은 강요와 명령을 낳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Jerry의 끊임없는 욕망의 좌절은 이를 상쇄하기 위한 더 많은 말들을 요구하고, 이는 결국 극단적인 에너지의 소비로서 죽음으로 치닫는다. 언어를 필요로 하는 쪽은 권력자가 아니라 욕망 하는 자이다. 언어의 표층에는 명령이 있지만, 그 심층에는 욕망이 있다. Jerry의 강요에는 어떤 형태로든 당신과 내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렬한 애원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문예 노트>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