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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_fragmentary_aporism 2011/02/03 22:29

스캇 펙(M. Scott Peck) 이라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기독교 관련 작가가 있다. 비록 기독교적 관점에서 영성(spirituality)과 믿음에 관한 글을 쓰고는 있지만, 비교적 포용력을 발휘하고자 노력은 하는 것 같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내밀한 관계성을 언급하는 칼 융(Carl Jung)이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현대적 반복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기도 한다. 또 기독교 뿐만 아니라 불교(특히 선불교)와 다른 여타 종교들에 관해서도 비교적 열려고 노력은 한다. 뉴에이지(New Age) 경향도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상당한 독자가 있고, 당연히 한국에서도 꽤 많은 독자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의뢰를 받아 그의 책 한 권에 관하여 번역 감수를 하고 있는데, 여기 저기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지옥에 관한 그의 얘기이다. 이 구절에서 스캇 펙은 판타지 소설가 루이스(C. S. Lewis)의 소설인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지옥에 관해서 언급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어찌어찌 하여 천국에 갔는데 천국을 체험하고 나서 거의 모두가 자기들이 살던 곳(지옥으로 묘사된)으로 다시 되돌아 가기로 결정한다. 천국에 갔던 사람들이 어째서 다시 지옥으로 되돌아가려고 마음먹은 것일까?

[. . .] 그의 소설 《천국과 지옥의 이혼 The Great Divorce》은 지옥(루이스는 지옥을 비참하고 우울한 영국의 중부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에 있던 사람들이 가까스로 천국행 버스를 타게 된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천국은 아주 밝고 유쾌하고 즐거운 곳이다. 이 사람들은 친구들과 친지들로부터 엄청난 환대와 온정을 받는다. 그러던 마지막 날, 이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탄다. 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가 않다. 이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다시 지옥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이유가 뭘까? 루이스는 여러 예를 들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사례들을 요약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은 전형적인 사건을 인용해 보겠다.
버스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조카에게 환대를 받았던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이 남자는 천국에서 조카를 만나게 되어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이 젊은이는 도무지 천국에 있기에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카는 아주 반기는 모습이었고 천국은 밝고 유쾌한 곳이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긴 아주 훌륭한 것 같고 나는 여기 머물고 싶구나. 너도 알다시피 난 콜럼비아 대학 역사학 교수였잖니. 여기도 대학이 있니?”
조카는 대답한다. “그럼요, 삼촌.”
“그럼 난 종신 재직권을 얻을 수 있겠구나.”
“당연히 그러실 거예요.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종신 재직권을 가지거든요.”
삼촌은 깜짝 놀란다. “아니,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종신 재직권을 얻을 수 있단 말이냐? 적임자와 비적임자를 구분해야 되지 않겠니?”
조카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선 모든 사람들이 적임자랍니다. 삼촌.”
삼촌은 더 이상 함께 앉아있기도 싫었지만, 계속해서 조카에게 질문을 한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학장이었다. 여기서도 학장이 될 수 있겠지.”
“유감스럽지만, 여기엔 학장이란 건 없어요.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책임이 있고 그래서 의견을 모아 일을 하기 때문에 학장이란 직책은 필요하지 않아요.”
그때 바로 삼촌이 침을 튀겨가며 툴툴거린다. “적임자와 쓰레기를 구분하지도 않는 이런 설익은 조직에 내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그러고는 이 남자는 버스에 올라타 지옥으로 돌아가 버린다.
지옥에 대한 나의 견해는 확실히 루이스와 같다. 지옥문은 넓게 열려 있다. 사람들은 지옥에서 곧바로 걸어나올 수 있다. 이들이 지옥에 있는 이유는 나오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 . .] 희망도 갖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벌주고 부활의 기회도 없이 영혼을 파괴하는 곳이 지옥이라는 견해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끓는 기름에 사람들을 튀겨버릴 심사였다면 신은 일부러 그토록 복잡하게 영혼을 창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Morgan Scott Peck, Further Along the Road Less Traveled, New York, 1998. pp. 170-171.)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