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anuel Kant의 실천이성비판(The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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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의 순수이성비판(The Critique of Pure 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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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의 판단력비판(The Critique of Jud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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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enri Cartier-Bresson


사람은 자신의 삶 전체에 걸쳐 잠깐 동안이나마 초인이 될 기회를 몇 차례 갖는다. 그 시간은 어느날 홀연히 불쑥 찾아왔다가, 우리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외면하는 순간 머리 속에서 훅 . . . 하고 꺼져 버린다. 그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의 지속을 가능케했던 신념과 가치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에 맞닥뜨린 순간, 즉 자신의 내부의 역설을 만나게 될 기회 같은 것이다. 가령,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없다면 내 삶이 불가능한, 나의 신념, 도덕, 가치들, . . .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내부의 역설이란 말하자면 내가 하나의 우아한 영혼으로서 나 자신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말이라든가 그 밖에 모든 표현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남아있는, 그래서 오로지 그 시간에 직면한 자신만이 알고 있는, 표현 이전의 시간이다. 섬광과도 같은 한 줄기 빛!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소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스러기들을 가지고는 이해 불가능한. 스타일이라든가 문체라든가 하는 것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래서 그 앞에서는 더 잘 말할 수도 있었다고 후회할 필요가 없는. 니체나 카프카나 스피노자가 그랬듯이, 기도중에 있는 독실한 한 사제의 뇌리에 스치는 강렬한 의구심 같은.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가 직면했던 사슬이 풀어헤쳐진 시간.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이 활동하는 부정의 시간. 실재의 다양성과 근본적 대면상태에 처한 지성으로 하여금 "이해 불가능"이라고 속삭이는 직관의 시간. 말하자면 중독자의 무시무시한 금단의 환각. 우리를 주춤하게 하는 막다른 길. 자신이 낯설어지는 어느날. 불쑥 내게 되돌아온, 가차없이 비판했던 자에게 느꼈던 혐오감. 대낮의 소란한 환락 이후 엄습해 오는 고요한 저녁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이 너무도 무시무시한 시간 때문에 고개를 숙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그 시간을 미루며 죽어간다. . . .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사유들만이 참되다."

<문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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