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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Bauer and Early Christianity



Speech at the Grave of Karl Marx(by Engels)




Ludwig Feuerbach and the End of Classical German Philosophy



The Housing Question



Law of Value and Rate of Profit



The Peasant Question in France and Germany



Societies for Marxist theories of class struggle and transition(by Larry Miller)

Posted by hu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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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nd and the Russian Menace




Synopsis of Capital Volume One, Book One



The Abolition of Landed Property



On the 20th Anniversary of the Paris Commune



Interview with Karl Marx, Head of L'internationale



A Short Relation of My Daughter Jenny on the Persecutions . . . at the Hands of the French Government



On Authority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 Marginal Notes to the Program of the German Workers' Party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



Interview with Karl Marx(1879)



Strategy and Tactics of the Class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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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st League



The Poverty of Philosophy: Answer to the "Philosophy of Poverty" by M. Proudhon


Communism, Revolution, and a Free Poland


On the Question of Free Trade

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

Wage-Labor and Capital


England's 17th Century Revolution


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Bonaparte Napoleon

The Duchess of Sutherland and Slavery

Introduction to a Contribution to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Pre-Capitalist Economic Formations

Inaugural Add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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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un

다들 아는 얘기지만 한번 더 상기하는 의미에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맑스(Karl Marx)가 말했던 노동 소외를 간단히 요약해보자. 그것은 노동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을 즐겁게 여기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고역으로 느낀다면, 그 일을 그만두는 것이 정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굶어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길, 자본주의라는 정치-경제 체제가 여차저차 하여 사람들로부터 모든 생산수단(토지, 기계, 건물, 원료 등)을 빼앗고,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끔 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억지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의 구호들 속에 항상 등장하는 '빼앗긴 노동', '강요된 노동', '소외된 노동'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맑스가 쓴 <자본>(Das Kapital)이라는 책에 그 좋은 예가 하나 있다. 19세기에 한 영국 자본가가 공장을 세우기 위해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런 저런 생산수단을 싣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스완강 지역으로 갔다. 그러나 공장을 세우고 나니 아무도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당시의 그 지역은 주인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땅을 차지해서 자신만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장이 생산을 하려면 즉 자본주의가 가동되려면, 저 사람들로부터 땅이나 일체의 생산수단을 빼앗아, 그들이 공장에 들어와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중세때부터 수세기에 걸쳐 토지를 합병하고, 농지를 전환하고, 사유화하는 등의 운동이 있었는데, 이를 인클로져(Enclosure movement)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쫓겨나 갈곳이 없었던 수많은 농민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어 공장노동자를 이루게 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산업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6, 70년대의 한국도 이러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그런 일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자본의 품 안에서 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이미 무엇인가를 빼앗긴 결과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인가?


강요된 일은 우리의 삶을 여러가지 면에서 비참하게 만든다. 그 모든 비참함의 목록을 전부 나열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쉽게 체감하는 비참함을 단 한가지만 말한다면, 우리는 일하지 않을때 가장 행복해진다는 점이 아닐까? 솔직히 말해 평생 일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가장 기다려지는 토요일 오후! 지금은 좀 나아져서 금요일 오후! (엄밀히 말해 나아진 것도 아니다. 휴일을 잘 보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점점 배가 아파오는 일요일 저녁! 월요병! 실제로 월요일만 되면 배가 아파오는 증후군이 있을 정도이다. 일 자체에서 오는 고역도 있지만, 이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쾌함도 역시 우리의 배를 아파오게 하는 요인이다. 그들은 동료이기 보다는 잠재적 적(敵)이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노동과 관련하여 겪고 있는 이 모든 불쾌함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월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그 현장들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불쾌함의 원인이 적응을 못하는 자신의 성격탓이라거나, 사회화가 덜 된 탓이라거나, 등등의 이름모를 죄의식을 가지며, "인내가 부족해!"라고 자위하면서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흔히 인간관계가 좋다고 알려진 사람들은 잘 참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에서는 노동이란 낙원에서 추방당한 벌, 즉 인간 자신의 죄값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삶 자체는 노동의 과정이고, 노동이란 으례 고역이며, 참아야 할 어떤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힘든 고역을 참고 견뎌 내었다. 그런데 단 하루 좀 편하게 있어볼까 했더니, 별안간 '우리의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며 교회에 나가 기도를 드리란다. 인생 자체가 무슨 극기(克己) 훈련장 같다.

맑스는 인간의 본질을 노동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이며,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미했던 노동이란 아담 스미스(Adam Smith)와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말했던, 또 대부분의 우리가 배워왔던 의미에서의 노동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노동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면서 삶의 충만을 경험하고, 일 그 자체가 주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일이지,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댓가를 받음으로써 얻게되는 승리감 따위로 유지되는 그런 저질적 노동이 아니었다. 노동의 의미가 다른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댓가를 바라는 일! 그리하여 지겹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눈치보며 하는 일! 잔머리를 굴리는 일! 그 자체 경쟁이고 싸우는 일! . . . 이것이 우리를 노예 상태로 만드는 일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속박하는 쇠사슬이다. 우리가 풀어헤치고 벗어나야 할 것은 궁핍이 아니다. 바로 쇠사슬 그 자체로서의 노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투쟁은 근본적이지 못하다. 심지어 그것은 쇠사슬에 흉측한 흠집들만을 냄으로써, 그에 묶인 우리의 상처를 더 아프게 할 수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많은 월급이 아니라 바로 즐거운 월요일이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 아닐까? 예술가들이 밥을 굶으며 궁핍에 허덕이면서도 자신의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맛을 본 것이다.


노동을 강요한 것은 삶 자체가 아니다. 여차저차 하여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체계, 쇠사슬로 발목을 묶었던 고대나, 아버지의 이름 아래 말씀의 무게로 정신을 내리 눌렀던 중세의 서구처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어떤 규칙들이 거꾸로 우리의 노동을, 나아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한 것이다.

<문예 노트>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