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눈을 감아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의 결점과 오류들을 이해해 준다. 친구는 내가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실상을 들추어내거나 따져 묻지 않는 자이다. 그는 나를 덮어주고, 망을 보아주고, 곁에서 시름과 고통의 위안이 되어주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우정은 사랑처럼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사랑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위안을 받기 위해 찾아가는 환상의 귀의처이다. 그리하여 우정은 우리를 고립되지 않은 존재, 고독감을 떨쳐버리게 해줄 존재, 대면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가장 무시무시한 상태와 맞닥뜨리지 않아도 세상 사는데 별 문제가 없음을 일깨워주는 존재, 우리를 사회적 존재이게끔 해준다. 그리하여 사회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섬이 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정은 우리의 고립과 외로움을 편안한 관용으로 덮어준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진실이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사이좋은 우정과 조화로운 통일로 만들어진 진실이 도대체 무슨 효력이 있단 말인가? 나의 무능력을 치유하고 위로해줄 친구의 그 칭찬 한마디는 나를 더욱더 화나게 할 뿐이다. 그의 위로가 실연의 고통을 잊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렇게 마련된 진실이라면 너무나 초라하고도 왜소하지 않은가? 들뢰즈에 따르면 우정의 철학이란 바로 협잡과 합의의 철학이다. 그것은 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애써서 그것을 외면하는 길임을 뜻한다. 진실은 가혹하지만 엄밀한 어떤 것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무엇도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나가야할 시간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베르그송이 직관의 비판능력이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이 귓가에 속삭이며, 우리를 아포리아(aporia)의 상태 속으로 밀어 넣는 무시무시한 시간이다. 실재는 난입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성을 강요하고, 지성의 잘못을 질책함으로써, 지성의 굳은 몸체들을 대기 속으로 흩뿌리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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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31 우정과 진실
- 2006/09/14 친구뿐만 아니라 나 자신조차도 불신하게 되는 저녁시간의 목록 (9)

사람은 자신의 삶 전체에 걸쳐 잠깐 동안이나마 초인이 될 기회를 몇 차례 갖는다. 그 시간은 어느날 홀연히 불쑥 찾아왔다가, 우리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외면하는 순간 머리 속에서 훅 . . . 하고 꺼져 버린다. 그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의 지속을 가능케했던 신념과 가치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에 맞닥뜨린 순간, 즉 자신의 내부의 역설을 만나게 될 기회 같은 것이다. 가령,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없다면 내 삶이 불가능한, 나의 신념, 도덕, 가치들, . . .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내부의 역설이란 말하자면 내가 하나의 우아한 영혼으로서 나 자신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말이라든가 그 밖에 모든 표현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남아있는, 그래서 오로지 그 시간에 직면한 자신만이 알고 있는, 표현 이전의 시간이다. 섬광과도 같은 한 줄기 빛!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소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스러기들을 가지고는 이해 불가능한. 스타일이라든가 문체라든가 하는 것들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래서 그 앞에서는 더 잘 말할 수도 있었다고 후회할 필요가 없는. 니체나 카프카나 스피노자가 그랬듯이, 기도중에 있는 독실한 한 사제의 뇌리에 스치는 강렬한 의구심 같은.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가 직면했던 사슬이 풀어헤쳐진 시간. 소크라테스의 신 다이몬이 활동하는 부정의 시간. 실재의 다양성과 근본적 대면상태에 처한 지성으로 하여금 "이해 불가능"이라고 속삭이는 직관의 시간. 말하자면 중독자의 무시무시한 금단의 환각. 우리를 주춤하게 하는 막다른 길. 자신이 낯설어지는 어느날. 불쑥 내게 되돌아온, 가차없이 비판했던 자에게 느꼈던 혐오감. 대낮의 소란한 환락 이후 엄습해 오는 고요한 저녁시간. 여행자인 우리는 이 너무도 무시무시한 시간 때문에 고개를 숙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그 시간을 미루며 죽어간다. . . .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사유들만이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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