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알다시피, 농담 잘하는 유쾌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자신만의 거대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영상으로 그의 서재를 보고 난 후 언뜻 든 생각이 있는데, 그의 장서는 그의 지식의 양을 말해주기 보다는 그의 재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실 개인이 소유한 장서의 본래 의미는 지식보다는 사회적인 수완을 말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여차 저차하여 교수직을 얻어 안주하는 시기가 되면, 비로소 책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한 5년 쯤 지나면, 그들의 책 수집에 관한 열정은 사실 헌책방 주인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연구실을 들어가 보면, 책장과 책장을 한참을 돌아 들어가서야 겨우 장본인을 만나볼 수 있는 미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책을 모으는 일이 관심사라고 공공연히 말하고는 했던 한 얼뜨기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안달이 나서 추구했던 일은 사실은 교수가 되는 일이었다. 책 수집에 관한 편견만큼이나, 그에게 있어 교수가 된다는 것은 지식인이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물론 에코의 박식함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해박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저열한 본성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재력도 과시한다. 행이 바뀔 때마다 해대는 수많은 책의 인용, 자신이 직접 가본 무수한 지명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명사들, . . .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렇게 허기가 지는지! 지식은 돈 게임이라는 료따르(J-F Lyotard)의 말이 어렴풋이 실감난다. 우리가 그의 글을 보며(읽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고 재밌어하고 낄낄 거린다면, 그것은 고매한 지식이 주는 명쾌한 묘미나, 웅장한 문체 때문이기보다는, 그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수단들을 갖춘 사회적 능력에, 애매모호한 존경심(?)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먼 고장을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뻐기며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배짱과 폭넓은 인간관계 같은 세속적인 수완에 압도되듯이.
그의 글 중에 "지적인 휴가를 보내는 방법"(『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268쪽에 수록된)이라는 작은 칼럼이 있다. 이 칼럼의 문제의식은 시사-문화 잡지들이 바캉스 때만 되면 추천하는 지적인 책들이 너무 진부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미 배웠거나, 따분하리만큼 잘 알려진 것들, 가령, "『친화력』의 독일어 원서나 플레이야드 판 프루스트, 페트라르카의 라틴어 저작 따위"를 추천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추천서들을 첨부한다.
(1) 아타나시우스 키르허(1601-1680) 신부의 『빛과 그림자에 관한 위대한 이론(Ars magna lucis et umbrae)』(1635)가 있다. 이 책은 고서적상을 뒤져보면, 어쩌면 1645년 로마 판은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에코는 부연한다. 몇 가지 사소한 애로사항들이 있다고 빈정거리며.
(2) 유럽 여행을 준비 중인 사람에게는 조반 바티스타 라무지오(1485-1557)의 『항해와 여행에 대해서』가 있다. 에코의 말, "여행 중에 여행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아주 자극적이고 강렬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총 6권 중에서 여행 중에 3권만이라도 모두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3) 제3세계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이슬람 철학의 걸작 몇 권이 있다는데, 우선 아델피 출판사에서 나온 카이카우스 이븐 이스칸다르의 『교훈서』가 있다. 이란어 원문이 없어 맛은 떨어지지만. . . . 또, 압둘 하산 알 아미리의 『키타브 알사다 왈리사드』도 있는데, 이 책은 테헤란에 가면 1957년 교정판을 구할 수 있다. 중동 여행 중에는 미뉴(1800-1875) 신부의 『교부 신학 전집』을 가지고 다니며 읽으면 좋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덧말을 추가한다:
"하지만 1440년 피렌체 공의회 이전의 그리스 교부들의 저서는 피하기 바란다. 그리스 라틴어 대조판 1백 60권과 라틴 어판 81권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1216년 이전의 라틴 교부들의 저서는 2백 18권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중에는 서점에서 살 수 없는 것도 있을 터인데, 그럴 때는 복사본을 구하면 될 것이다."(270쪽)
(4) 이 외에도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령, 유대교 신비주의 경전들의 아람어 원서들(『조하르』, 『세페르 예시라』, 모제스 코드로베로와 이작 루리아의 저작 들)이라든가, 라틴어로 된 『연금술 전집』이라든가, 장황하고 짜증스러운 대목이 너무 많은 바실리데스보다는 그노시스 파인 발렌티누스의 저작들, . . . 맑스의 『그룬트리세(Grundrisse)』나 『경외 성서』나 아니면 마이크로 필름으로 된 피어스(C.S.Peirce)의 미발표 논문 등이 있다.
고문서 학자들이나 이슬람 취미의 유럽 부르주아의 입에서나 오르내리는 저서들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일반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것일까? 물론, 에코의 텍스트의 본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나오는 교양 생활 정보지에나 수록된 교과서와 같은 책들만 추천해주는 문화-시사 잡지들을 험담하려는 의도 보다는,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을 나무라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저러한 책들을 바캉스 중에 읽을 만한 것으로 여긴단 말인가? 새로운 형태의 바캉스 장르를 제안한 것인가? 마치, 그 오만한 오지 탐험의 전신이었던 19세기 유럽인들의 고고학 취미처럼. . . .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모든 백수 동지들, . . .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있고, 또 돈과 세속적 수완도 충분히 갖춘 세계의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은 통신문을 타전하는 바이다: "저 고물들을 좀 찾아서, 정말로 있기는 한 것인지 확인 좀 해 달라!"고. 그것만으로도 수 개월의 바캉스를 족히 써야겠지만.
p.s. 아무리 지적이고, 취미가 다양해도, 직업이 있는 분은 양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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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상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백수이긴 한데, 저런 고서를 사들일 만큼
재력이 없는데 어쩝니까?
설령 아마존이나 알리브리스 같은데서 중고책을 찾아냈다하더라도,
배보다 배꼽이라고,
수수료가 몇배로 더 비싼데,
배아파서 그런 짓을 안할려고 합니다.
사실, 에코씨가 추천한 책은 제목만 봐도 알만합니다.
틀림없이 따분하고, 재미없을 겁니다.
몇주전에 TV에서 천재교육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천재로 키워진 아이들이 둘이 나왔는데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같은 책을 즐겨 읽는 다고 하더군요.
아마 에코씨가 추천한 책도 이런 류의 책인 것 같은데,
이런 책에는 짐작건대
남들이 모르는 지식나부랭이들이 가득 있을 겁니다.
그래서, 파티나 식탁앞에서, 아니면 카메라 앞에서
과시 하는 거죠.
"이런 이런 게 있다는데, 모르시죠?"
하면서. . .
에코씨는 한마디로 아날로그식 지식 소유 능력을 과시하자는 것이겠죠.
이런 이런 책에서 이런 캐캐묵은 것들을 말하던데 모르지롱~~ 하면서. . .
아마 사교에는 유익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백수들이란 사교계를 떠난 자들인 관계로
시간이 남아 나도 쓸모 없는 지식일 것 같네요^^
ㅎㅎ. . . 네 . .

에코가 열거한 저 책들은 . .
이제는, 읽기 위해서이기 보다는,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더 있지 않나 싶네요
책과 미술품의 차이가 있다면 . .
미술품은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이지만,
책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습니까?
에코가 저 책들을 언급하는 방식은, 원서로서, 발행된 시기라든가, 판형이라든가, . .
하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의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커보입니다.
들고다니며 읽기 위해서이기 보다는,
금고에 넣어두고, 전시하기 위해 . .
ㅎㅎ, . . 어쨌든 백수들과는 좀 거리가 있군요
그런데, 백수를 준비중이세요? . . . 어려운 일을 하시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