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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2 니체(Friedrich Nietszche)의 수염 (6)
  2. 2007/03/04 아우라(aura)
  3. 2007/03/03 진실은 구체적이
니체의 생전 모습이라고 한다. 신이 죽어버린, 아니 새로운 신이 탄생한 현대의 악취가 견딜 수 없어 무덤 속에서 출몰한 유령이 찍힌 듯 하다
가만히 보면 아우라(aura)가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로 인해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기술복제는 아우라를 생산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의심은 어쩌면 놀라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믿어지지 않는다" 혹은 "믿을 수가 없다"는 말만큼 믿음에의 열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그 니체일까? 그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포리즘의 대가인 백년도 넘은 바로 그 니체일까? 이제 그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아니 오히려 의구심을 일소하고 싶어 근거없는 기억들이 마구마구 솟아나기 시작한다.

"예전에 어디서 얼핏 듣기로, 니체는 생전에 한번도 저렇게 긴 비스마르크 콧수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도 그럴 것이 제2제국을 독일의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니체가 아닌가? 사진에서 우리가 흔히 보던 콧수염은 새벽녘을 바라보는 듯한 총명한 시선의 옆모습과 함께 그의 아우라를 창출하기 위해 덧칠한 픽토그래프(pictograph)였다고 하던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잘못된 기억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나의 기억착오 혹은 소문착오를 오히려 증명하듯, 상상 속의 그 니체, 꼬장꼬장하게, 근엄하게 기른 콧수염의 니체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어쨌든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어서 영상 속의 니체가 진짜(?)였으면 좋겠다. 그 마저도 아니라면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해질까? 그의 모습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니체의 영상을 바라 보며 내가 마치 그림의 진본성(authenticity)을 의심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사상(思想)의 아우라가 테크놀로지를 압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 영상이 우리 앞에 드러난 이상, 그 촉각적 실체가 확인된 이상, 이제 그의 육체는 현재적인 것이 되었다. 그가 출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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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Walter Benjamin)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국왕이 어릴적 맛보았던 산딸기 오믈레트를 다시 맛보고 싶어, 유능한 요리사를 불러 명령하였다.

50여년 전 짐의 선왕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 왕과 전쟁을 했었지. 그때 그 왕이 싸움에 이겨 우리들은 도망을 쳐야만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을 쳐 드디어 어느날 어느 어두컴컴한 숲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 숲속에서 길을 잃어 허기와 피로에 지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 오두막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파는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 나가서 곧 무엇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산딸기 오믈레트였어. 내가 이 오믈레트를 한입 입에 넣자마자 나에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또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어. . . . 그러나 짐이 훗날 이 요리가 생각이 나서 짐의 전 제국을 뒤져 그 노파를 찾아보게 했지만 그 노파는 물론이고 그 노파의 산딸기 오믈레트를 요리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대가 만약 짐의 이 마지막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면, 짐은 그대를 사위로 삼아 이 제국의 후계자로 만들걸세. 그러나 만약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4-25쪽)

그러나 요리사는 한참을 생각 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폐하! 정 그러시다면 교수형리를 곧장 불러주십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레트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레트를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레트는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에 드셨던 모든 양료(養料)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같은책, 25쪽)

결국 요리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파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간혹 벤야민을 신비적이라고, 독일인 답지 않다고 말들을 한다. 그들이 주로 객관화된 현실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벤야민의 글에 짙게 배인 베르그송의 영향탓이 아닐까 싶다. . . 아우라! 잘라내거나 요약할 수 없는 그 잠재적 시간!

Posted by huun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종종 브레히트(Bertolt Brecht)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여러차례에 걸쳐 카프카(Frantz Kafka), 루카치(George Luka'cs), 독일, . . 등에 관하여 토론과 대화를 했는데, 그것은 사실 토론이나 대화였다기 보다는, 으레 친한 친구들이 모이면 그렇듯이, 또 그렇지 않으면 친해질 수가 없듯이, 말하자면 각자들의 생각을 꺼내놓고는, 서로 얼마나 다른지, 또 얼마나 같은지를 가늠해가며, 그들의 최종 목적인 공통의 다짐 같은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4년 6월 24일에 벤야민은 브레히트를 방문하였다. 그는 브레히트가 소유하고 있는 서재의 천정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에 다음과 같이 적힌 문구를 보았다: "진실은 구체적이다!"

브레히트는 이 문구에 대한 대답으로, 그 위에 또 이렇게 적었다: "나 역시 또한 이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내 서재였다면, 나는 맨 아래에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것은 언제나 모호하다!"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