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Irony)를 수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밖으로 표현된 말(외연, denotation)과 그 말이 뜻하는 의미(내포, 함축, connotation)가 서로 일치하지 않거나 모순적인 관계를 갖는 발화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18세기 영국의 산문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당대 영국 사회의 아동 학대와 무관심이 사회적 범죄 차원으로 확산되었을 때, 한 팜플렛을 편집하여 주장하기를, 모든 아이들을 도살하고 요리를 만들어 기근을 해결하자고 하였다.
또 한 예로, 영화감독 이광모는 한국 전쟁 세대들의 참혹하고도 불행한 삶을 멀리서 관조하는 장면들을 찍었는데, 그 제목을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붙였다.
이와 유사한 예로,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는 나치의 무자비한 유태인 학살을 어린아이의 병정놀이로 애써 해석하려는 아버지의 가련한 노력을 통해 환타지의 무기력함을 비극적 유머로 환기하였는데, 그 제목이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였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Cubric)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Dr. Strange Love)라는 영화에서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장면에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음악을 삽입하였다.
좀 더 직접적이고도 일상적인 예로 돌아와, 보고 싶지 않은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간혹 "너 참 반갑다!"라고 비꼬는 경우가 있다. 또 우리는 간혹 잘난척하는 사람을 야유하기 위해 "그래 너 잘났다!"라고 코웃음을 치기도 한다. 또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일반인들은 "훌륭한 분들이야!"라고 조롱하기도 하며,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한 마디로 "멋진 세상이군!"이라고 내뱉는다. 셰익스피어는 이 분야의 대가인데, 젊은이들의 난삽한 연애 혹은 배은망덕을 풍자하기 위해, 신나는 세상(folly, jolly)이라고 지저귀는 듯한 새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이러한 수사적인 테크닉이 바로 아이러니이다. 아이러니스트는 고의적으로 마음속의 의도를 숨기고 그 심중의 뜻을 반대로 표현하여,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감추면서도 의도하고 있는 뜻을 더 강하고 날카롭게 암시하는 것이다. 말하고 싶은 진짜 의도는 겉으로 부각시키지 않고 숨어서 암시만 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상대방은 아이러니스트의 공격에 왠지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따지거나 정면으로 응수하기가 힘든 상황이 초래된다.
아이러니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이와 유사한 방식의 독특한 냉소도 있다. 도리스 레싱(Dorris Lessing)의 에세이집 <런던스케치>(London Sketch)를 읽어보면, 고장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관하여 시민들이 지하철 게시판에 올려놓은 문구가 등장한다. 그들은 직접 공무원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에, "왜 이 에스컬레이터가 이렇게 자주 고장이 나는지 말씀을 드리죠. 그것은 바로 낡았기 때문입니다!"라고 써 놓았다. 레싱은 이 문구가 영국인들의 특유한 냉소주의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느 누구도 저 시민이 쓴 문구를 읽고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이 세월 탓이라거나 물질의 산화작용 탓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꽃병이 떨어져 깨져버린 것이 중력 탓이라거나, 꽃병과 지구가 충돌한 탓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말이다. 문제의 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을 뒤섞어 놓음으로써, 자신이 심중에서 지적하고 싶은 원인(지하철 관계자들의 나태함)을 강하게 부각시킨 저 시민은 수사학적 냉소의 싸늘함을 교묘하게 구사한 사람이다.
드러난 것(외연)과 암시하고 있는 것(내포, 함축)이 서로 모순이 되어 히스테리적이 되거나 혹은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변태적이 되면서, 주체의 심중에 의도하고 있는 뜻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 이 효과적인 방식을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싸늘하게 상처내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냉소란 표면상으로는 초연함에 기초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일본이나 독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핏대처럼, 상대를 부정하고 비난하기 위해 전면에 직접 나서서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에,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말로 표현된 자신의 견해가 뜨겁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그 거리만큼이나 냉각된 이성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은근슬쩍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합리적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할까? 아이러니스트의 담론이 격한 분노가 자아낼 수 없는 날카로움과 객관성을 환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냉각된 고체성 때문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냉소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초연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가령, 미친 척 하고 복수를 엿보았던 햄릿(Hamlet)은 냉소의 대가였다. 냉소주의는 초연한 척 함으로써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커다란 효과를 자아내기 위한 수사적 전략, 즉 방법으로서의 초연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풍자와 야유의 표면에 드러난 초연함의 유희 아래에는 상대에 대한 강렬한 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마치 살짝 덮인 살얼음 밑의 뜨거운 용암처럼.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야말로 요즘이야말로 냉소주의를 이겨내야할 시즌인 것 같습니다.
방금 어디서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 돌리지 말라'고 했다는데...고개들을 돌리는 쪽과 직시 직면하려는 쪽 중에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풍자나 야유가 니힐함이나 시니컬함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목표를 위한 전략의 한 방식으로서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딱 생각나는게 신문 만평 같은 것들입니다만. 줄곧 정국을 염두에 두게 되네요.
스위프트의 냉소적인 발언은 도가 좀 심했군요.^^
스위프트 . . 좀 엽기적이죠?^^
아일랜드인들이 그런 엽기적인데가 있더라구요. Neil Jordan이라는 감독의 영화를 보면, 아일랜드인들의 지독함이 적나라합니다.
(영문학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은 아일랜드인들입니다. 조이스, 베켓, 예이츠, 쇼, . . . 한이 없죠. 참, 아이러니죠. 영국인들의 문학은 시덥잖고, 밋밋하고, 매력도 없습니다. 영문학이라고 하면 안 되고, 앞으로는 아일랜드문학이라고 하든가, 아니면, 영문학과 아일랜드 문학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힘센자(제국)의 논리에 사로잡힌 속물학자들이 그러한 문제에 관심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물론 냉소가 Kitch와는 구별이 되어야겠죠.
노무현 대통령이 만류했던 "외면으로서의 냉소"와 "스위프트 식의 저항으로서의 냉소"가 같은 것이 아니듯이 말이죠.
전자는 역시 무능력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외면으로서의 냉소는 지배계급의 대답"이라구요. . . 아주 적절한 지적 같습니다.
이 지적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냉소는 그들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