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strada'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6/11/05 시장과 포커페이스 (16)

지하철 신길 역을 가보면 5호선과 1호선을 연결하는 지하 통로가 하나 있다. 5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려면,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서, 약 150미터 정도가 족히 되는 통로를 따라가야만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그 통로는 텅 빈 그냥 통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통로 한복판을 따라 상점들이 쭉 늘어서게 되었다. 노점상보다는 좀 더 그럴듯한 상점이랄까? 내 보기엔 아마도 지하철 관계자에게 적당히 돈을 쥐어주고 얻게된 1평 남짓의 공간일 것이다. 조악하게 세워놓은 가판대 위에는 유행하는 옷이며, 가방이며, 중소기업이 만든 최신형 카세트 녹음기, 악세서리, 기념품. . . 등이 울긋불긋하게 늘어서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이 통로를 친구와 걸었다. 발랄하게 재잘거리며 그 상점들을 눈요기로 지나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점들이 거의 끝나갈 무렵 커다란 돗자리 위에 펼쳐져 있는 비디오 테이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에 관한 나의 지대한 관심 때문에, 나는 친구를 잡아채어 그 돗자리 주위로 스며들었다. 꽤 많은 비디오 테이프. 그 위에 적힌 가격표: 1장에 2천원, 2장에 3천원, 3장에 5천원, 파격세일, 재고정리. . . . 음, 괜찮은데? 나는 그 테이프 더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히치콕의 <토파즈>, <영 이노센트>, 크로넨버그의 <크래쉬>,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채플린 . . . 나는 얼른 눈에 띠는 테이프들을 집어들었고, 다른 사람에게 선점 당하지 않기 위해, 팔 위에 그 무거운 것들을 안고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특별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에 쳐 박혀 보일 듯 말 듯 묻혀있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 익히 들어서만 알고 있었고, 구하기 쉽지 않은 영화. 나는 그 감독이 만든 <길>이라는 영화를 4번 보면서, 4번 눈물을 흘렸었다. 내가 만약 <길>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바람과 고독에 관한 주제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떨까? 나는 약간 흥분하면서 <8½>을 집어들어 친구에게 건넸다. 내 눈이 빛나고 있음을 눈치챈 듯, 그녀는 자신의 품에 그것을 얼른 감싸 안았다.


그런데 빛나는 내 눈을 본 사람은 그녀 뿐 만이 아니었다. 그 돗자리 좌판대 주인! 그는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였고, 안경 너머로 나의 흥분을 아까부터 훔쳐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건 하편이에요. 상편은 지금 없어요."

확인해 보니 정말로 그랬다. 실망했지만, 그래도 사고 싶었다. 상편은 언젠가는 구할 수 있겠지. "괜찮아요. 그래도 살래요."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두 번째 대사를 내뱉었고, 나는 들켜버린 내 흥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거 짝 맞추어 달라고 누가 주문한 건데. . ."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받아쳤다.

"주문 받은 물건을 이렇게 아무데나 굴리세요?"

"어. . . 그게 왜 거기에 있었지? 어쨌든 주문 받은 겁니다."

그는 약간 서투르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친구의 품에서 그것을 빼내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중얼거렸다.

"그럼 할 수 없지 뭐. . . 그냥 내려놓자."

그리고는 재빠르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의식적으로 표정을 마름질하여, 그 테이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담담하게 다른 테이프들을 둘러보았다. 꼭 사고 싶으니 팔라고 조르거나 부탁하지 않았다. 나의 표정은 그 테이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후 지나치듯 물었다.

"짝도 안 맞는데, 뭐 하실려구요?"

아마도 그는 그 테이프를 두고 흥정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듯 하다. 그래서 그 주제를 계속 밀고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종의 본능처럼 못들은 척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2만원 어치만 살 생각을 했다. 12개를 골라야 정확히 2만원의 계산이 떨어졌지만, 나는 일부러 11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서 품에 있던 테이프를 내려놓으며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 . 아홉, 열, 열 하나, . . 어? 하나 더 골라야겠네? 뭘 고르지? . . .액션물 하나 고를까? 그냥 이것만 살까?"

나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농담하듯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저 쪽으로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고르는 시늉을 하며, 그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점잖게 그 주인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했다.

"아까 그 <8½> 그냥 주시죠!?"

그는 명분과 실리(實利) 사이에서 애매하고도 모호한 (약간 코믹한)표정을 짓다가, "이 테이프들 정말로 싸게 사시는 겁니다. 어디 가서 이 가격에 샀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 . . 주절주절."

궁시렁 거리는 그의 혀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발길은 그 테이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아마도 분명 그 테이프는 한 번도 주문 받은 적이 없었으며, 정찰제가 아니니, 그는 내 흥분을 미끼로 좀 더 받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호락호락 하지 않았으므로, 괜한 욕심 때문에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적절한 시간차 공격으로 그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영화들을 싸게 갖게 되어 흐뭇했지만, 그 보다는 무엇보다도 그와의 심리적 흥정에서 승리했다는 쾌감 때문에 우쭐해 있었다. 그리고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친구에게 내 영웅담을 은근히 자랑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 주인의 잔꾀를 알아챘다는 둥, 냉정하게 표정을 관리하였다는 둥, 이를 속칭 포커 페이스(Poker Face)라고 한다는 둥, 포커 페이스는 노름판에만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둥, 세련된 흥정 테크닉은 살아가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미덕이라는 둥, . . . 잘 보고 배우라는 말까지 곁들여서, 은근히 그녀의 어수룩함을 타이르기까지 했다. 내가 쟁취한 그 심리전의 승전보는 거의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내 손에는 그 전리품들이 잔뜩 쥐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발걸음조차도 서사시의 couplet 리듬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곧 행진곡이라도 부를 기세였다. (모르는 사람이 약간 있을 수도 있으니 참고로 수다 한마디 하겠다. couplet 리듬이란 서사시에서 영웅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행진하는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장중한 어조로 "하낫 둘 하낫 둘(abab)" 하는 식으로 시의 각운을 맞추는 방식을 말한다. 장중하고 위엄있는 것을 좋아했던 고전주의자들이 주로 많이 사용했지만, 현대의 영국 시인 T. S Eliot은 Prufrock이라는 한 놈팽이가 창녀에게 갈지 말지를 고뇌(?)하고 망설이면서 걸어가는 장면을 이 각운으로 처리한 적이 있다.)


우리는 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걸어가고 있었다(나는 여전히 그 리듬으로. . .). 무언가 생각에 잠겨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신이 나있던 내 각운에 파격(solecism)을 하나 삽입하듯 갑자기 내게 물었다.

"그 주인이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난 그냥 주문 받은 거라고 하기에, 그런 줄만 알고 있었는데, . . . 나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 사람이 잔꾀를 부리고 있다고는 간파하지 못할 거야."
그녀는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의 삶이 너무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작은 불안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거야! 둔한 감각으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지!"

내 어조는 점점 원망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투리 뿐 아니라 지방사람 특유의 어수룩함이 약간 배어있다. 간혹 보이는 그 나른함이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잘 살고 있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맨 먼저 비난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었다. 나의 비난은 주로 영리하게 살아야 한다는 채근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바보처럼 당하고 살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들을 잘 간파해야 한다고, 독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당하거나, 도태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 . . 뭐 이런 정확한 교재도 없는 교육이 가끔씩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교육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떠밀려 내려가듯, 그 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거부감 없이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말이다. 영리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요즘 사람들의 행복의 관건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바보처럼 살지 않는 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또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깐 동안 저 심리전이 내게 가르쳐준 것, 바로 의심하는 능력이었다. 속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의심하는 삶이다. 그(그녀)의 말을 믿지 말자! 속셈을 간파하자! 이것이 시장에서 만들어진 상거래 하는 인간들의 심리적 초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상인이 되어버렸다(상인 아닌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 우리가 매일 매일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하며 임하고 있는 나의 일터!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좀 더 넓은 안목으로, 그리고 좀 더 명료한 의식으로, 내 자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한번 곰곰히 따져보라! 반드시 누군가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저 만치에서 든든하게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어떤 모습,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계약과 고용이라는 형태로 귀속되어, 보편적인 점원-공동체를 이루며 의지하고 있는, 대머리에 배나온 체형을 하고 입가에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어떤 모습!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이 다음에 놀라지 않도록, 그 모습을 낯설지 않고 친숙한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철저히 연습을 시킨다)


어쨌든 비디오 테이프를 팔고 있는 돗자리 주인과 소비자인 나는 시장의 흥정코드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주인 뿐 아니라 나 역시 상거래의 코드로 서로를 보아야 하며, 나는 친구에게조차 그 코드를 권유해야만 한다. 흥정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미끼를 거머쥐어야 한다. 미끼란 바로 상대의 약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내가 잠깐 보였던 흥분의 표정은 그 돗자리 주인에게는 미끼임과 동시에 나의 약점이었던 것이며, 물건을 하나라도 팔아야 한다는 그 상인의 조건은 나의 미끼임과 동시에 그의 약점이었던 것이다. 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진 미끼가 그의 미끼보다는 더 컸기 때문이다. 혹은 그가 발견한 나의 약점보다는, 내가 발견한 그의 약점이 더 커 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끼와 약점의 시이소 놀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시장의 코드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욕망하는 것은 나의 약점이며 동시에 상대의 미끼이다. 그러니 승리하려면 자신의 욕망의 표현은 최소화하고, 상대의 욕망은 최대화하라! 당신이 가진 미끼를 상대방이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가에 따라(예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거머쥐었다면, 당신의 승리는 확실하다), 당신에게 들려올 승전보의 나팔 소리가 커질 것이다. 그러니 욕망을 최대로 절제하고, 그의 최대의 약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욕망은 클라이막스에 가서, 그동안 참고 견뎌내었던 고통에 복수라도 하듯이, 한꺼번에 터뜨려야 하는 것이다. 변증법을 공부할 때 자주 보았던 "노예의 부정하는 능력"이 바로 이 비스무레한 것이다. 그는 우선 타인을 부정할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을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 시장에서 우리는 영리한 노예의 부정이라는 코드를 익혀야만 한다. 그런데 이 부정의 코드는 우리를 끊임없이 배고프게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타인에게 결핍되어 있거나 타인이 원하는 것, 혹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거나 가지고 싶은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시대는 그 주고받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뿌듯함, 충만함을 아주 허기진 행위로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주고 받으며 각자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채워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 구멍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타인의 약점과 결핍을 가리거나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라고 하는 그럴듯하지만 기만적이기 짝이 없는 이름으로 타인의 그 약점과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끊임없이 이웃의 약점을 찾아 오늘도 아침부터 밤까지 어슬렁거린다. 그녀는 바로 이 빈곤과 허기의 코드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 돗자리 주인과 내가, 보이는 대로 혹은 말하는 대로 믿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말하지도 않는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잔꾀를 굴려야하는지, 왜 포커 페이스를 취해서 나를 감추어야 하는지, 부정을 모르는 그녀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참 동안 말이 없으면서 그녀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자조였을까? 아니면 잘못된 인생(그나 나나 모두가 불쾌해졌기 때문에)을 살고 있는 돗자리 주인과 나에 대한 측은함이었을까? 사람들의 눈빛을 자세히 보자! 시각(視覺)이란 사물의 표면과 관계하는데도, 우리의 시선은 그 표면에 있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주름진 심연으로 파고들려 한다. 소외, 고독, 불안과 같이 이제는 너무나 진부해진 주제들은 언제나 저 심층과 관계하고 있다. 펠리니의 영화 <길>에서 짐승 같은 잠파노의 고독 역시 저 심연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좀 다르긴 하지만). 개인들 각자의 몸에 주름진 심연 뿐 아니라, 개인들 사이에 깊게 패여, 건널 수 없는 강물 하나가 흐르고 있다. 오래 전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런 심층도 없는, 고요한 상태가 되고 싶어요. 수녀가 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