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holas nixon'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6/09/26 지속과 윤리 (2)
 

나의 몸에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짜여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늬가 나있다. 이들은 내 생애동안 나의 사유와 몸짓과 꿈이 내 육체를 지나다니면서 만들어 놓은 잠재적 문신들이다. 대단히 미세한 점들로 모자이크된, 너무나 미세해서 우리가 흔히 지각하는 방식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운, 시간의 무늬. 이 무늬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지루해하거나 흥분하는 여러 가지의 윤리적 패턴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가 이 섬세한 결을 이해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할 것이다. 직접 만져보거나 맡아보거나 맛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이것은, 말하자면 나만의 지도인 셈이다. 이 지도가 바로 내 육체에 관한, 나아가 내 행위와, 정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채, 이 지도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시간에 관한 윤리적 지침서이다. 나는 이 지침서에 나있는 그 보이지 않는 점들을 따라, 혹은 이 점들 간에 그어진 혹은 여러 겹으로 접힌, 거부할 수 없는 선을 따라 살아간다.


그래서 이 육체와 시간의 무늬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알아차리는 일종의 암호이다. 이 암호를 알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해야하며, 아주 많은 감정들을 서로간에 가져야 한다. 이들 간에 쌓인 지속의 크기와 부피에 따라 그 암호는 더 난해해지겠지만, 그 만큼 서로를 식별하고 친밀해지는 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능력은 사회생활에는 쓸모가 전혀 없다! 심지어는 반-사회적이기까지 하다.

수십 년 동안 헤어져 있다가 우연히 길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찰나적 순간에 조차, 놀랍게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힘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무늬 덕택이었다. 만일 나의 이 자그마한 무늬들과 지도를 미리 알고 있는 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조언 차원에서 미리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내가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과도 비교적 수월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시간의 지속이란 한번에 뛰어 넘거나 되돌아 갈 수 없고, 누군가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망설이고 선택하고 행위하는 과정 속에서만, 오래 머물러 깊이 침잠되어 심오한 기다림을 견뎌냄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이지 참담하고도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얼마나 많은 무늬가 흘러야 할까? 이것이 이별을 마주한 사람이 언제나 한숨을 내쉬며 조급한 마음에 내뱉는 대사이다. 그의 두려움은 그 두터운 무늬의 상실과 기약이라는 이중의 구속감을 감당할

<문예노트>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