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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9 근접공학과 관계 (11)

근접학 또는 근접공학(proxemics)이라는 분야가 있다. 인간들이 의미를 전달하고, 감정을 느끼고,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 공간이 차지하는 영향 관계를 연구하는 분과이다. 커뮤티케이션을 연구하는 쪽에서 언급되는 이론인데, Edward Hall이라고 하는 문화인류학자는 자신의 저서 The Hidden Dimension에서 인간의 소통관계에 따른 거리영역에 대해 흥미로운 구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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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Intimate Distance Zone은 부부나 연인과 같이 육체적이고 실제적인 접촉이 가능한 영역이고, Personal Distance Zone은 친한 친구끼리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역이다. 악수라든가 가벼운 접촉, 혹은 사적이고 진지한 대화가 가능한 영역이다. 이 영역은 육체적인 지배의 한계점을 이루는 공간이기도 하다. Social Distance Zone은 직장이라든가 동아리 집단에서처럼 업무를 처리하고 집단적인 행동을 도모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에 따르면 이 공간은 집으로 찾아온 우체부와 집주인, 상점에서 점원과 손님간의 소통공간을 이루고 있다. Public Distance Zone은 소통 하기에는 가장 멀고 광범위한 영역인데, 강연이나 연설과 같이 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다. "영토유대"가 가장 멀기 때문에, 진실과도 가장 거리가 먼 언어를 구사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양태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각적 반응에 따라 소통이나 감정의 상태가 다르고, 따라서 관계의 형태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실험이 있는데, 규모가 서로 다른 공간(상자) 속에 같은 숫자의 쥐를 각각 수용한 뒤에 행동을 관찰했더니, 좁은 공간의 쥐들이 넓은 공간의 쥐들보다 성향이 포악해졌다는 것이다--심지어는 서로 물어뜯고, 죽이고, 증오하고 그랬다 한다.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서인지, 가까운 곳에 다른 쥐들이 있을 경우, 공간압력을 받아 위협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참 역설적이다. 아마도 도시인들이 시골사람들에 비해 사납고, 포악하고, 적개심이 더 강한 이유도 바로 저와 같은 환경 속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비좁은 공간, 가려진 하늘, 밀집된 주거공간,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산업을 위해 구획된 도시공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포악해지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한가지 궁금해진다. 왜 그 실험쥐들은 공간압력에 쉽게 순응해서 자기들을 파괴적인 상태까지 몰고갔을까? 공간이 바뀌어 비좁아 졌다면, 자신들의 습성과 관계를 바꾸면 되지 않았을까? 근접공학에서 말하듯이, 공간 구역에 따라 친밀도와 소통의 형태가 달라진다면, 그래서 Social Zone이나 Public Zone이 어떤 우여곡절 끝에 Intimate Zone으로 바뀌었다면, 자기네들의 습성과 관계도 변하면 되지 않을까? 대도시에 사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대도시에서 포악하고 사납고, 항상 무엇인가에, 타인에게, 화가난 상태에서 살 것이 아니라, 습성과 관계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우체부와 주인, 상점 점원과 손님, 청중과 연사의 관계가 아니라, 연인이 된다든가, 부부가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도시가 사람들을 밀집된 공간으로 내몰고, 그래서 지하철이라든가, 버스라든가, 공원이라든가, 극장이라든가, . . 인간이 사는 모든 영역들이 점점 좁아져서, 타인을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왔다면, 자기도 모르게 환경에 순응해서 포악해지고 사나워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차라리 Intimate Distance Zone에 맞추어 부부가 되고 연인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영순씨와 부부가 되어 포옹을 하고, 그 옆에 앉은 영철씨와 의형제를 맺고, 뚱뚱해서 서있기 힘든 광순씨의 애인이 되어 등을 껴안아주고, 공원에서는 철수씨, 용필씨, 순이씨와 자리 문제로 혹은 주차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연인이 되어 다함께 잔디밭에서 나체로 뒹굴고, 극장에서는 왼쪽에 앉은 인철씨와 손을 잡고, 오른쪽에 앉은 선희씨와 서로 사타구니를 쓰다듬고, 머리가 커서 앞을 가리는 상철씨와 불알친구를 맺는 것이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연인! 어려울게 뭐가 있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부부가 되고, 애인이 되는 것이다. 저 상자속의 어리석은 실험쥐들보다 얼마나 영특하고 합리적이고 깔끔한 생각인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서, 도시를 냉소의 공간이 아니라 쾌락의 공간으로 바꾸자! 물론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과 절대로 사랑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현행 결혼제도라든가, 가정법, 민법과 같이 법과 제도부터 바꿔야겠지만 말이다. 그럴 자신 없으면 공간 환경을 바꾸든가!

Posted by hu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