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에 관한 노트
이 논문은, 제목이 지시하듯이 '비판적 초국주의<critical transnationalism>'의 관점에서, 호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등 제 이론적 지형의 윤곽을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의 문화연구에서 등장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중요성은, 시간적 의미의 역사나 민족, 정체성의 개념을 벗어나, 보다 공시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질서 속에서 역사를 파악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의>역사적 산물인 호주를 단순히 민족국가의 한 형태로, 혹은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만 이해하기 보다는 근대이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기능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태의 사회구성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적 질서 속에서 호주가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호주 내부의 지형, 즉 종래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민족 혹은 국가의 개념을 넘어선 초민족적, 초국가적 틀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초민족적 틀 속에서 호주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주를 지리적 특수성과 공간적 결집을 이루는 민족국가로서의 호주와, 복합적이며 때로는 양립불가능한 담론영역의 무제한 확산에 의해 절합되는 담론적 지명으로서의 '호주'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둘의 관계는 그러나 고정된 관계설정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특수성에 따라 매우 능동적이고, 유동적으로 변형되는 관계를 구성하며 또한 재구성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최근 호주에서 야기되고 있는 지적논쟁의 핵심적 내용은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호주를 '아시아의 일부'로 인식하고,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호주의 역사적 뿌리를 여전히 대영제국의 정착식민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입장은 호주를 과거의 산물, 혹은 과거에 소급하는 민족의 단위로 이해하지 않고, 현 담론의 흐름속에서 진보적인 관점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정치 경제 지리학적 세계질서 속에서 호주를 새로이 구성하며 인식하자는 주장이라면, 후자는 호주를 역사적 시각으로 끌어들여, 식민주의 역사와의 밀접한 관계라는 궤적을 소급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후자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전자의 입장이 어떻게 수용될 수 있으며, 비판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서구중심적 동양론자들의 구분에 의해, 세계는 서구와 동양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호주는 이러한 구분을 통해 서구의 일부로 인식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같은 조건들 속에서 호주의 '아시아화'는 이분법을 벗어나는 듯 하다. Huntington의 권고, 즉 경제적 협조체제를 위해서는 문화적 토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종래의 서구/동양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아시아화' 담론도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에도 불구하고 호주의 '아시아화'는 아시아를 여전히 경제적, 정치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문화적 토대의 이질성에 의해, 여전히 이분법을 고수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비판적 초국주의적 관점은 이러한 이분법의 재생산을 재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호주는 서구와 아시아의 어느쪽으로도 고정적으로 편입될 수 없으며, 이것은 담론적으로 이루어지는 '호주'의 구성과 재구성에 능동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호주와 <서구>유럽과의 관계, 호주와 아시아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설명들과 분석이 요구된다. 호주는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아시아에 대해 민족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제국주의였다는점 때문이다. 호주가 서구 제국주의의 전초기지이며 아시아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지대로 기능했다는 점은, 호주가 서구와 동일시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가 만들어 놓은 근대성의 산물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아시아와 호주의 근대성은 따라서 서구에 의해 굴복당한 한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자발적 근대성"은 일본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경제대국으로 자리하는 일본은 그러나 문화적으로 열등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구 정착 식민지로서, 호주 역시 어떤 면에서는 서구 근대성의 주체로서 기능하는 듯 하지만, 서구가 아닌, 서구에 종속되었던, 서구보다는 열등한, 근대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여기서 서구의 근대성이 최근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아시아 경제권의 급 부상과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서구화 근대화라는 모토는 허구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설득력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또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현재 세계의 구조적 틀과 기본적 토대를 생산해 왔기 때문이다. 근대화의 산물인 구별된 민족국가는 세계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무역, 국제관계라는 비대해지는 복잡한 세계통신망을 통해 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근대적 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해 지고 확장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않된다. 즉, 월러스틴이 말하듯이 '서방'문화에 의해, 자본주의에 의해 건드려지지 않은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또한 비판적 초국주의 관점이 인류학과 사회학을 분리된 학문체제<이것은 근대성의 산물이다>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넘나드는 장으로 본다고 지적한다. 사회학이 과거 서구사회 자신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면, 인류학은 서구가 아닌 타자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는 모든 문화를 동일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가진 문화로 이해한다. 즉 서구근대가 만들어 놓은 자기동일화나 차이<즉 차별>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허물없는 차이를 지향한다. 따라서 비판적 초국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문화연구가 아닌 "특수한 문화연구 전통의 다수성"이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특수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특수성의 강조는 자연스레 민족적 차별성의 개념으로 전화된다. 또한 이 차별성은 다시 정체성의 문제로 환원될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비판적으로 다시 보아야 한다. 예로 탈식민이론은 호주를 제국주의와의 관계하에서 보는 반면에, 민족정체성의 기획 역시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탈 보편화에 대한 추구 뿐만 아니라 공간적, 초민족적 컨텍스트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저자들은 "지방적<the local>인 관점과 국가적<the national>인 관점"이 동시에 병치되어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래의 문화연구는 언제나 제도, 민족, 국가 등의 전체주의적 관점을 통해 거대 구조를 설명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만 일관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틀은 지방적이고, 국소적이며, 특수한 지역들의 특수한 경험이라는 정황의 특수성과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안되며, 이러한 병치를 통해 비로소 실천적 문화연구가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전세계 자본주의 팽창은 핵심부/주변부 구조의 재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성장주의와 근대화의 수사(修辭)력, 그리고 독점자본주의를 낳게한다. 그러나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적 성장은 유럽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구조에 동요효과를 가져오며, 민족적 경계들로 이루어진 국가들의 구분은 이제 고정되지 않고 국경들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포착된다. 따라서 핵심부/주변부라는 구조는 '흐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 문화적 흐름들은 서로 이접되며, 결합하고, 또한 분리되는 매우 중층적 관계들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이 흐름들이 가로지르는 공간들의 역사적 문화적 형세이며 특수성이다.
실제로 존속하는 핵심부/주변부의 관계가 이제는 복수화되고 더 이상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전지전능한 핵심으로서 '서구'담론의 힘이 여전하다는 것은 중요하다. 호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모호한 것으로 남게되는데, 최근 아시아의 급부상 ― 예로, 경제적 발전과 유교적 가치관의 확대등… ― 으로 인해 서구의 담론에서 확실한 담보물이었던 주변부/핵심부의 관계가 전복된다는 사실이, 이미 서구의 일부로 간주되었던 호주에게 역시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서구'는 '호주'에게 문화적 힘이라는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고, 이 힘을 통해 '아시아'와의 대결에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우월감은 다시 우려감으로 변질된 것이다. 서구는 아니면서도 서구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해 왔던 호주가, 이제는 비서구의 출현으로, 서구가 안아야할 몫을 가지게 된 것이다.
탈식민적 관점에서 호주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비 서구 민족들을 바라보는 것은 전략적으로 유용하기도 하다. 예로, 캐나다, 뉴질랜드의 동맹은 이러한 탈식민적 관점, 즉 이들은 모두 대영제국의 정착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식민 지배권력과의 모순적 관계속에서 탈식민 민족국가의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해도 이것은 여전히 근대화기획이 만들어 놓았던 민족정체성의 응집력을 다시 강화하게 된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와 식민화라는 근대적 기획이 사라졌든, 혹은 지속되든, 탈식민화에 대한 관심은 결국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탈식민 이론은 근대적 질서라는 옛 고정성과 계몽주의의 도덕적 확신이 흔들리고 있는 현대세계와 절합한다. 탈식민이론이 발전하는 동기는, 경제적 차원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현재적 컨텍스트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문화적 세습을 이분법적 관계가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검토하려는 요구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비판적 초국주의 문화연구는 따라서 국가<민족>내부에 놓여진 특수한 탈식민적 경험들을 국가<민족>들간의 상대적인 문맥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필자들도 예를들고 있듯이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호주등은, 모두 과거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혀다른 식민경험과 문화적 차이들을 형성해 왔다. 호주 역시 이러한 특수성의 탈식민성 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근대성이라는 제국주의의 산물은 이렇게 보편적인 하나의 기획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원적인 근대성으로 구성된 세계를 인식하는, 즉 이 근대성이 만들어 놓은 경계들이 더 이상 영토상의 민족국가들간의 경계와는 필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을 때 비로소 "근대 민족국가의 일부로서 '호주'라는 자신만의 용어처리를 상술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배제가 아닌 포함,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서구'와의 관계, 그리고 또한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아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적어도 '아시아' 자체가 아닌, '아시아' 속의 '호주'를 수용하는 개념, 다시말해, '아시아인'이며 동시에 '아시아인이 아닌' 이질적인 (탈)근대적 존재로서의 호주"에 대한 호주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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