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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6 동물원 이야기

꼬마 시절에 처음으로 동물원에 가서 놀랐던 것은 아마도 잠재적인 것(the virtual)이 지각과 의식으로 난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 책을 보거나 우화집을 읽을 때 조차, 나는 동물이나 사물, 그 밖에 세상 모든 것들을 마치 눈을 감고 걸어가는 몽유병자처럼 지각했다. 부피도 없고 잔주름도 없이 깔끔하고도 살균된 이미지들을 2차원의 형태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에서는 그 환영지대(phantom zone)의 이미지들이 창문을 부수고 나와 실제로 육체라고 하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잠재적 지속(virtual duration)이라고 하는 엄청난 것을 내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백 년도 훨씬 넘은 거북의 뱃살에 새겨진 정신착란적 찰과상들,  슬로우 모션 영화를 보는 것같이 우아하기 그지없는 기린의 몸동작, 막대한 체적으로 시야를 압도하는 코끼리의 뒷다리,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는 늑대와 사자들의 야수성, . . . 그들은 정말로 동물들이었고, 내게는 일종의 괴물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내가 가져왔던 지각의 패턴을 흩트려 놓았다. 어린 시절 동물원으로의 외출은 그야말로 지각의 외출이었다. 어쩌면 실재에 대한 불안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도 그 때이며, 한편으로는 내 일상적 지각이나 믿음에 대한 어렴풋한 권태가 밀려온 것도 그 때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동물원에 가보지 못했다. 그러자 점차 그 권태와 불안은 잊혀져 갔다.

다 커서 동물원에 갔을 때, 이제는 지각의 흐트러짐 조차 또 하나의 지각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늙어가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어쩐지 저것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존재를 닮아가는 것 같았고, 한참이나 바라보던 나 또한 그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가 않았던 것이다. 레드 피터(Red Peter)처럼, 살아나기 위해, 본인은 "잠시 동안만!" 이라고 매 순간 다짐하면서 실은 평생동안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그들은 더 이상 창살 쪽으로 가까이 와서 식식대며 좌-우로 배회하는 일이 없다. 간혹 아프리카 초원이나 남미 정글에서 새로 구입되어 막 갇힌 동물들만이 새 우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창살 쪽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잠깐 끌고 있을 뿐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그들도 곧 창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눈에 띄지 않는 그늘이나 어두운 동굴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거나, 관리인이 던져놓아 한참 동안 바닥에 나뒹굴던 김빠진 먹이를 뜯게 될 것이다. 그들은 먹이로부터 초연하기까지 하다. 급기야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방문객들이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이리저리 소리를 질러가며 약을 올리지만, 동물들은 오히려 더욱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하품을 해댄다. 누구의 창살이고 누구의 구경거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누구의 것이든, 거기서는 그 무엇도 흥미를 끌지 못했고,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관심밖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기대하고 예상하고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낙원이었던 것이다!

Posted by huun